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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요약본

신학의 체계

김재윤 | 2004.10.30 16:32
토머스 왓슨 지음, 신학의 체계,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토머스 왓슨의 신학의 체계는 청교도의 비할데 없는 작품들 가운데 가장 귀한 것 중의 하나다. 본서에 접하는 사람은 큰 보상을 얻는다. 왓슨은 청교도 시대를 복음주의 문헌의 부흥기로 만든 뛰어난 문필가였다. 그의 모든 작품에는 건전한 교리와 뜨거운 체험과 실제적 지혜의 행복한 결합이 있다. 특히 「신학의 체계」는 다른 모든 작품들보다 학생들과 목사들에게 유용하다. 본서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교리적 체험적 진리들을 다루고 있다. 본서는 그 수단으로써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사용하고 있다. 이 소요리문답은 '정의(定義)의 간결한 정확성'과 근본진리의 '논리적 정교화'로 능가할 것이 없다. 왓슨은 그의 철저한 교리적 지식과 체험적 진리의 지식들을 자신의 독창적이고, 간결하고, 힘차고, 신랄하고, 생기있고, 풍성하고, 예화적인 문체로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바르게 청교도들 가운데 가장 읽을 만하다고 평가를 받는다.
왓슨은 실천적 주제에 관하여 유용한 여러 책들을 썼는데, 그의 주저는 「신학의 체계」였다. 본서는 그의 사후 1692년에야 출판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본서는 신학에서 보통 사람들을 훈련시켜왔고, 지금도 흔하게 스코틀랜드 농부의 오두막에서 발견되고 있다.

Ⅰ. 은혜 안에서의 성장

"은혜 안에서 자라가라"(벧후 3:18).

참된 은혜는 확대되고, 자라가는 성격을 지닌 점진적 은혜이다. 그것은 빛을 가지고 있는 은혜이다. 먼저 crepusculum 즉 여명이 있다. 그 다음에 더 밝게 빛나는 한낮이 있다. 선한 그리스도인은 악어와 같다. Quamdiuvivet crescrit[얼마나 오래 생명은 성장하는가]. 그는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성도들은 그들의 빛에 대해서는 별들로, 또 그들의 자라감에 대해서는 나무로 비유된다(사 61:3과 호 14:5). 선한 그리스도인은 때가 지나면 사라지는 히스기야의 해와 같지도 않고, 계속해서 떠있기만 하는 여호수아의 해와도 같지 않고, 항상 거룩 안에서 진보하고, 하나님의 자라나게 하심으로 자라나는 사람이다(고전 3:6).

그리스도인은 어떤 점에서 은혜 안에서 자라간다고 말해질 수 있는가?
1. 그는 은혜를 행사하시는데 있어서 vigore 즉 활력적으로 자라간다. 그의 등잔은 불타고 있꼬, 빛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 소망에 관해 읽는다(벧전 1:3). 여기에는 은혜의 활동이 있다. 교회는 그의 향기가 고루 퍼지도록 성령의 바람을 위해 기도한다(아 4:16).
2. 그리스도인은 은혜의 정도에 따라 gradu 즉 점진적으로 자라간다. 그는 힘을 얻고 더 얻어 은혜의 정도에 따라 나아간다(시 84:7). 성도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롬 1:17). 그리하여 그분의 사랑은 더욱 풍성해진다(빌 1:9).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올바른 양상은 무엇인가?
1. 그것은 당사자 자신의 눈으로 보면 덜 자라가는 것이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시 22:6). 타락과 무지에 대한 시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보기에는 불만족 속에서 자라간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는 희미하다. 욥은 티끌 속에 있는 자신을 혐오하였다(욥 42:6). 자신의 자아에 대한 자만을 버리고 자라가는 것이 좋다.
2. 성장의 올바른 양상은 균형적으로 즉 이런 저런 은혜 속에서 골고루 자라가는 것이다(벧후 1:5). 온유, 형제 우애, 또는 선행에 있어서는 자라가지 않고 지식에 있어서만 자라가는 것은 올바른 성장이 아니다. 어떤 사물은 부풀려지기만 할 뿐 자라지 않는다. 인간은 지식으로 부풀려질 수 있지만, 영적 성장은 전혀 없을 수가 있다. 성장의 올바른 방법은 총체적으로 이 은혜만이 아니라 다른 은혜에 있어서도 자라가는 것이다. 육체미는 머리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팔과 가슴도 함께 자라는 신체들의 균형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적 성장도 균형과 조화가 있고, 모든 은혜와 함께 튼튼해질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3. 성장의 올바른 방법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다양한 사역과 직분에 적합한 은혜를 가지고 있을 때, 즉 타락이 심하지만 그가 그 타락을 제어할 수 있는 은혜를 소유하고 있을 때, 짐이 무겁지만 그가 그 짐을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인내를 소유하고 있을 때, 그리고 유혹이 격렬하지만 그가 그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을 때, 주어진다. 그때 그 은혜는 올바른 양상으로 자라간다.

참된 은혜가 자랄 수밖에 없는 것은 왜 그런가?
1. 은혜는 자라는 것이 적합한 일이다. 그것은 semen manens[불후의 씨] 곧 하나님의 씨이다(요일 3:9). 자라는 것이 씨의 본질이다. 은혜는 흙 속에 있는 돌처럼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흙 속에 있는 씨앗처럼 마음 속에 있는데, 그것은 솟아 올라 처음에는 잎사귀요, 다음에는 귀이며, 그 다음에는 귀 속에 꽉 들어찬 알곡이다.
2. 은혜는 그 신선함과 탁월성으로 말미암아 자랄 수밖에 없다. 은혜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것 때문에 싫증을 내지 않고, 그것을 더욱 소유할 것이다. 그가 그 안에 간직하고 있는 즐거움은 그것을 더욱 갈구하는 원인이 된다. 은혜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결코 하나님을 충분히 닮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은혜는 평강이 스며들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가 평강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은혜 안에서 자라가기 위해 노력한다.
3. 은혜는 신자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되기 때문에 자랄 수밖에 없다. 이 고상하고, 후한 그루터기에 접붙여져 있는 접순이 되는 사람은 자랄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접붙임을 받은 모든 사람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아주 충분한 수액을 보유하고 있고, 생명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호 14:8).

우리를 은혜 안에서 자라게 하는 동기 또는 유인은 무엇인가?
1. 성장이 규례들의 목적이다. 사람이 그것을 땅 위에 뿌리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지만, 그것을 자라게 하실 수 있는 분은 누구인가? 말씀의 순전한 젖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랄 수 있다(벧전 2:2). 주의 식탁은 우리의 영적 양육과 은혜의 증진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
2. 은혜의 성장은 그것에 관한 진리의 최고의 증거이다. 생명이 없는 사물은 자라지 못할 것이다. 그림은 자라지 못할 것이다. 울타리의 말뚝은 자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발육하는 생명을 소유한 식물은 자란다. 은혜 안에서 자라감은 영혼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3. 은혜의 성장은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이다. 어린아이는 자나갈수록 그 친절이 더욱 넘쳐나고 안색이 더욱 강건해지며, 더욱 불그스레해진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은혜 안에서 자라갈수록 그의 영적 안색이 더욱 성숙해지고, 더욱 순전해진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초기보다는 하나님 자신이 그것을 사랑으로 감싸고,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며 그에게 이 영예를 돌릴 정도로 아주 활력적이고, 탁월하게 성장했던 마지막 순간에 더 아름다웠다.
4. 우리가 은혜 안에서 자라갈수록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도 자라간다.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인간의 영혼의 구원보다 더 가치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의 면류관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것을 제외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더 영광스럽게 할 수 있겠는가?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요 15:8). 최소한의 은혜의 드라크마도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영광을 크게 이끌지는 못할 것이다.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 1:11). 그의 작물이 자라고, 무성할 때, 농부의 솜씨를 칭찬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은혜 안에서 무성할 때,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영예가 높아지는 법이다.
5. 우리가 은혜 안에서 자라갈수록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사랑하실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것 아닌가? 성장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그만큼 더 우리를 사랑하실 것이다. 농부는 자신의 무성한 작물을 사랑한다. 무성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헵시바(Hephzibah) 즉 최고의 기쁨이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가 무성하고, 석류나무가 봉오리를 맺는 것을 바라보시기를 즐겨하신다(아 6:11). 그분은 은혜의 진리를 수용하시지만, 은혜의 자라감을 칭찬하신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있는 사랑하는 제자와 같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가? 여러분은 그리스도로부터 임하는 사랑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가? 믿음이 선행으로 번창하도록 성장을 위해 크게 수고하라. 그리하면 사랑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6.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가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믿음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어떤 것이 여전히 존재한다(살전 3:10). 은혜는 그 유아기와 미성년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영적 성자의 규빗을 키워가야 한다. 사도들은 주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 17:5)라고 요청하였다. 은혜는 약해서는 안된다.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삼하 3:39). 따라서 우리는 은혜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아직 약하기 때문에 거룩의 수준을 높여갈 필요가 있다.
7. 은혜의 성장은 타락의 성장을 방해할 것이다. 건강이 자라가면 자라갈수록 몸의 질병은 감소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적이 면에서 겸손이 자라면 자라갈수록 교만이 그만큼 감소되며, 마음의 청결이 자라면 자랄수록 정욕의 화염도 그만큼 감소될 것이다. 정원에 있는 꽃들의 성장은 잡초들의 성장을 방해하지 못하지만, 은혜의 꽃의 성장은 타락의 싹이 트는 것을 방해한다. 어떤 식물들이 천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포도나무와 월계수가 그런 것처럼, 만일 그것들이 가까이서 자라면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은혜가 자라는 곳에서 죄는 그렇게 빠르게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8. 우리가 은혜 안에서 아무리 크게 자란다고 해도, 그것은 지나치게 자라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nimium 곧 지나침이란 없다. 몸은 수종증처럼 지나치게 크게 자랄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은 아무리 크게 자라도 지나치게 자랄 수 없다. "너희 믿음이 더욱(exceedingly) 자라고"(살후 1:3). 여기에 엄청난 자람은 있지만, 과도한 자람은 없다. 인간은 아무리 건강해도 지나치게 건강한 것이 아니다. 은혜도 마찬가지다. 은혜는 거룩의 미점이다(시 110:3). 우리는 아무리 많은 영적 미점을 갖고 있어도 너무 많이 갖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은혜 안에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것이 죽을 때 유일한 갈등이 될 것이다.
9. 은혜 안에서 자라지 못하는 사람들은 은혜를 부패시킨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진보하지 못하는 것은 퇴보하는 것이다]-성 버나드. 종교에 있어서 멈춤이란 없다. 우리는 전진하든지 아니면 후퇴하든지 한다. 만일 믿음이 자라지 못한다면, 불신앙이 자랄 것이다. 만일 천국을 향한 마음이 자라지 못한다면, 탐욕이 자랄 것이다. 자신의 저장고를 늘리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줄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은혜의 저장고를 늘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저장고는 줄어드는 것이다. 야곱의 사닥다리 위의 천사들은 올라가든지 아니면 내려가든지 했다. 만일 여러분이 종교에 있어서 올라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내려가는 것이다.
10. 은혜 안에서 자라갈수록 우리는 영광 속에서 번창할 것이다. 모든 은혜의 그릇이 가득 찬다고 할지라도, 어떤 그릇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있다. 그의 저장고에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은 열 고을을 차지할 것이다(눅 19:17). 크게 자라지 않는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자기들의 영광을 상실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줄이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희고, 더 큰 영광의 옷을 입음으로써, 어린 양을 따르려고 한다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은혜로 가장 빛을 내는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

적용: 성장이 없는 것을 슬퍼하라.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종교는 단지 형식과 신앙고백에 있어서만 자라고 있다. 이것은 열매가 아니라 잎사귀만 자라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튼튼하게 자라지 못하는 쇠약한 몽뚱아리와 같다. 그들은 자기들이 듣는 설교를 통해서 자라가지 못한다. 육체를 취한 천사들처럼, 그들은 먹기는 먹지만, 자라지 않는다. 성장이 없는 곳에는 생명의 원리도 없다고 생각된다. 어떤 사람들은 더 좋게 자라는 대신에 더 나쁘게 자란다. 그들은 더욱 세속적이고, 더욱 불경적이다(딤후 3:13). 악한 사람들은 점점 더 악화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하는 방향으로 자라간다 - 그들은 지난 수치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습 3:5). 그들은 더욱 썩어져가는 어떤 물먹은 쓰레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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