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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크리스찬북뉴스 | 2017.10.22 22:27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십일조가 알고 싶다/윤상원/넥서스cross/방영민 편집위원

한국교회 속에서 일반적으로 많은 성도들이 십일조를 엄격하게 배웠을 것이다. 십일조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십일조 엄수주의가 우리 교회의 현실이다. 필자 또한 십일조는 빚을 내서라도 드려야하고 자기의 첫 소득 또한 다 바쳐야한다는 구약의 율법과 전통을 배우며 자랐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암이 발생한다는 말을 강단을 통해 선포하는 이상하고 폭력적인 목사에 관한 기사도 보았다.

 

과연 십일조는 빚을 내서라도 바쳐야 하는 것인가? 소득의 1/10을 정확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는 소중한 기준이고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벌을 받고 복에서 제외되는 것인가? 십일조가 신앙이 좋다는 잣대이고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신앙의 성장과 성숙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의 기원과 십일조의 정신과 형성, 구약과 신약의 관계와 발전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본서는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역사적인 것을 짧지만 정확하고 묵직하게 써 나가고 있다.

 

더구나 책에는 목회자로서 저자가 교회 사역 가운데 경험했던 십일조에 대한 성도들의 고민과 갈등과 한숨이 담겨져 있어서 우리에게 더욱 피부로 다가온다. 헌금이 결코 우리에게 부담과 고통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법으로 제정하신 것이 아닌데 오늘날 성도들에게 죄책감을 더 심어주는 헌금의 실상을 보며 저자는 헌금을 통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의도를 우리에게 정확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제시한다.

 

필자 또한 교회생활을 하며 헌금으로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보았고 지금도 십일조 때문에 시름하는 집사님 가정을 알고 있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가정에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고 죄스러워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안다. 어떤 경우는 교회가 필요한 재정과 사역을 위해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구분 없이 무리한 십일조를 요구하는 악한 모습까지 보았고, 사회 상황과 성도들이 살아가는 배경과 실상에 대한 파악 없이 십일조는 우리 신앙의 척도요 마지막 기준이라고 하며 성도의 목을 조이는 모습도 보았다.

 

과연 십일조가 신앙의 마지막 유일한 마지노선인가? 이것만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라도 꼭 파수해야 하는 엄격한 율법일까? 이 책은 또한 우리에게 구약의 십일조와 신약의 십일조가 가지고 있는 차이점과 공통점들을 정확히 보여준다. 그리고 구약의 율법과 십일조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히 성취되었다는 것을 성경적 신학적으로 제시하며 신약의 교회는 더 자유로운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우리에게 빛을 던져준다.

 

책의 내용을 조금 요약하면 1모세율법의 십일조에서는 십일조는 모세의 율법에 의해 처음 시행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언약적, 제의적, 신성국가적이라는 것이다. 2아브라함의 십일조에서는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고대근동의 문화와 관습을 따라 드린 것이고 일시적인 것이기에 십일조가 될 수 없다고 한다. 3말라기의 십일조에서는 말라기 310절 말씀을 주해하고 설명하며 이 본문은 기복주의 말씀이 아니라 언약적이며 하나님의 신실성을 기초로 관계의 회복과 종말론적인 복의 성취라고 설명한다.

 

4십일조의 분량에서는 모세의 율법에서 1/10은 대략적이었다는 것과 신약에서는 폐지된 것이라는 내용이다. 5책망받은 바리새인의 십일조에서는 마태복음 2323절을 주해하며 예수님의 십일조를 드리라는 명령은 옛 언약의 유대인들에게만 해당함을 말한다. 6장과 7십일조와 신약헌금의 불연속성과 연속성에서는 둘 사이의 차이와 공통점을 보여주고 레위의 십일조와 절기의 십일조와 자선의 십일조가 예수님으로 인해 어떻게 성취되고 신약교회에 적용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책의 특징을 세 가지로 말하면 첫 번째로는 구약 십일조의 특징을 제시한다. 구약에서 시내산에서 율법의 수여될 때 십일조가 포함되는데 이 십일조는 성전 제의와 성전을 위해 그리고 언약백성의 결속과 연합을 위해 그리고 객과 고아와 과부로 대표되는 연약한 자를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십일조는 의무적이긴 했지만 결코 가난한 자에게까지 요구되지 않았고 바리새인처럼 그 분량까지 따지지 않았다. 결코 구약의 십일조가 하나님의 성품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구약의 십일조는 언약적이기에 백성들에게 의무감이 있다. 또한 제의적이어서 성전과 제사를 위해 요긴하게 사용된다. 아울러 신정국가적(공동체적 돌봄)이여서 공동체적으로 넓게 사용된다. 이처럼 모세에 의해 세워진 십일조를 보더라도 그 특징이 성도들에게 강압적이고 괴롭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돌봄과 사랑의 평화의 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오래전부터 배웠던 구약 십일조의 오해를 벗겨준다.

 

두 번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약의 십일조가 어떻게 성취되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구약의 십일조와 신약의 십일조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질적 차이만큼 크다. 그래서 신약의 십일조는 구약처럼 언약적이지 않아 이것을 못한다고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지지 않는다. 또한 예수님을 통해 성전과 제사 의식이 모두 성취되었으므로 제의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구약은 신정국가적이었지만 신약에서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복지를 담당하기에 교회는 세금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레위의 십일조를 자신의 영원한 대제사장직과 자신의 온전한 제물되심과 자신의 참된 성전되심으로 인해 레위의 십일조와 그 모형들이 폐기된다. 그리고 절기의 십일조도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친히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시고, 오순절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신약의 교회가 탄생하고 영혼의 추수가 이루어지며, 초막절은 예수님이 물과 빛이 되셔서 이 절기를 성취하는 분임을 나타내신다.

 

아울러 자선의 십일조는 특별히 폐지될 예표가 없지만 예수님의 정신으로 그 주기가 더욱 확장되고 범위가 넓어지는데 ‘3년마다라는 주기는 항상감당할 사명으로 전환되고 네 성중에라는 범위는 세상이라는 하나님 나라로 뻗어간다. 이렇듯 책은 구약의 십일조가 예수님으로 인해 어떻게 성취되는지 성경적으로 분명히 짚어준다. 아울러 둘 사이에 불연속성과 연속성이 무엇인지도 드러내준다.

 

세 번째는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십일조의 공적 역할을 강조한다. 구약의 십일조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자비와 구제와 돌봄을 향하듯 신약의 교회는 이 정신이 더 강조되어야한다. 이것은 십일조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의 문제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로의 사고의 전환과 정신의 회복이다. 십일조와 헌금은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소유라는 주인 의식과 청지기 의식이 올바르게 표현되는 수단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로 움직이는데 이 속에서 사회가 탐욕으로 물들어 있고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시대 속에서 교회 또한 맘몬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물리치고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하고 복음의 정신을 헌금에도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경주에 살았던 최 부자 댁의 교훈 중에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교회가 지역 사회에서 하나님이 주신 헌금을 통해 이러한 구제와 복지를 예수님의 정신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교회는 신앙의 이름으로 교회의 재정을 채우기 위해 성도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십일조 엄수를 가르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은 악이고 성경의 정신과 어긋나며 하나님의 성품과도 맞지 않다. 만약에 어려운 가운데서도 빚을 내어 드린다면 그 빚으로 낸 헌금을 하나님이 받으시겠는가? 또한 사회에서 불합리하게 얻은 수입으로라도 하나님께 많이 드리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겠는가?

 

사회적 약자를 전혀 돌보지도 않고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와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단순히 마지막 신앙의 잣대라는 이름으로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래서 십일조와 헌금의 정신은 우리가 당연히 강조하고 가르쳐야 하지만, 더 많은 창고를 만들려는 재력가들과 교회에게 복음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또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하는 제사장적 사명과 불의한 사회구조를 향한 예언자적 메시지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우리에게 변함없는 강제력과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그 해석과 적용은 우리 시대적 맥락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약 십일조의 제도는 취소되었고 그 본질과 정신은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약교회의 주어진 놀라운 자유를 가지고 성도는 자기에게 주어진 믿음과 양심과 능력에 따라 헌금을 해야 할 것이고 교회는 그것을 가지고 탐욕을 벗어나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지향하여 사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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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예수: 관념과 예상을 뒤엎는 상상 이상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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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인 생애를 다룬 각각의 기록을 남겼다. 역사적으로 신학자들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묘사한 마태복음을 사자 복음으로,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묘사한 마가복음을 송아지 복음으로,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한 누가복음을 인자 복음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영적인 면이 강조된 요한복음을 독수리 복음으로 불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렇게 분류할 뿐이지, 복음서가 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영광은 이렇게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을 만큼 충만하고 다채롭다. <온유하고 겸손하니>...
청교도가 알려주는 교회 부흥 원칙, 영적 성장법 청교도가 알려주는 교회 부흥 원칙, 영적 성장법
은혜 안에서 번성하라: 청교도들이 사용한 영적 성장법 12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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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청교도는 괴짜로 손가락질받았다. 기독교인이 은혜 안에 누리는 자유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검은색 복장에 즐겁고 유쾌한 모든 것을 금지하면서 따분한(?) 성경 공부나 종교활동만을 일 년 내내 강요하는 광신도(?) 집단처럼 여겼다. 극소수의 청교도가 실제로 그런 삶을 추구했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 곧 일반적인 청교도의 삶과 신앙, 신학과 실천을 재발견하게 해준 여러 고마운 영적 지도자들이 있었는데, 대표적 인물로는 마틴 로이드 존스, 제임스 패커 그리고 현재 가장 활발하게 저술 활동과 강연을 통해 청교도를 알리고...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이해하기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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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의 지성과 교회의 지성은 “프랑크푸르트 학파(The Frankfurt School)”에 대해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한겨레 신문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마르크스주의자들 모인 노아의 방주였다”(2013.3.27.)라는 제목으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해서 소개했다. 신문에서 보된 인물들은 막스 호르크하이머(1895~1973),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1969), 헤르베르트 마르쿠제(1898~1979), 에리히 프롬(1900~1980), 레오 뢰벤탈(1900~1993), 프란츠 노이만(1900~1954), 오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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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밀러의 오색사막 순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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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도널드밀러의 ‘오색 사막 순례 이야기’는 무언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그의 책들은 꽤 유명했고 특히 미국에서는 상당한 베스트셀러이기도 했지만 왠지 그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 와닿지 않아 책 장을 처음부터 넘기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다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마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흥미로움 속에서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한 듯한 이야기는 상당히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그런데 그의 책의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자꾸 내게는 어릴 적 교회생활과 교회친구들이 떠올랐...
가벼운 것 같지만 가볍지 않은... 가벼운 것 같지만 가볍지 않은...
주일 오후 3시, 생각을 줍다
송미현 글/그림/좋은씨앗/문양호 편집위원


한동안 기독교출판에는 한두 컷 정도의 그림에 한두 문장의 묵상글이 담긴 책이 유행했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의 웹툰 형식의 기독교만화들이 등장했었다. 기독교내의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기도 하고 성경의 몇몇 책들의 주제들을 다루거나 신학적 주제를 다루는 등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었다.   그러한 시도들은 두껍거나 무거운 주제를 기피하는 시대적 풍조에 젖어있는 기독교인들과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교회의 어두움에 대해 불만과 분노하는 세대들의 관심을 끌었고, 실제로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책...
안식의 날을 폐하지 말라 안식의 날을 폐하지 말라
안식의 날: 제4계명의 재발견
이안 H. 머레이/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주일성수”라는 말이 있다.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일”이란 뜻이다. 많은 교회에서 주일성수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이를 어기면 마치 유대인이 안식일을 어기면 안 됐던 것처럼 정죄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막 2:27). 바리새인처럼 주일을 지키는 일 자체만 강조하다 보면 주일을 기억하여 지키는 것으로 사람이 주 안에서 얻는 행복과 유익을 되려 막을 수 있다. 주님께서 “주의 날”을 주신 목적을 상실하는 것이다.한편 오늘날 율법주의적인 주일 ...
예수님이 약속하신 진짜 복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약속하신 진짜 복은 무엇인가?
칼빈의 팔복 강해
존 칼빈/김광남/비전북/조정의 편집위원


로버트 화이트는 이 책의 서론에서 주석과 설교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설교들은 주해와 관련하여 이 주석과 거의 동일한 해석 방향을 따른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 대한 더 정교하고 미묘한 해석과 메시지를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의 그리스도인 청중에게도 지속적으로 적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주석과 다르다”(11쪽). 이 한마디로 <칼빈의 팔복 강해>를 읽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독자에게 칼빈을 통해 성경 본문을 풀어 설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특별한 유익 때문이다. 모든 설교가 당시 청중...
철학과 믿음, 철학과 신학 철학과 믿음, 철학과 신학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
안영혁/목양/고경태 편집위원


“철학으로 세계를 묻고 믿음으로 다시 보다”, 마치 틸리히(Paul Tillich)의 상관 관계를 말하는 것 같다. 틸리히는 '실존의 물음'과 '신학의 대답'을 추구했다. 그러나 안영혁 박사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는 그런 관계성 유지보다는, 한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 살면서, 신학을 하면서 겪은 철학에 대한 좌충우돌 사고(思考)를 고대철학에서 현대철학까지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안영혁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를 읽으면서, 불현듯 존 프레임의 <서양 철학과 신학의 역사>이...
한약 같이 달여 먹어야 하는 책 한약 같이 달여 먹어야 하는 책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
송인규/비아토르/문양호 편집위원


송인규 교수님의 책을 그래도 상당히 관심가졌다고 생각했고 꽤 많이 읽어왔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못읽은 것은 그럴수 있다 치더라도 제목도 몰랐던 책이 있었다는 것은 좀 자존심(?)에 금이 간다. 이번에 비아토르에서 개정증보판으로 낸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은 시리즈로 기획된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의 다음을 잇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십여년 전에 나왔을 때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보다는 주목받지는 못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좀 그런 면이 있는 듯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를 인상적으로 읽기도 했지만 주...
당신의 교회는 건강하십니까? 당신의 교회는 건강하십니까?
건강한 교회: 교회 건강의 개혁된 실천
도널드 J. 맥네어, 에스더 L. 미크/유정희/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고, 참석자가 혜택을 얻어가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은사를 가진 사람이 모여 자기 은사로 서로를 섬기는 유기적인 조직이다. 그래서 교회에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말이 굉장히 모순처럼 느껴진다. 가령 교회가 성경적으로 건전한 교리를 매주 강단을 통해 가르치고 있는지 혹은 배우고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사항으로 가면 더 복잡하다. 성도의 교제가 충분히 친밀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까? 성도의 영적 성장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 보통 컨설팅...
포스트코로나, 위드코로나 시대에서 교회가 선택할 유일한 가치 포스트코로나, 위드코로나 시대에서 교회가 선택할 유일한 가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리더십, 정의로운 교회
박윤성/글과길/고경태 편집위원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 교회가 입은 심각한 충격은 성도 숫자 감소보다도 교회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를 넘어서 부정적인 평가이다. 그러한 평가를 받은 요인은 교회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 있다고 우리는 평가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여러 방안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 만큼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윤성 목사(익산기쁨의교회 담임)도 코로나 시대의 리더십을 제언하는데, “정의로운 교회”를 테마로 설정하면서 대안을 제시했다.   저자는 한국 교회에 있는 불공정한 모습을 제시했다...
목회적 관점으로 읽는 에베소서 목회적 관점으로 읽는 에베소서
맥아더 신약 주석 에베소서
존 맥아더/전의우/아바서원/정현욱 편집인


기다렸던 책이 출간되었다. 언젠가는 누가 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막상 손에 넣고 읽어보니 감개무량하다. 존 맥아더 목사는 한국 내에서도 워낙 유명한 저자이기에 필자의 설명이 굳이 필요 없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는 상당히 보수적 성경관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학자다움을 갖춘 목회자라는 점이다. 두 가지의 특징은 존 맥아더의 전부라고 말해도 될 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매일 성경을 주해하고 설교해야 되는 설교자라면 그 어떤 주석보다 가장 먼저 구입해야 할 책...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교회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교회에게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
칼 트루먼/윤석인/부흥과개혁사/조정의 편집위원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것만 같다. 사적인 미디어 방송에서 동성연애, 트랜스젠더를 다루는 것은 당연하고 공영방송에서도 이제 쉽게 성 혁명의 결과물을 발견한다. 사회 저명한 학자, 강사나 지도자,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지금의 시대 정신이 옳고 바른 길로 가는 중이라고 외친다. 대중의 다수가 이 흐름에 동조한다. 군대에서 동성끼리 성관계를 맺은 행위는 무죄, 이를 조사한 행위는 조사받는다. 자기 스스로 여성이라 느끼는 남성 수영선수가 여성 수영대회 상을 휩쓸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탈 기독교 시대 전도
팀 켈러/장성우/두란노/서상진 편집위원


전도..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전도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80-90년대만 하더라도 전도가 참 잘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하는 총동원전도주일이라고 하는 이름하에 그동안 기도하며 사랑을 베풀었던 대상자를 교회로 모시고 와서 복음을 듣게 함으로 결단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적인 분위기, 또한 코로나 펜데믹 이후에는 교회에 관한 말을 세상 속에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많은 고민이 있다. 펜데믹 이후에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또한 그 방법은 무엇인지에...
설교자의 반성 설교자의 반성
설교자의 인생
임종구/다함/서상진 편집위원


“설교자의 인생” 책 제목이 참 좋다. 이 책의 저자인 임종구 목사는 10여년 전 경산의 한 교회의 모임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모임에서 자신의 개척 시절의 처절하고 힘들었던 삶을 가감없이 전해주었고, 그런 삶이 자신의 목회의 뿌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됨을 강조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자기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들지만, 그런 삶이 쉽지 않다. 이 세상에 설교에 관한 수많은 세미나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세미나 속에서 방법을 찾고, 강의를 하는 그 사람을 찾지 않는다. 세미나를 하기까지 그가 어떤 삶을 ...
세상이 교회를 비필수적이라고 말할 때,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세상이 교회를 비필수적이라고 말할 때,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교회의 재발견: 왜 그리스도의 몸은 필수적인가
콜린 핸슨, 조너선 리먼/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미국은 락다운(이동금지명령)과 셧다운(폐쇄 명령)으로 모든 비필수적 모임과 행사, 심지어 사업장 운영 등을 강력하게 통제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건강 외적인 영역의 위험성을 고려하면서 “필수적”(essential)인 일들에 한하여 규제를 완화했다. 이런 정책의 전환은 대한민국에서도 유사하게 이루어졌다. 문제는 국가가 교회를 ‘필수적’이지 않다고 규정하고 모이기를 폐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참 교회는 스스로 ‘필수적’이지 않다고 인정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하나님...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싸워라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싸워라
일상의 영적 전쟁: 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굳건히 설 것인가
데이비드 폴리슨/권명지/토기장이/조정의 편집위원


<일상의 영적 전쟁: Standing Firm in Spiritual Battles>이란 제목을 봤을 때, 그리스도인의 성화, 영적 전쟁을 다룬 책이라고 생각했다. 죄인이 거듭나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과정, 육체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육체와 세상과 마귀와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다룬 책이라 생각했다. 부제인 “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굳건히 설 것인가”도 저자인 데이비드 폴리슨이 발전시킨 성경적 상담학의 주요 주제인 신자의 영적 성장과 관련된 책이란 걸 말해준다. 추천인...
변한 세상, 변함 없는 복음, 어떻게 전파할까? 변한 세상, 변함 없는 복음, 어떻게 전파할까?
탈기독교 시대 전도: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팀 켈러/장성우/두란노/조정의 편집위원


지금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 시대는 없었다. 타락과 부패가 만연한 세상은 기독교가 추구하는 세상이 아니다. 교회가 기다리는 세상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온전히 실현되고 악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새 하늘과 새 땅)이다. 어떤 사람은 중세 시대 교회와 정부가 결탁했을 때 기독교인이 세상을 지배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기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만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참된 기독교의 특징은 회심이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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