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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강도헌장로교 합동측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 합동측 목사가 되었다. 목회자가 되기까지 약간의 방황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기도로 목회자가 되었다. 중형교회와 대형교회의 부교역자 사역을 해 오던 중에 성령의 강권적인 끌림에 제자삼는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성(신학)과 체험의 전인적 영성에 관심을 두고 영성과 치유, 성장에 관해 연구 중이다. 저서로는 ‘성도들이 알아야 할 영전전투’ 1권, 2권이 있고, 현재 제자삼는교회 담임,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휴일을 넘어 기쁨의 안식으로

강도헌 | 2017.06.04 10:41

휴일을 넘어 기쁨의 안식으로

출20:8-11, 롬14:5,6


안식일에 대한 초대교부들의 입장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주일 성수는 2세부터 4세기까지 과도기의 기간을 거치면서 정착되었습니다. 당시 고대 그리스도교의 교회 안에서는 율법준수가 구원의 문제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율법주의적 유대 기독교인도 있었으며, 안식일을 민족적 행동준칙으로 행하면서 이방인에게는 그러한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초기 유대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주일과 안식일을 함께 지킨 흔적과 할례도 지속한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초대 교회는 안식일 계명이 크리스천에게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단일한 대답을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속사도 문서 중 하나인, 디다케(약 90-110년)는 유대인의 금식일과 의도적인 구분을 위해 그리스도인은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의 금식일을 지킨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반면, 2세기 이방인(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 준수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거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방인(비 유대인) 교부 이그나티우스는 유대교적 안식일 준수를 강하게 거부한 대표적 교부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그의 대적이 유대주의자들과 가현설적 영지주의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속사도 문서 중의 하나인 바나바서(70-100년경)의 저자는 ‘우리는 현재의 안식일을 용납할 수 없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토요일 안식일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2세기까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고대 교회에서 일치되지 않은 모습들이 일정기간 동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바울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주의자들을 거부한다고 하여 말시온처럼 구약에 대한 전면적인 폐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스티누스는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에서 만약 유대인인 그가 개종하고도 안식일을 준수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한 후, 만약 양심에 꺼림이 된다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면서 매우 유연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바울이 ‘절기’를 지키는 사람을 관용하라고 한 로마서 14장의 기록과 일맥상통 되는 부분으로서 유대인들의 개종에 대하여 수용적 태도와 함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과도기적 상황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오늘날 배타성이 강한 한국교회가 심사숙고해 보아야 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즉, 인격적 방법으로 전도와 개종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63년 라오디게아 회의는 토요일에 일하지 않는 관례를 정죄하였습니다. 설령 토요일과 일요일 두 날 모두 예배를 드리더라도, 토요일에 일하지 않는 관례는 유대교의 안식일 준수로 보았고, 로마나 알렉산드리아, 북아프리카 그리스도인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공식종교가 된 후 안식일 준수의 무노동에 대한 태도와 행위가 그리스도교 안에서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 입니다. 그것인 이미 300여년의 기간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도교의 주일성수가 자연스럽게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오늘날 한국의 비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한다면, 당연히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교 안에서 안식일 준수의 영향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라오디게아 회의는 유대인 개종자들이 안식일을 잘못 사용하는 일에 대한 것으로서 당시 그리스도교 저자들에게는 유대교적 안식일 준수가 끊임없는 관심 주제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더 나아가 오리겐은 안식일 규례를 문자 그대로 지키기는 불가능하며, 그러려면 하루 종일 꼼짝 없이 한 자리에만 머물러야 하므로 안식일과 안식일 규례는 지켜질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한성진, “주일성수에 대한 역사신학적 접근”, 신학정론 제29권2호, 2011)


초대교회의 안식일에 대한 인식에 대해 존 스토트는 그의 《The Christian Sunday: A Biblical and Historical Study》책에서, 교부들은 안식일을 하나의 상징으로 보았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성전, 제사, 할례, 정결법과 같이 안식일 규례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부활로 인해 지나가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스토트는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가 안식일을 육체적 유익을 위한 날로 보았던 것에서, 이 안식은 오직 노동하는 인간의 유익을 위한 내용으로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식일은 육체의 유익만이 아니라, 영적인 유익을 위한 날로서, 터툴리안이 유대인에 대항하는 글에서, ‘안식일은 일시적이며,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고 주장한 부분을 인용하며 안식일 준수는 이제 주일 준수로서 영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약적 안식일 규례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종결되었음에도 안식일의 정신은 그대로 계승되어야 합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새로운 안식의 제도를 세우셨으며(복음서에 나타나는 수많은 안식일 논쟁), 안식의 목적과 의미까지 파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말시온과 같은 구약 폐기론자들이 안식의 정신까지 폐기하는 주장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일곱째 날의 의미가 여덟째 날의 완전한 안식으로 통합되었다는 주장에도 반(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대한 초대교부들의 입장

초대교회 교부들은 모든 날이 하나님의 날이라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중 어느 하루가 하나님의 날이라던가, 그 날이 거룩한 날이라는 날(요일) 중심의 개념을 거부하였습니다. 2세기 문헌들에는 예배의 날로서 주일 준수의 표현으로 ‘주의 날’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스토트의 글(위의 책)에 의하면, 주일에 대한 교부들의 이해는 크게 세 가지 흐름이 있었습니다. 첫째, 주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하나님(야훼)께 지정하였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그리스도께 지정하며, 주일은 무엇보다도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주일은 축제의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절기에 모든 노동을 금지하고, 하루를 경건하게 보내기보다는 잔치로 지내왔습니다. 물론 유대인의 축제는 하나님께 경배를 위해 모든 민족이 함께 모여 그 절기에 주어진 역사적 구원사건이나 연례 추수 같은 특별한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이었지만, 여러 고대 그리스도교 문헌에서는 유대인들이 축제와 연희로 일관하는 모습들에 관해 부정적 묘사가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영적 해방을 기념하는 시간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축제가 이방인들처럼 무조건 마시고 떠들며 쾌락에 들뜨는 축제는 아니었습니다. 셋째, 주일은 휴식을 위한 날이었습니다. 2세기가지의 기록에는 주일을 휴식의 날로 간주한 어떤 기록도 없습니다. 321년 콘스탄틴 황제가 일요일에는 농사를 제외한 모든 일을 하지 말라고 처음으로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이 포고령 이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을 하지 않았다는 명시적 기록은 찾기 어렵습니다. 콘스탄틴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은 박해 가운데 있었으며, 상당수는 노예들이었기 때문에 일요일이라고 하여도 노동을 면제 받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요일에 노동을 멈추었던 것은 콘스탄틴 이후이며, 로마의 국교를 그리스도교로 정한 테오도시우스 황제 이후로 일요일은 완전한 노동의 휴일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주일

초창기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모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점차 박해나 여러 가지 실질적인 이유들로 인해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주일날 정기적으로 모인 것으로 여겨집니다(물론 세례문답을 위해 훈련 중인 새신자들은 매일 자신들의 멘토와 만나 성경과 교리훈련을 3년 동안 받았다는 기록들도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주일은 예배와 교제와 이웃돕기가 가장 중요하였습니다. 그들의 주일성수는 성만찬과 예배 그리고 이웃 구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초창기에 모였던 시간은 대부분 저녁에 모였습니다(행20:7절 참조). 그러나 2세기 무렵의 플리니의 기록에는 해뜨기 전 한 번, 그리고 식사를 하기 위해 한 번 모였으며, 플리니는 저녁모임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들은 주로 물이 있는 곳에서 모였는데, 세례식을 행하기 위해서였으며, 그 장소에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선지자들의 글을 읽었고 지도자는 그들을 교훈하고 권면하였다고 증언 합니다.(벡퀴드, 스토트 공저, 기독교인과 주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숭문출판사, 1985)


그러나 콘스탄틴과 테오토시우스를 거치면서 주일은 공휴일로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주일이 공휴일이 된 것은 그리스도교회에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동시에 양산하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의 글에 이러한 내용이 언급되었는데,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남녀가 정장을 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와 기도를 드리러 교회에 들어가지만, 그들이 교회를 떠날 때 그들은 다시 일반인들처럼 되어 버린다는 한탄이 실려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한탄은 크리스소톰의 글에서도 나타납니다. 313년의 밀라노 칙령부터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한 381년 사이 그리스도인은 로마국민의 13%에서 80%이상까지 외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의 순전한 기쁨과 참된 성도의 공동체와 교제는 점차 상실되고 형식화 되어 갔던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완성자인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주일성수에 대하여 안식일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은 신체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으나, 그리스도인의 안식은 영적인 안식이며, 온전한 양심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은 유대인들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활동성’의 안식이 아니라 자신들보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고아와 과부와 같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을 돌보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활동하는 안식’으로 주일성수를 강조하였습니다.


루터와 칼빈

아우구스티누스는 주일성수를 안식일 계명에 기반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의 날과 안식을 함께 종말론적 맥락에서 다루었습니다. 안식일에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것은 ‘죄에 빠진 우리 영혼이 다시 타락 이전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제8일의 영원한 부활의 은혜를 예표 하는 것으로서 마지막 날인 제8일이 영원한 주의 날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럽이 로마인의 시대에서 프랑크인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적 안식일주의를 이탈한 안식일 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라바누스 마우루스는, 유대인의 안식 준수가 지닌 영광이 주일로 이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12세기의 피터 코미스토는 그리스도교의 첫 날 준수에 안식일 계명이 문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안식일 규범 준수적 주일 사상이 다시 확립된 것은 스콜라 철학자들을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예수님이 안식일에서 폐지하신 것은 안식일에는 선한 일 조차도 금지한 바리새인들의 미신적 의미를 폐지하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주일에 선한 일을 할 수 있으나 유대인들의 안식일 개념과 안식법 도입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므로 교회에 유대적 안식일 규범 준수(행위 구원)의 문을 열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 안식일의 부활 개념에 대해 루터는 아퀴나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십계명 안에 ‘예식법’을 제거하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예식법의 범위를 넘어선 ‘자연법’에 대해서 긍정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주일 예배와 안식일 명령을 전적으로 분리시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루터는 안식일 계명 중에서 모세의 예식법적 요소는 제거 되었지만, 자연법으로서 ‘쉼’, ‘몸의 휴식’의 필요성은 남겨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쉼은 특정한 날 하루를 지정하여 쉬는 것이 아니라 7일 중 자유롭게 어느 하루를 선택하여 쉴 수 있다고 말하면서, 유대교처럼 특정한 시간을 반드시 쉬어야 한다거나, 쉬는 시간의 양을 처방하지는 않았습니다.


루터는 정기적으로 주일 날 쉬라는 요구사항은 신적 권위가 아니라 인간적 귄위(콘스탄틴과 테오도시우스)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쉼은 인간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필요성이기 때문에 인간적 권위의 행사는 합법적이며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루터는 시민적 제도 또는 교회적 제도로서 노동계급을 위한 그리스도교 주일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주일이 없다면, 이들은 쉴 기회도 없을뿐더러, 공동 예배를 드릴 기회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루터의 입장은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서(1530년)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주일 준수가 안식일을 대체하여 교회의 권위에 의해 필요에 따라 지정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크게 기만당한 것이다. 복음이 드러난 후 모세의 예식들이 생략되었다고 가르치는 성경은 안식일을 폐지한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날을 지정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함께 모여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그런 목적으로 주일을 지정한 이유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모범을 즐길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안식일이나 도 다른 날이 아닌 (주일) 준수가 필요한 것이다.”(아우스부르크 신앙고백서 중)


칼뱅 또한 율법의 관점에서 주일성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칼뱅은 율법에는 분명히 폐지된 부분과 유효한 부분이 함께 있으며, 이런 측면이 그리스도의 율법 완성과 그림자로서의 율법이 초등교사로서 역할을 다한다고 보았습니다. 칼뱅은 율법의 예식법적 규례는 분명히 폐지되었지만, 그러나 율법의 정신과 도덕법은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율법의 순종은 예식의 순종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에 대한 복종입니다. 칼뱅은 이 정신이 산상 수훈의 정신이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칼뱅의 안식일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예식적 규례 준수의 여부보다 그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칼뱅은 안식일에 대한 해석이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날짜를 지키는 미신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루터와 같이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칼뱅은 안식일 계명에서 매 시대마다 똑같이 적용되어져야 할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정해진 날마다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신비한 떡을 떼며, 공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참조 행2:42). 둘째는 종들과 일꾼들을 노동에서 쉬게 해 주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칼뱅 또한 고대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입장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휴일을 넘어 기쁨의 날로

의무라는 것은 인간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의무라는 것은 강제성을 띄는 것으로서, 인간은 의무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인간의 죄성과 충동을 공동체와 조직적으로 막고 절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의 주일성수에는 의무적 개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주일 성수는 자신들만이 누릴 수 있는 목숨보다 소중한 기쁨과 감사의 특권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구원과 은혜를 받은 특권을 누리는 존재들로서 예배의 감격과 교제의 소중함과 이웃 섬김의 복됨을 실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며, 박해 중에도 감격과 기쁨의 예배를 드렸으며, 말씀을 가까이 하고, 함께 하기 위해 예배의 자리에 모였습니다.

분명 그리스도교 역사적으로 볼 때 주일은 ‘휴일’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휴일’이 주일의 중심개념은 아니었습니다. 성경과 교회사적으로 볼 때 우리가 주일을 지켜야 하는 참된 이유는 ‘나를 위하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을 위하여’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휴일’이 주일의 중심 개념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4세기의 교부들이 강조하였던 것처럼, 주일을 지킴은 ‘예배’를 드리고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린 후 말씀의 실천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세상(이웃)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일을 ‘휴일’이 아니라 ‘부활’의 기쁨을 ‘우리 모두의 안식’의 날로 지켜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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