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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요약본

청교도 이 세상의 성자들

김재윤 | 2003.09.10 12:28
리랜드 라이큰 지음, 청교도-이 세상의 성자들, 생명의 말씀사

이 책은 교회사속에서 가장 탁월했던 그리스도인들로 평가받고 있는 청교도들에 대해 쉽게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은 청교도들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청교도들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이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청교도들의 노동관
청교도들은 모든 직업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순종하며(봉사를 통하여), 이웃 사랑을 나타내는 장(場)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직업에 필연성을 불어넣었다.
모든 노동이 존귀하다는 청교도들의 확신은 평범한 일들을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윌리엄 퍼킨즈는 "비록 집안 청소나 양치기 등의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어떤 소명으로라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천명했다.
청교도들에게 삶의 모든 영역은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 그들의 모든 목표는 매일 하는 일을 하나님을 향한 종교적인 헌신과 통합시키는 것이었다. 청교도들의 목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지 이 세상의 어떤 노동에 갇혀서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통해서이다.
청교도적 소명 개념이 끼친 영향 중의 하나는, 일하는 사람을 하나님을 섬기는 청지기가 되게 했다는 점이다. 청교도들이 보기에 받은 바 소명을 행한다 함은 곧 하나님 앞에서 일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명 교리가 가져다 준 또 다른 현실적인 결과는 직업에 만족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소명에 충실해야 함을 굳게 믿었다. 천직이란 가볍게 결정할 것도, 쉽게 포기할 것도 아니었다.
청교도들의 소명관은 사람에게 임무를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의식의 구현으로서의 일, 자기 직무에 만족함, 그리고 자기 천직에 충실을 기함 등 여러 개념과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다.
청교도들의 소명관은 마음 내키는 대로 이직(離職)하는 행태에 제한을 가한다. 대부분의 청교도들이 정당한 경우에라도 직업을 옮기지 못한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그런 관행을 분명히 경계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과 사람을 섬긴다는 영적, 도덕적 배경을 떠나서 노동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청교도들이 게으름에 대해 나타낸 극도의 불쾌감과 노동에 대한 칭송의 일부는, 노동이 창조 제도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복에 필수적이라는 믿음에서 나왔다.
청교도가 보기에는 '영적인 일'조차 게으름의 핑계가 될 수는 없었다.

2. 청교도들의 재물관
청교도들은 "돈은 그 자체로 선하다"는 칼빈의 노선을 따랐다. 청교도들은 재물을 하나님의 선물로 보았기 때문에, 인간의 공로가 스며들 길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청교도들은 돈을 합법하다고 생각했기에 사유 재산을 옹호했다. 청교도들은 경건이 성공의 보증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청교도들은 가난을 본질적인 미덕으로 보는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과 혼선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청교도들은 성공을 하나님의 인정, 또는 성공한 사람들의 덕으로 간주하기는커녕, 오히려 번영을 유혹으로 보는 쪽에 가까웠다. 청교도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한 사람이 얼마를 보느냐가 아니라, 그가 얼마를 쓰느냐였다.
청교도들이 생각한 이상은 중용이었다. 청교도들이 사치를 반대했다고 해서 그들을 금욕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이다. 청교도들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사는 세 가지 비결을 발견했다. 하나는 수수한 생활에 만족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비결은 지출과 탐닉에 자발적으로 자갈을 물리는 능력이다. 세 번째 비결은 부와 재물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자리매김이다. 청교도들이 돈과 재물을 얻었을 때, 일단 만족하고 중용을 취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볼 수 있다.

3. 청교도들의 가정관
청교도들에 따르면, 가정이 존재하는 가장 큰 목적의 하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정이 경건한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라고 믿었다.
청교도들은 가정을 우선 하나님과 사회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라고 강조했지만, 또한 가정이 가족 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적 완성을 위해 있는 집단임을 잊지 않았다.
청교도들은 결혼 생활에서 각자 져야 할 책임 영역이 있고, 아내 또한 이 영역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는 권위가 있다고 믿었다. 청교도들이 자녀들에게 보인 태도는, 자녀란 하나님의 소유요 청지기로서 양육하라고 부모에게 맡기신 존재라는 확신에 뿌리를 박고 있다.
청교도들은 종교 교육에 중요한 한 면이 바로 징계에 있다고 보았다. 청교도들이 발견한 가장 효과적인 그리스도교 교육은 교리 교육이었다. 청교도들은 가정을 영적으로 요새화하는 비결의 하나가 결혼의 영적 고결함을 지키는 데 있다고 보았다.
청교도들에게 가정은 언약 신학을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시험 기회였다. '질서 잡힌' 가정이라는 개념은 청교도 가정관을 설명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요소이다. 청교도들이 이상으로 생각했과 또 실현하려고 했던 가정은 남편/아버지가 책임이 있는 머리이고,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어머니가 어떤 부분을 책임지며, 자녀들은 양친에게 훈련과 양육을 받는 위계 조직이었다.
청교도들은 자녀 교육과 관련해서, 아이들 역시 부모와 마찬가지로 타락한 존재로서 그들의 죄된 경향을 하나님과 도덕적 선을 향해 선회해야 하는 인격임을 강조했다. 청교도적 자녀 교육의 세 가지 기초는 조기 훈련의 중요성, 개념 뿐 아니라 모범의 영향, 제재(制裁)와 적극적인 후원의 조화였다.

3. 청교도의 설교관
청교도의 설교는 국민 전체에게 영향을 미쳤다. 청교도의 설교가 인기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설교에 대해 보였던 투철함에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청교도들이 설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척도는 잦은 설교 횟수이다. 청교도 설교가들은 주도 면밀하게 설교를 준비했다. 청교도들은 설교의 방법론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청교도들은 설교를 계획하고 치밀하게 구성했다. 길고 세밀했지만, 결코 축 늘어지지 않았다. 신중하게 절제하면서 최종 목표를 향해서 한걸음씩 나갔다. 설교 내용이 성경을 떠나지 않도록 방법론적으로 배려함으로써 진리를 지적으로 파악하고 모든 생활에 신학적인 교리가 적용되도록 했다.
청교도 설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있다면, 교리를 생활에 적용해야 한다고 역설한 점이다. 청교도들은 회중의 양심에 호소하는 일이 적용이라고 믿었다.
청교도들은 설교를 인격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역설하던 사람들이었다. 청교도 설교자들이 설교를 통해서 달성하려 했던 바는 거룩한 생활이었다. 청교도들은 설교에서 지적인 요소를 무척 강조했지만, 이런 이지적 이해가 마음가 의지에 뜨겁게 호소하는 힘과 잘 조화를 이뤘다.
청교도들이 쉽게 설교한 이유는 설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미학적인 탁월함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영적인 훈계에 있다는 신념 때문이기도 하다.

4. 청교도들의 예배관과 교회관
청교도의 삶은 예배의 연속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큰 뜻 아래 산다는 지속적이고 생생한 의식을 가지고 예배에 임하려고 노력했으며 종교적인 활동, 개인, 가정, 그리고 공공 영역에서 벌이는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예배에 새로움을 불어넣었다.
청교도들은 교회를 '모이는 집'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물리적인 장소에서 예배의 진정한 중심이 되는 영적 활동으로 시선을 옮겨 보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청교도 교회론에서 또 하나 혁명적인 요소는 교회와 예배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급부상한 것이다. 청교도들의 예배는 질서 정연하고 조직적이었다. 청교도들은 의식과 제의를 최대한 자제했다.
청교도들은 교회 건물과 집기들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청교도는 예배 음악을 단순하게 정리했다. 또한 청교도들은 성례를 간소화했다. 청교도 예배는 설교에서 절정을 이룬다.
청교도들이 예배와 관련하여 추구한 주요 목표의 하나는 단순 반복으로 말미암아 예배가 신선함을 잃고 따분한 일상사로 전락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청교도들은 방만하고 위선적인 예배는 질색이었다. 청교도들은 또한 자발적인 예배를 원했다. 청교도들은 개인 차원의 예배를 독려하였을 뿐 아니라, 가정 예배 역시 구태 의연하게 드리지 않도록 창의성을 불어넣었다.
청교도들의 주일 성수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4계명에 근거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 사이에 연속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주일 성수가 지닌 도덕적인 일면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청교도들이 안식일에는 일을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여기에는 동시에 주일을 게으름 피우는 날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5. 청교도의 성경관
청교도들은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라면,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을 전혀 속이지 않는 믿을 만한 지침이라고 생각했다. 청교도들은 성경의 권위를 삶의 전영역으로 확대했다.
청교도들은 성경의 권위를 도덕의 문제에까지 확대시켰다. 청교도들에 따르면 성경은 교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문제를 관장하기도 한다. 청교도들은 성경의 권위를 말할 때 그것을 구원에 관련된 문제로 제한하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개방해 두었다.
성경이 통일되어 있다는 믿음보다 청교도들의 성경 해석 원리에 중요한 요소는 없었다. 청교도들이 성경을 대한 기본 자세는 성경이 항구적으로 적합하고 모든 세대에 대해서 새로운 책이라고 믿는 자세였다.
성경이 그들의 상황을 향해 말씀한다고 확신한 청교도들은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청교도들이 성경을 행위의 근본으로 보게 된 원인은 성경이 개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 까닭이다.
청교도들은 성경을 정적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동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성경의 능력을 철두 철미 신봉했다. 청교도들은 성경의 사람들이었다.

6. 청교도의 교육관
청교도들은 교육과 이성을 옹호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지를 혐오했다. 그들은 특별히 종교적인 무지를 더 없이 혐오했다. 최소한 청교도 지도자들은 물질적 부요보다는 교육받은 지성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청교도들의 수업은 모든 인간 지식을 성경 진리로 가늠하고 재어보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청교도들이 교육에서 기독교적인 요소를 강조했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청교도들이 인문학을 과감하게 수용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일반 은총 교리가 버티고 있었다. 교육에 관한 청교도들의 이상은 인문 교육에 있었다. 청교도 교육 이론은 놀라우리만큼 통일되어 있고 유기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반, 그리고 특별 계시를 묶고, 성경과 인간 지식, 신앙와 이성을 통합한다. 그들의 교과 과정에는 신학과 인문/자연 과학, 성경과 고전이 들어 있었다.
교육의 목적 역시 광범위하다. 경건과 지식, 하나님을 닮는 일과 실생활에서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하도록 구비되는 일이 포함된다. 청교도 교육은 전인 교육을 목표로 삼았다.

7. 청교도의 사회활동
청교도들은 반(反)계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회를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리스도인의 원리를 양산(量産)해야 할 장으로 여겼다.
청교도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에 참여했다. 그들은 사회를 이 땅에서 일구어야 할 삶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서의 한 부분이라고 여겼다. 청교도들은 기독교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모든 문화 영역에 참여했다.
청교도들이 건강한 사회를 추구했던 것은, 일부는 공동선에 대한 책임을 통감했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이 건설한 뉴잉글랜드에서 독신 남녀들은 가정을 이루어 살도록 강한 권고를 받았다.
청교도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사회의 결집력이 정부 구조에 달렸다고 보지 않았다. 청교도들이 보기에 사회는 상호 의존적인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비교적 가난했던 청교도 설교가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푼 모범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청교도들는 사회 부조리 척결을 위한 시민 행동을 장려했다.
청교도들의 사회 의식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대되었다. 청교도들이 개인의 죄에는 민감하고 사회적인 죄에는 무관심했다는 세평은 정확하지 못하다.
청교도들은 정부나 사회 기관보다는 개인의 사회적 책임을 더 중시했다. 청교도들은 경제적인 원조를 생각할 때에도 역시 개인주의적인 방향을 택했다.
청교도들은 몸답고 사는 사회의 질을 진심으로 염려했다. 공동체에 대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청교도는 개인주의를 융성케 한 운동으로도 알려져 있다.
청교도들은 사회 사상가요 활동가였다. 국가 교회라는 상황에 처한 그들이었기에, 구체적인 종교적 확신을 펼치고 주장하다 보면 자연 정치적인 영여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의 사회 활동은 인민이 공동체의 공동선을 추구하도록 요구하며, 선행을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에 대한 감사로 보는 언약 신학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사회 활동의 한 국면으로는 사회에서 소외받고 곤경에 빠진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일이 있다. 또 다른 국면으로서는 사적인 것뿐 아니라 공적이고 사회적인 죄를 탄핵하는 일을 들 수 있다. 청교도들은 정부나 제도 차원이 아니라 주로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회 활동을 벌였다.
청교도들은 공동체를 강조했지만, 한편으로 개인의 자유와 존엄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균형을 취했다. 그들은 출샛이나 지위를 앞세운 특권층에게 각성을 촉구하고 평등을 부르짖었다. 그들은 또한 통치받는 사람의 합의가 있어야 통치할 수 있다는 이론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현실에 옮겼다.

이 책은 교회사의 거인들을 청교도들의 공헌과 그들에게서 배울점들을 잘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청교도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개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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