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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요약본

시험당하신 그리스도

김재윤 | 2003.10.30 16:19
토머스 맨튼 지음, 시험당하신 그리스도, 생명의 말씀사

이 책은 마태복음 4:1-11까지의 예수님의 시험당하신 사건을 한절 한절 깊이 강해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청교도 설교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이 책의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께서 시험에 복종하신 이유
1) 아담과 관련하여
정복한 자가 먼저 정복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죄인들이 갇힌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낙원에 들어간 직후에 공격을 받았던 첫 아담은 패배하였고, 그래서 둘째 아담이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사탄을 물리치셔야 했다. 그분은 치열한 접전 끝에 대적을 물리치셨다. 마귀는 자신이 인생들을 사로잡았던 것과 같이 그들을 풀어주어야 한다. 아담이 할 수 없었던 것을 그리스도께서 하셔야 한다. 각자가 승리를 얻기 전에, 그들 속에 계시사 그들을 대표하는 분이 먼저 승리를 얻으신다. 패배 역시 그들을 대표하는 자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아담이 자녀를 갖기 전에 패배하고 말았듯이, 그리스도는 엄숙하게 복음을 전하며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승리를 거두셨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대적을 물리치신 위대한 승리를 엿볼 수 있다.
2) 사탄과 관련하여
먼저 그리스도는 극한적인 시험에 직면하사 순종을 통해 승리하셔야 한다. 그러고 나서 고난을 통해 승리하셔야 한다. 시험을 극복하심으로써 그분은 시험하는 자인 사탄을 물리치셨고, 죽음을 통해 고문자이며 하나님의 징벌을 대리 집행하는 자인 사망의 왕을 물리치셨다. 그분은 공로로 사탄을 물리치시기 전에 실례로써 그를 물리치셨고, 또한 핍박당하는 자나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자의 모범을 보이시기 전에, 시험당하는 자의 모범을 보이셨다.
3) 성도와 관련하여
그분이 시험에 복종하신 이유가 히브리서 4:15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리스도는 공격자가 얼마나 강한지, 우리의 본성이 얼마나 연약한지,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심한 공격을 당할 때 견디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체험하셨다. 고난과 시험에 대한 그분 자신의 체험은 그분으로 하여금 따스한 긍휼을  품으시게 했고, 그 지체들의 곤경과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게 했다.
4) 그리스도 자신과 관련하여
그분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모범이 되실 수 있었다. 손쉽게 시련없이 행해지는 순종은 별로 가치가 없다. 그러한 순종은 시험에 부딪히자마자 내팽개쳐지지 십상이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히 11:17).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천사들보다 더 탁월하시며, 따라서 그분은 자신의 긍휼과 일관성 및 하나님에 대한 신뢰 등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실 수 있다. 또한 그분은 친히 시련을 당하사, 극한 시험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굳게 붙들어야 하는 이유를 우리에게 본보기로 가르쳐 주실 수 있다.

2. 우리에게 주는 유익
1) 우리의 큰 대적이 누구인지를 보여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을 베푸시는 반면에, 마귀는 인생의 곤경과 파멸을 추구한다. 따라서 그는 원수라 불린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마 13:39). 또한 그는 "악한 자"로 지칭된다(마 13:19). 또한 그는 "악한 자"로 지칭된다(마 13:19). 그는 악에 있어 단연 으뜸이다. 이 사악하고 잔인한 영이 첫 사람을 파멸시켰기 때문에,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하는"(요 8:44)자로 불린다. 그가 거짓말쟁이인 것은 간교한 속임수를 쓰기 때문이고, 살인자인 것은 자신이 무엇을 했고 또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에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대적했고 우리를 대적하는 자가 바로 사탄이다. 그는 우리의 건강을 훼손시켰고, 우리로 약을 구하지 못하도록 훼방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타락 상태에서 회복되는 것을 방해한다.
2)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시험에 직면함을 가르쳐 준다.
만일 누군가가 시험에서 예외이기를 요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공격과 시험을 당하셨다. 만일 마귀가 우리 구주를 시험했다면 우리는 더욱 담대히 시험할 것이다. 신자들은 아직 여행 중에 있으며, 종착지에 당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전장에 있고, 승리의 면류관을 쓰지 않은 상태이다. 대적이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시련 없이 천상에 이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 5:9). 예외적인 특권을 바라거나 시험에서 면제되기를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군사로 등록해 놓고서 전투나 싸움은 기피하는 태도이다.
3) 싸움의 방식, 곧 사탄의 공격 방법과 우리 구주의 방어 방법을 보여 준다.
ⅰ) 사탄의 공격 방법
사탄의 간계를 알면 유익하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후 2:11).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을 더욱 잘 지킬 수 있다. 사탄은 우리를 공격할 때 자주 사용하는 시험으로 그리스도를 공격했다. 그 시험은 이렇게 요약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요일 2:16). 또한 야고보서 3:15은 이렇게 요약한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마귀는 이 시험을 통해 우리의 첫 조상을 공격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창 3:6). 마귀는 이와 동일한 시험들로 그리스도를 공격했다. 즉 돌을 떡으로 변하게 하기를, 육신의 갈망을 만족시키기를, 눈을 유혹하는 광경을 보여 주면서 엎드려 마귀 자신을 경배하기를, 교만한 마음으로 공중을 날기를, 사람들 가운데 영광을 추구하기를 유혹했던 것이다.
ⅱ) 그리스도의 방어 방법
이는 우리에게 시험에 어떻게 처신하며 극복할 것인가를 가르쳐 준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 말씀은 "성령의 검"(엡 6:17)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4).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기억 속에 거하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진리에 대한 온건한 믿음과 열렬한 사랑을 통해 우리 심령 속에 거하게 하는 것이 좋다.
결단을 통해.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벧전 4:1). 여기서 "같은 마음"이란 그리스도의 마음을 뜻한다. 사탄이 담대하고 집요하게 괴롭힐 때, 그리스도는 분개하사 사탄을 제지하신다. 우리는 자기 양심의 의무감을 통해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두 갈래의 마음은 하나니모가 마귀 사이에서 분열된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을 좇아, 단호한 결단으로써 모든 시험에 귀를 막아야 한다.
4) 성공의 소망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은 믿음과 확신의 본보기로서 그리스도를 우리 앞에 제시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고자 결심할 때 우리는 사탄의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머리요 대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마귀를 물리치는 본보기를 찾게 된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 구원의 원수들이 결박당했으므로 우리는 담대할 수 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성정을 입고서 마귀를 물리치셨다. 따라서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같은 목적으로 동일한 대적들에 대항하여 싸운다. 그분은 가득한 긍휼로써 자신의 연약한 지체들인 우리에게 능력을 베푸시며, 이는 분명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된다.

3. 시험의 과정
1) 사탄이 행한 일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ⅰ) 마귀가 택한 장소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거룩한 성이란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이 명칭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하며"(사 48:2),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사 52:1). 예루살렘을 가리켜 이렇게 칭한 것은, 그곳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처소였고, 또한 하나님이 거기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그 은혜로우신 임재를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혹자는 본문에서 구태여 그곳을 거룩한 성이라고 부른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그곳은 피의 성읍이요, 모든 불의의 처소였으며, 하나님의 율법이 무시되고, 여호와 신앙이 타락하여 오염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여호와의 성전이 위치하였다. 거룩하고 선한 이들의 유적들이 일부 남아 있었고, 어느 정도 은혜가 지속되고 있었으며, 또한 상당히 부패한 상태이긴 하나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한 장소였다.
ⅱ) 마귀가 그리스도를 데려간 방법
하나님은 자신의 크신 영광을 위해, 그리고 우리에게 교훈을 베푸시기 위해 마귀로부터 그리스도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실제적인 이동을 허용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빌라도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만일 이 권세가 위로부터 허용되지 않았다면 그러한 이동 과정들이 실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요 19:11). 그러므로 이 이동은 그리스도의 연약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모든 책략(간교한 술책)을 묵묵히 감내하시는 그분의 크신 인내를 반영한다. 또한 그것은 시험하는 자의 힘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복종하였으며, 그래서 광야에서뿐만 아니라 거룩한 성에서 마귀와 싸우고자 하셨다. 사탄의 도구들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마저 감내하신 그리스도께서 사탄으로 하여금 자신을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도록 용인하셨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 사탄의 말(6절)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두 가지이다.
ⅰ) 시험 그 자체-"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ⅱ) 시험을 뒷받침하고자 제시한 이유-"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ⅰ) 시험 그 자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마귀 눈(마음)에 박힌 티끌(혐오 대상)이 무엇이었는지에 주목하라.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주이자 메시아로 선포되었다는 사실이다. 마귀는 그리스도로 하여금 온 예루살렘 거민들 앞에서 그 사실에 대한 증거를 드러내 보이도록 요구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실패하여 떨어져 죽으셨다면, 유대인들은 그분을 사기꾼으로 여겼을 것이다. 만일 그분이 화를 당하지 않고 성공하셨다면 마귀의 제안에 복종하신 셈이며, 마귀의 지시에 따름으로써 첫 시험과 관련하여 앞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죄악에로 빠져드셨을 것이다. 이는 곧, 사탄이 요구했던 것과 같은 증거에 의해 밝히 드러나지 않는 한 하늘로서 들린 하나님의 음성을 믿지 못하며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시험하려 드는 것과 같다.
ⅱ) 시험을 뒷받침하고자 제시한 이유
그 이유는 성경에서 취해졌다.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이는 시편 91:11,12에서 취한 내용이다.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여기서 고찰한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ㄱ) 성경을 인용하는 마귀의 간교함. 사도 바울은 이르기를, 사탄이 때로는 광명의 천사로 위장한다고 했다(고후 11:14). 사탄은 한때 선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삼상 28:18). 사실 사탄이 속임수를 쓸 때에는 용의 목소리로 말하기보다는 선지자의 음성으로 말한다. 요한계시록 2:24에서는 "사단의 깊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본문에서 사탄은 성경을 손에 들고서 그 말씀에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성직자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대적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오며, 최선의 말로 최악의 행동을 위장하며,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꾼다. 그는 성경에 의해 논박당했으면서도 성경을 이용하며, 자신이 너무도 미워하는 것을 존중하는 척한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는 자신의 색깔과 추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어리석은 마귀와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건한 척하는 간교한 마귀와 상대해야 한다.
ㄴ) 마귀가 인용한 구절은 경건한 자의 행복을 극구 기원하는 내용임.
하나님은 그분을 경외하는 자들을 지키고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천사들을 명하사 그들을 돌보게 하신다. 시험하는 자의 논거는 더 작은 것을 더 큰 것에 비교 적용하는 형태로 제시된다. 만일 하나님을 의뢰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랑하시는 아들은 더욱 지대한 보살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된 네가, 하나님 아들임을 밝히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도, 어째서 뛰어내리기를 주저하느냐?"
우리는 스스로를 위험에 던지고서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구원을 얻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 죄악을 범하거나 스스로를 위험에 방치해서는 안 되며, 다만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위험에 처했을 경우에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해야 한다.
3) 시험의 혹독함
ⅰ) 장소의 변화
사탄은 새로운 시험을 위해 새로운 장소를 택한다. 광야에서는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었으므로, 그리스도를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갔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거기서 마귀의 제안에 복종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자신을 드러내실 수 있다는 것이 마귀의 유혹이었다. 성전은 메시아의 집과 같은 곳이었다. 메시아가 거기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은 적절한 일이었다. 옛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다.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 3:1). 또한 그분은 시온에서 자신의 홀을 내어 보내시고(시 110:2) 자신의 왕국을 법을 내어 보내실 것이었다.
ⅱ) 시험의 변화
그리스도께서는 응당 하나님을 신뢰하실 것이므로, 마귀는 그러한 신뢰심을 부추기고자 한다. 앞에서 마귀는 그분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사용하시도록 시험했다. 여기서는 합법적인 방법을 무시하시도록 시험한다. 앞에서 마귀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성령께만 복종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제공된 것 이외에 다른 경로(행위)를 취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것이라는 식으로 시험했다. 여기서는, 비록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위험 가운데 내던지더라도 하나님이 그를 버리지 않으실 거싱라는 식으로 시험한다. 앞에서 마귀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반면에, 여기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굶주림 가운데서 그분을 지탱시켜 주었던 믿음이 스스로 뛰어내리는 위기에서도 지켜줄 것이라는 식이다. 즉 "그가 하나님의 보호를 기대했다면, 지금은 왜 기대할 수 없겠는가?"하는 식이다.
지금까지는 주저하도록 시험했지만, 이제는 뻔뻔스러워지도록 시험한다. 또한 하나님이 쓸데없이 자신의 권능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식의 지나친 확신을 갖도록 시험한다. 시험하는 자는 대체로 인간을 양면으로 시험한다. 때로는 그의 믿음을 약화시키는가 하면, 때로는 그의 의무를 무시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사탄 그 자신이 하늘에서 뛰어내려 쫒겨났으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뛰어내리게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ㄷ) 그 시험은 성경을 빙자하여 제시된 만큼 더 강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무기가 오히려 그분의 등을 내려치는 듯 했다. 마귀는 그리스도께서 확신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으로써 시험했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지배하는 원리이자 소망의 지표인 성경과 그 약속들이 시험을 위해 오용될 때, 그들은 심각한 고뇌에 빠지기 마련이다.

4. 시험에 대한 고찰
1)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시험을 물리치지사, 사탄은 새로운 공격을 시도한다.
그는 비록 실패한다(좌절을 당한다) 해도 다시 덤벼들 것이다. 이는 마치 성사긴 파리를 후려갈겨도 같은 장소에 다시 내려앉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마귀는, 욥의 재물과 자녀들을 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자, 다시 하나님께 간청드리기를 그의 살과 뼈를 치게 해달라고 했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2:4,5).
사탄은 부단히 성도들을 치려 하며, 모든 상황에서 새로운 공격을 가할 채비를 하고 있다. 이 일은 사탄의 사라지지 않는 악의로 말미암는다. 그는 우리의 평안과 복락을 대적하기로 맹세한 존재이며, 지금도 우리를 삼키려 한다(벧전 5:8). 또한 이 일은 하나님의 섭리하에 허용되고 있다. 비록 우리가 승리를 얻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방심하지 않고 시험에 잘 대처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삶은 전투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욥 7:1).
인간의 삶은 마치 병사의 생활처럼 지속적인 수고와 갖가지 시험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온전한 승리를 얻지 못한 상태이다. 이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 중에는 한 때 탁월한 봉사를 하다가 나중에 실패하고 마는 이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요시야는, 성전을 정돈한 후에 바로 느고를 대항하는 잘못을 범하였고, 이로 인해 생명을 잃고 말았다.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고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대하 35:20). 또한 베드로는, 영광스러운 고백을 한 직후에 주님께 육신적인 조언을 드렸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18, 23).
큰 위로를 받은 후에 쉽게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마는(길을 잃고 마는) 이들이 많다. 베드로는 위대한 신앙의 표현이라 할 만한 영광스러운 고백을 했으나, 그러고 나서 육신의 안일을 도모하는 간청을 통해 육적인 지혜를 발설했다. 그런즉 하나님이 사탄을 발 아래 밟으시기까지 우리는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로마 장군들이 전투에서 승리했건 패배했던간에 늘 새로운 전투를 도모하듯이, 사탄도 그러하다.
2) 하나님은 매우 사랑하는 자의 몸을 어느 정도 사탄의 처분에 맡기기도 하신다.
사탄은 그리스도의 몸을 광야에서 거룩한 성으로, 그리고 성전 꼭대기로 이동시키도록 허락을 받았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면서도 그들의 영혼이 사탄의 불화살에 시험당하도록 용납하시듯이, 그들의 몸 역시 사탄이나 그의 도구들을 통해 고통당하게끔 허용하실 수 있다. 그분이 사탄으로 하여금 욥을 괴롭히도록 허락하신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욥 2:6,7). 마귀가 인간의 몸을 제어하는 방법은 다음 세 가지이다.
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킴으로써 제어한다. 이는 스스로를 마귀의 흉악한 유혹에 방치하는 자들에게서 주로 발견된다.
ⅱ) 귀신들림을 통해서 제어한다. 이는 그리스도 당시에 흔했다.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마 15:22).
ⅲ) 질병을 통해 제어한다. 이는 더 흔한 경우이다. 마귀는 악창으로 욥의 몸을 괴롭혔다. 또한 시편 41:8에는 "악한 병이 저에게 들었으니"라는 언급이 나온다. 그것은 마치 마귀에게서 나온 치명적인 질병과 같다는 점에서 "벨리알에게 속한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시 91:3). 이는 우리를 찌르는 염병의 독화살이 사탄에게서 말미암는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3) 사탄이 우리를 끌어올린다면, 그것은 우리를 떨어뜨리기 위함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뛰어내리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을 점점 더 높은 곳으로(영예로운 자리로) 끌어올려, 마침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목을 부러뜨리도록(지옥으로 떨어지도록) 유도한다. 하만에게 그렇게 하였고, 그 외에도 많은 사라들도 하여금 위로 오르게 하여 결국에는 더 큰 추락에 직면하게 했다. 마귀 자신이 야심가였고,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추락했다.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8). 마귀가 자신의 유혹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에게 자상한 척하지만, 결국에는 "추락하라, 추락하라, 땅바닥으로 추락하라"고 부르짖는다.
하나님의 방식은 정반대이다. 인생을 높이고자 하실 때 그분은 먼저 인생을 겸손케 하시며 낮추신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그러나 마귀는 인생들을 구름 위로 끌어놀렸다가는 가장 낮은 멸망의 구렁으로 떨어뜨리려 한다. 아담은 자만심에 사로잡혀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지만, 실상은(사망의 징벌을 통해)멸망하는 짐승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4)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는 표현에 주목하라.
이 시험은 이전과 정반대이다. 앞에서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목숨을 보존하라고 했으나 이제는 합법적인 방법을 무시함으로써 스스로의 생명을 위험에 던지라고 시험한다. 앞에서는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실 때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배려를 불신하라고 부추겼으나, 이제는 보장되지도 않은 그분의 보살피심을 억지로 믿으라고 부추긴다. 마귀가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육신의 만족을 마음껏 채우도록 시험하며, 또 때로는 거룩한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끔 육신의 필요을 무시하도록 부추긴다. 따라서 마귀는, 마치 귀신들린 자가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졌듯이"(마 17:15), 우리를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이끌어간다. 사탄의 조종을 받는 자들은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마구 치우치며, 그리하여 사람들은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혹은 근친상간을 범한 고린도인들처럼 너무 지나친 슬픔에 사로잡히게 된다.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고후 2:7). 여기서 사도 바울은 사탄의 궤계가 숨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 도에 지나치는 것은 오히려 그 사역을 망치는 짓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의뢰하고자 하신다면, 마귀는 그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시험할 정도로 지나치게 의뢰하도록 유혹할 것이다.
5) 마귀는 자신의 악한 계획을 그럴 듯 하게 위장하기 위해 성경을 믿는 척할 수 있다.
본문에서 그는 그리스도 그분의 무기로써 그분을 좌절시키려 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두 극단에서 벗어나야 함을 배우게 된다.
ⅰ)단지 성경 말씀을 언급한다고 해서 그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지지하기 위해 말씀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 말씀을 심사숙고하지 않고서 그릇 적용하지 않는지 주의하자. 마귀도 성경을 인용할 수 있지만, 그 의미를 왜곡시킨다. 사탄의 도구들도 대개 그렇게 한다.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눅 22:38)라는 말씀을 교황에게 적용하여, 세속의 권한과 영적 권한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한 예이다. 성경 말씀을 나열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므로 단지 말씀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의미까지 고려해야(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ⅱ) 사탄이 성경을 이용했다고 해서 성경을 비방해서는(업신여거서는) 안 된다. 이는 인간의 이성이 세상에서 온갖 잘못에 악용된다고 해서 그것 자체를 비방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법 또한 때로는 악한 동기를 정당화하는 일에 쓰이기도 한다. 성경은, 교황 예찬자들의 말처럼, 자기 뜻대로 바꿀 수 있는(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증거 자료로 댈수 있는)것이 아니다. 사탄과 그의 도구들이 그 궤계를 널리 퍼뜨리는 데 있어 성경을 왜곡하고 오용하는 일을 가장 큰 방편으로 삼는다는 사실은, 성경의 권위와 영예를 반증하는 위대한 증거라 하겠다.
6)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그분의 백성을 해악으로부터 보호하는 특별한 일을 맡기셨다.
여기서 나는 다음 두 가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진정 그러하다는 것과, 둘째, 그렇게 하시는 이유이다.
ㄱ) 진정그러하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 밝히 입증된다. 성경 곳곳에서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위한 으뜸가는 도구들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당신의 신실한 종들을 보호하신다. 히브리서 1:14에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천사들의 사역과 직무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우리를 보살피는 것이지 우리의 숭배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부리는 영"이되, 우리가 부리는 영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이다.
ㄴ) 그렇게 하시는 이유
ⅰ)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 대한 위대한 사랑과 배려를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복된 영들을 보내시며, 그들은 그분의 얼굴을 뵙고, 이 땅에 거하는 그분의 백성을 보살핀다. 이는 마치 귀족이 왕의 지시에 따라 거지를 돌보는 것과 같다. 이 왕은 귀족과 거지를 모두 다스리시는 존재이다.
ⅱ) 우리는 무한하신 분의 사역보다는 유한한 존재의 사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적 교제(경험)의 범위 훨씬 너머에 계시므로, 우리는 그분의 특별한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
ⅲ) 마귀를 좌절시키시기 위함이다. 악한 천사들은 우리를 해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선한 천사들은 우리를 보호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마귀가 본문에서 스스로 인용한 성경 구절에 너무도 정통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종종 그는 그 구절의 효력을 실감해 왔으며, 그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선한 천사들과 자주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ⅳ) 우리로 하여금 하늘에서 온전히 알게 될 사실에 친숙해지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너희가 이른 곳은...... 천만 천사와"(히 12:22).

이상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훓어 보았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와 같이 시험당하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위로를 얻고 우리가 당하는 시험을 능히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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