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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요약본

꺼져가는 심지와 상한 갈대의 회복

김재윤 | 2003.09.03 23:31
리챠드 십스 지음, 꺼져가는 심지와 상한 갈대의 회복, 전용호 옮김, 지평서원

Ⅰ. 그리스도께서 다루실 사람들의 상태  

1. 그리스도께서 다루셔야 할 사람들의 상태.
1) 그들은 상한 갈대였다.
2) 그들은 꺼져가는 심지였다.

2. 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태도.
그분은 상한 살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소중히 여기신다.

3. 그분의 이 같은 동점심 있는 돌보심은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변치 않고 계속된다.

본문에서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1. 상한 갈대는 일반적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받고자 나아왔던 사람들처럼 어떤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2. 그는 그 비참함 때문에 그 비참함을 야기시킨 죄를 깨닫게 된 사람이다. 죄가 아무리 자신을 위장하려고 해도 상함과 부서짐은 죄의 결과로 나타나고 말기 때문이다.
3. 그는 죄와 비참함으로 상하기까지 한 민감한 사람이다.
4. 그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없음을 알고, 다른 이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하는 끊임없는 욕구에 이끌리게 된다. 그가 가진 어떤 희망은, 비록 그가 담대하게 자비를 요구하지는 못하지만, 그를 일으켜 자신을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한다.

Ⅱ. 그리스도께서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심지 같은 사람들을 대하시는 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순서는 먼저 상처를 입히고, 그 다음 그 상처를 치료하시는 것이다. 시험을 당하고 있을 때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시험받으셨다는 것을 생각하라. 내가 당하는 시험에 따라서 은혜와 위로가 나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리스도는 죄와 사탄이 우리에게 입힌 모든 상처들을 회복시키신다. 그분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신다. 마치 어머니가 가장 병약한 자녀를 보다 특별한 사랑으로 돌보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가장 약한 자에게 가장 자비롭게 마음을 기울이신다.
진실로 상함을 입은 영혼을 죄를 가장 사악한 것으로 여기게 되고, 하나님의 호의를 가장 선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우리 자신을 상처 입히실 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과 연합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실 때 우리도 우리 자신을 낮추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서 상처를 받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들의 죄로 찔러 상처 입힌 그분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강철처럼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인 우리를 향해 베풀어 주시는 성실하심의 한 부분이다.
우리 자신에 대한 거룩한 절망이야말로 진실한 소망을 품게 하는 토대가 된다. 그리스도의 양떼는 연약하고 늘 이것저것이 부족한 양떼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그 양떼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다.
1.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는, 특히 갓 회심한 사람들 속에는 약간의 은혜만이 존재할 뿐이고 그것마저 많은 결점과 뒤섞여 있다.
2. 그리스도께서는 꺼져가는 심지를 결코 끄지 아니하신다.
은혜는 겨자씨와 같이 자라나 끝내 완성에 이른다. 우리의 불완전한 시작은 우리로 하여금 완전을 향해 달려가도록 자극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스스로 겸비해지도록 하자. 아무리 작은 은혜라 할지라도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가장 순결한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가장 순결한 행동조차 그리스도께서 정결케 해 주셔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직무이다.
은혜만을 보고 교만해서도 안 되고, 부패만을 보고 낙담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패한 본성을 부채질해서 교만하게 만드는 조건이나 지체의 강함보다는 오히려 연약함이 영혼을 가난하게 만듦으로써 사람을 은혜로 더 가까이 이끌어온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지체가 약하다는 이유로 그리스도께서 거절하시는 사람은 전혀 없다.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유리 그릇과도 같아서 부드럽게 다루면 오래 가지만 조금만 거칠게 다루어도 그만 상처를 입는다. 자비를 구하는 사람들이 겸비해지는 것은 마땅한 일이나, 비참한 형편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무자비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불이 물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처럼 은혜는 죄와 함께 할 수 없다. 육체의 자유를 갈망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꾀를 내는 사람들은 자기들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는 셈이다.
끄지 않으실 심지의 표지 열 가지.
1. 끄지 않으실 심지에는 거룩한 불이 조금은 있다.
2. 끄지 않으실 심지에는 사랑의 열기가 조금은 있다.
3. 끄지 않으실 심지는 미약하지만 하나님의 빛을 따른다.
4. 끄지 않으실 심지에는 미약하지만 분별력이 있다.
5. 끄지 않으실 심지는 하나님의 빛을 즐거워한다.
6. 끄지 않으실 심지에도 미약하지만 활동력이 있다.
7. 끄지 않으실 심지에는 부드러운 마음이 있다.
8. 끄지 않으실 심지는 미약하지만 선을 행한다.
9. 끄지 않으실 심지는 미약하지만 하늘을 향한다.
10. 끄지 않으실 심지는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죄의 전체적인 넓이와 깊이를 알게 되면 우리는 더 겸손해지게 된다. 우리 영혼에서 늘 더러운 것들이 흘러 나온다는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매일매일 죄를 씻어 주고 용서해 주는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될 필요가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여 가장 훌륭한 신자라 할지라도 자주 무릎을 꿇고 기도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죄를 더 많이 보면 볼수록 우리는 죄를 더 많이 혐오하게 되므로 결국 우리의 부패는 덜하게 된다. 은혜가 더할수록 영적인 생명도 풍성해지고 영적인 생명이 풍성해질수록 반대되는 것에 대한 적대감도 강해진다.
나중에 위로를 잃는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마음을 편하게 하겠다고 부패함에 굴복하는 것보다 지금 우리의 부패함 때문에 괴로움을 느끼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우리의 기도가 아무리 미약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고 우리의 기도가 양자의 영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2.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3. 우리의 기도가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께 드려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거기에 자신의 향을 섞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흘리는 눈물 한 방울도, 우리 입에서 흘러나온 거룩한 한숨 한 마디도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모든 은혜는 그 은혜를 사용할수록 더 풍성해진다. 기도의 은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기도를 함으로써 기도를 배우게 된다.

  나를 당신의 언약으로 이끌어오신 당신이신데,
  내 연약함 때문에 나를 쫒아내시겠나이까?

  그 연약함들은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만큼
  나 자신에게도 깊은 슬픔이 되는데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엑 모든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마지못해 하는 본성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는 일이 거의 없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돌보심을 받을 가격이 없을 정도로 비천하지 않다.
자비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과부의 재산 중의 일부이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된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       (mercy)으로 네게 장가들며"(호 2:19)
만약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지 않느다면 그를 섬길 민족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런 근거 없이 자화자찬으로 우리 자신을 기만하지 않기 위해서, 연약함이 다음의 여러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1. 우리의 가장 선한 행동들에 달라붙어 있는 불완전함.
2.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을 때, 즉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륜이 짧아서 하게 되는 그런 행동들.
3.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전혀 몰라서 생기는 것들.
4. 갑작스런 시험이 먹구름처럼 밀려와 우리의 판단을 흐릴 때, 우리의 일반적인 경향이나 목적과는 반대로, 고의적이지 않지만 갑자기 돌발적으로 불거져 나오는 것들이다.
이런 연약함들을 발견한 다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1. 제일 먼저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식하게 된다.
2. 그 다음에 우리는 그것 때문에 슬퍼한다.
3. 슬픔이 불평으로 변한다.
4. 우리는 불평하면서 우리 자신을 개혁하기 위해 사력을 다 기울여 노력한다.
5. 그렇게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의 부패함을 어느 정도 극복하게 된다.
연약함을 이와 같은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그것들이 오히려 겸손의 이유가 되며, 그것이 비록 우리가 매일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설 수 있게 된다.
연약함 속에 담대해지기 위해 필요한 지식 네 가지.
1.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증거함
2. 최선을 향한 성향이 있음을 증거함
그 사람 속에는 최선을 향한 진지하고도 일반적인 성향이 반드시 존재한다. 경건한 사람이 갑자기 어떤 구체적인 일에 있어서 유혹을 받아 탈선한다고 해도 그 사람 속에는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삶의 목표가 전반적으로 옳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회복하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따를 것이다.
3. 올바른 판단력이 존재함을 증거함
그 사람 속에는 최선책을 허용하는 올바른 판단력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4. 그리스도를 향한 부부애가 있음을 증거함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그들의 주(主)요, 남편이신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정욕이나 다른 사람들의 정욕에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넘겨 주지 않는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주 불쾌하고 어떤 거리감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결점들을 간과하시는 것을, 아니 약함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시는 것을 당신의 영예로 여기신다.
아버지는 자신의 자녀 속에서 결점보다는 자기와 닮은 점을 더 귀중하게 본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안에서 자신의 형상을 볼 때마다 우리를 사랑할 이유를 발견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최상의 상태에 있을 때 우리의 본성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상이 미천해져서 본성적이고 전체적인 약함에 꽁꽁 얽매여 있을 때 그러한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던 것이다.
사탄이 매일 연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베풀어 줄 매우 부드러운 사랑이 없는 것처럼, 우리 안에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우리와 성자 예수님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서 당신의 얼굴을 감추시는 것처럼 보일 때, 바로 그 때처럼 그리스도께서 능력으로 우리를 붙드시며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임재해 계시는 때도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우리의 모든 필요
1. 성부께서 부여하신 권한 : 모든 능력이 그리스도께 주어졌다.
2. 그리스도 자신 안에 있는 능력 : 그래서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3. 언제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아는 지혜 : 그것도 그리스도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이다.
4. 자원함 :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의 뼈를 취하신 것은 그분이 스스로 자원해서 하신 일이다.

Ⅲ. 그리스도의 심판과 승리

세부적인 일들에 있어서 우리 이해력(판단력)이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지는 대부분 우리 마음의 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즉 마음이 성화되었으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주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목적은 그가 승리하셨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인치는 것이었다.
1. 죄로 말미암아 죽어 있는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기 위함이다.
2. 죄책에 수반하는 영적 죽음의 함정과 슬픔에서 우리 영혼을 건지기 위함이다.
3. 마치 태양이 짙은 구름을 가르고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것처럼 우리들을 더 높이 일으켜 세워 더 큰 위로를 얻게 하기 위함이다.
4. 우리를 특정한 미끄러짐과 넘어짐에서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다.
5. 우리를 이 세사에 삶의 고통스럽고 어두운 모든 상황으로부터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다.
6. 그리고 마침내는 흙으로부터 우리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그렇게 하셨다.
성화에 있어서 겪는 여러 가지 갈등과 실패들이 우리의 칭의의 평안과 구원의 확신을 쇠약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안에 어떤 악이 있느냐 하는 거은 우리 안에 어떤 선이 있느냐 하는 것에 비하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한다.
우리 안에 어떤 부패가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것들의 영향으 얼마나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패했느냐 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목숨과 진로에 비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영적인 원수들을 직접 대항하는 것보다는 은혜를 부지런히 활용하는 편이 훨씬 더 유익할 때가 자주 있다. 그리스도의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존해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예이다.
승리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우리 자신을 스스로 부끄럽게 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우리 죄를 고백함으로써 우리 본성의 교만을 이기는 것이다.
2. 사죄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음으로써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불신앙을 극복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께서 도와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그 동안 우리를 지배해 왔던 그런 죄들에 대항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는 것이 제일 좋다. 왜냐하면 그의 통치는 승리하는 통치이므로, 가장 강력한 원수들의 위험과 두려움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고, 우리의 본성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1. 제거하심으로써, 또는
  2. 약하게 하심으로써, 또는
  3. 잠시 연기시키심으로써, 그리고
  4. 우리 안에 자신의 은혜의 능력을 더 풍성하게 베풀어 주심으로써
우리가 넘어지기 전에 서 있던 곳보다 더 높은 곳으로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넘어질 때, 그리고 넘어져 상처를 입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시 싸매어 주시도록 그분께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확보되고 보호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고 있으며 같은 능력을 붙잡고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풀이 죽어 날개를 접고 있을 때는 우리를 강하게 하시며, 우리를 소생시키신 후에도 우리가 완전한 승리를 쟁취할 때까지 우리를 결코 떠나시는 법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어느 곳에 오시든지 거기에는 언제나 분열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1. 한 사람 내에 분열을 초래하실 뿐 아니라,
2.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3. 교회와 교회 사이에도 분열을 초래하신다.
우리의 적이 누구인가를 바라보는 것보다는 누가 우리의 심판관이며 대장인지를 더 많이 바라보도록 하자.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더 많이 바라보도록 하자.
환자가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에 대해서 좋은 자부심을 가지면 병이 이미 절반은 치료된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전투에서 그리스도의 자비와 능력을 사용하자.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가장 낮은 형편에 놓여져 있는 바로 그 때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가 소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때이다.
우리의 믿음대로 될 것이다. 우리가 모든 의무를 격려하는 말도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여 믿음이 다른 모든 은혜들을 강력하게 하도록 하자. 믿음이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이 확신을 갖는 것이 믿음을 정말로 강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비록 믿음이 자주 꺼져 가는 심지와 같을지라도 그것이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굳게 확신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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