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동수1999-2002년 서울 방배동 기독신학교에서 M.Div.를 수학하고, 2002-2004년 미국 칼빈신학대학원에서 Th.M.으로 조직신학(칼빈연구)을 전공, 2004-2010년까지 미국 휘튼대학원 성경.신학부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할 때까지 개혁신학과 칼빈신학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시카고 지역에서 한인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와 담임목회 및 도시선교 등을 섬겨왔으며, 학교와 목회, 그리고 이민생활 현장에서 고민하며 묵상한 에세이와 아직 한국어로 번역이 되지 않은 의미있는 개혁파 신학/신앙 관련 서평 등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 - 동성애 담론에 대한 개혁파 신학자의 한 견해

신동수 | 2017.01.27 05:51

"이제 때가 되었다" (It Is Time):

LGBT -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 의 결혼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는 개혁신학적 담론

 

에이미 플란팅가 포 (Amy Plantinga Pauw - 루이빌 신학교 교의학 교수)

 

플린팅가 포 교수는 저명한 플란팅가 가문 (철학자 앨빈은 노틀댐 철학교수이고 신학자 코넬리우스는 칼빈신학대 총장이셨던 가문) 의 또 다른 교의신학자로서 미시간 칼빈신학교 출신이다. 나의 은사이신 류호준 교수님과 동문수학 하신 친구이시고, 나의 지도교수셨던 존 볼트 교수께서 늘 사랑스런 표정으로 언급하시던 후배요 동료이셨고, 나도 그녀의 에드워즈 분석서를 탐독해마지 않던 대단한 여류신학자요 개혁파 교의학자이시다. 이 글은 류호준 교수님의 소개로 그녀가 2년 전에 행한 강의를 들으며 요약한 것이며 그 원강은 링크를 걸어놓았다. 그녀의 주장과 결론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 특별히 그녀가 밝히는 창조질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성경과 칼빈에 대한 선별적 인용 때문에 -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와 포용을 신학적으로 풀어가는지 (theologizing) 이해하고 개혁신학의 경계를 확인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정리해 보았다.

 

1. 구약적 관점에서 결혼은 주로 자손생산 (생육증다) 가 주 목적이었다. 자손과 노동력은 이 땅에서 번성하는 삶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결혼의 윤리는 구약에서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 예를들어, 일부다처나, 축첩이나, 먼저 죽은 형의 과부를 취하여 대를 잇는 형사취수가 문제없이 용인된다.

 

2. 신약적 관점에서도 결혼은 목숨걸고 지켜야 할 것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신약에서 정말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모범적인 사례를 천거할 수 있는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의 처자를 미워해야 한다고 하셨고,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부활의 문제를 트집잡기 위해 일곱명의 형수를 아내로 둔 사람이 부활하여 누구를 아내로 삼아야 하느냐는 사두개인 질문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공박하시며 부활 때는 천사처럼 되어 결혼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 결혼은 가는 시대, , 옛 시대의 관계일 뿐 새 시대에서는 소용없다는 말씀이다. 결혼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영원한 짝이란 없는 것이다!).

 

3. 예수님 이후 교회시대에 들어와서도 기독교인들에게 결혼은 언제나 "옵션" 이었지 절대적인 의무가 아니었다. 바울은 이 마지막 때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결혼 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4. 물론, 성경적인 관점에서 결혼은 매우 의미있고 값진 제도이다. 혼자 사는 것보다 더 큰 보호와 연대와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가 되며, 율법에서 가르치는 이웃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첫 번째 자리가 되며, 무엇보다 결혼생활 안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양육과 훈련과 성숙이 이루어지는 자리이다.

 

5. 현대는 소위 이러한 성경적 결혼생활이 위기를 맞은 시대이다. 미국에서는 결혼한 남녀의 평균 50% 가 이혼을 한다. 현재 미국의 청소년 중 40%가 편모 혹은 편부 아래 자란다.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만난 가정의 불화와 해체는 과연 결혼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6. 이러한 상황에서도 교회는 늘 결혼의 이상을 과도하게 정하여 부담과 압력과 장벽으로 작용하게 해왔다. 어느 사이에 결혼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되었다 (왜냐하면 교회가 세워놓은 결혼의 이상이 이혼자들, 가정문제가 있는 자들, 그리고 LGBT를 배제하기 때문에). 과연 기독교회는 결혼을 배제의 도구로 사용해야 할 것인가? 개혁파 신학의 입장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7. 개혁파 신학에서 결혼은 "성례" (Sacrament) 로 인정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의 매개도 아니고 꼭 있어야 할 영적인 은혜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혁파 신학에서는 결혼을 "언약" (covenant) 관계로 설명한다. 개혁파에게 언약이란 모든 영역에 미친다. 하나님과의 언약, 정치적인 언약, 사회적인 언약, 그리고 남녀간의 언약 - 그것이 결혼이다.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하고 서로에게 신실한 사랑과 헌신을 맹세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결혼을 "지상의 삶을 유지하고 번성하기 위한 질서들 중 하나" 로 보았다. , 창조의 영역의 하나로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풍성함을 유지 발전시키는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어떤 영원의 의미나 구원론적 은혜의 함의가 있던 것이 아니었다.

 

8. 이러한 창조질서의 하나로서 "결혼" 은 오랫동안 성적인 불평등과 착취의 수단으로 남용되기도 했다. 여자를 남자에게 복종하는 열등한 존재로 자리매기고 억압과 폭력을 가하며 복종을 강요했다. 이러한 결혼의 질서는 아직까지 교회가 여성들에 대해, 소수자에 대해, LGBT 에 대해 가하는 배제와 파괴적인 압력으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교회는 과연 그러한 곳인가? 영원하지 않고 구원의 은혜와 상관없는 결혼제도를 가지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일한 인간들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제 아니라고 할 때가 되었다! IT IS TIME!!!)

 

9. 여전히 많은 개혁파 학자들이 두 가지 면에서 남녀간의 결혼만을 진정한 결혼으로 주장한다. 첫째는 상호보완 (Complementary) 의 관점에서, 둘째는 생명번식 (Fruitfulness) 관점에서다. 상호보완 관점의 문제는 꼭 남자와 여자가 둘이 한 몸이 되어야만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는 이론인데, 그럴듯 해보이지만, 그렇다면 예수님은 혼자 사셨는데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셨다는 말인가? 바울은 어떤가? 상호보완이란 명목하에 도리어 여성들 위에 군림하고 압제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왜 결혼은 항상 남녀간의 질서와 복종으로만 성립해야 하는가? 차라리 동성간의 결합이 진정한 인간평등을 구현하고 진정한 언약관계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결혼이 약속을 통한 평생의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 중심에 언약적 신실함과 책임감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다면 LGBT 가 배제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진정한 언약관계의 신실함을 고대할 수 있지 않은가?

 

10. 두 번째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남녀 관계여야만 진정한 결혼이라는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불임가정의 경우에는 참 결혼이 아닌가? 꼭 아이가 있어야만 참 결혼이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너무나 편협하고 억압적인 개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LGBT 의 결혼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님 앞에 언약을 맺고 평생 신실하게 책임감있게 서로를 사랑하며 돌보며 함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왜 베제되어야 하는가? 물론, 아담과 하와 이래로 남녀간의 결혼이 인간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Foundational) 중심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나라에 그 어떤 사람도 배제되지 않는다면, 왜 이 땅에서의 행복과 번영을 위한 결혼에 LGBT 가 배제되어야 하는가? 아무리 이 소수자들의 결혼을 인정한다해도 대다수는 남녀간의 가정들이 될 것이고, 그들에게서 자녀들이 나올 것이고, 그리고 그들에게서 버려지고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 소수자의 가정들에서 혹 돌봄을 받으며 자라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상호보완과 창조세계의 번성이 아니겠는가?

 

11. 단지 소수인 LGBT 사람들이 사람답게, 하나님 안에서, 그 창조의 축복을 함께 누리며 살겠다고 하는데 - 언약이 요구하는 모든 요구대로 책임감있게, 헌신하며, 사랑하며 살 것인데 - 우리는 왜 그들의 결혼을 막아야 하는가?

 

12. 이제 때가 되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기쁨의 자리에 누구라도 초대하여 하나님이 주신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기쁨으로 누리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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