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강도헌장로교 합동측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 합동측 목사가 되었다. 목회자가 되기까지 약간의 방황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기도로 목회자가 되었다. 중형교회와 대형교회의 부교역자 사역을 해 오던 중에 성령의 강권적인 끌림에 제자삼는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성(신학)과 체험의 전인적 영성에 관심을 두고 영성과 치유, 성장에 관해 연구 중이다. 저서로는 ‘성도들이 알아야 할 영전전투’ 1권, 2권이 있고, 현재 제자삼는교회 담임,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칼빈의 교회와 국가 관계의 사상적 배경

강도헌 | 2017.03.15 16:40

칼뱅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 사상적 배경

 

칼뱅은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와 급진적종교개혁가들의 교회와 국가관, 그리고 종교개혁 1세대인 루터의 두 왕국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에 이미 로마가톨릭의 대표적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모순과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조화와 예속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아퀴나스는 세상국가는 교회의 시녀로, 교회는 사회의 이상형으로 보아 중세교황절대주의 혹은 교회절대주의 시대를 열어 중세 황금기(코뮤니타스)의 상징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교회절대주의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문화의 ‘세속적’가치에 대하여 독립적인 위치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속적 가치의 세계가 성례전을 중심으로 하는 계층 질서적 교회주의에 예속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시화 운동’을 외치는 일부 부류들도 교회절대주의 사상의 잔재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급진적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는 국가와 사회, 문화와 역사, 그리고 기성교회들인 로마가톨릭교회, 루터교회 및 칼뱅 등의 개혁교회들로부터 완전히 분리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은 콘스탄틴 대제 이전의 교회로 복귀를 내세우며, 신약성경의 상상수훈 등에 나타난 제자직과 예수님의 명령들의 실천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토마스 뭔쩌와 멜키오르 호프만은 종말론적 천국을 지상에서 실현하기 위해 폭력까지 써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은 성령을 강조하여 주관적인 경험의 소유자라야 선민이고, 이 선민들은 지상천국을 도래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와 급진적 종교 개혁가들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칼뱅에게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회가 국가의 우위에 있는 일원론적 계층질서를 주장하였고, 급진적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와 국가의 극단적 분리주의를 지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뱅은 양 극단에 반대하여 그의 신학적 방법론인 중도의 길을 통하여 《기독교 강요》와 기타 저술들에서 종교개혁적인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펼치게 됩니다.

 

사실 칼뱅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종교개혁가는 루터였습니다. 루터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있어서 이중적 두 왕국론을 주장하였습니다. 루터는 그의 저작에서 세상 나라 혹은 불신자의 나라를 ‘세상적 통치자’라고 부르고, 하나님의 나라 혹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영적인 통치자’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영적인 통치’와 ‘세상적 통치’는 예루살렘과 바벨론, 아벨과 가인, 선과 악, 하나님과 사탄간의 긴장과 갈등 혹은 투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루터가 묵시문학적 종말론에 기초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왕국론을 그의 저작 전반에 걸쳐 그대로 전승한 것입니다.

 

그러나 1523년 루터는 《세속정부에 관하여》라는 저작에서 교회와 국가를 ‘두 정부’라는 하나님의 이중적 통치방식으로 말합니다. 즉, 하나님은 한편으론 영적정부인 교회의 말씀을 통하여 다스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속정부의 검을 통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 루터의 두 왕국론은 중세의 성,속을 구분하는 계층적 질서의 성직체계를 부수었고, 국가의 독립과 극단적 세속화로 나아가는 것에 반대하여 세속사회도 하나님의 창조세계임을 주장한 것입니다. 루터의 이러한 사상은 종교개혁적 세속화의 모델을 제시하였고, 칼뱅과 그 이후의 개혁자들에게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있어서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칼뱅은 루터의 이러한 견해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헤르만 바우케는 칼뱅의 세 가지 신학적 형식을 소개하면서 칼뱅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도 이러한 신학적 구조 가운데 설명이 되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바우케가 말하는 칼뱅의 세가지 신학적 구조는 첫째, 하나의 형식적이고 변증적인 합리주의입니다. 둘째, 상반되는 것들의 결합을 추구하는 방식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성경주의입니다. 바우케는 칼뱅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서 특히 성경주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루이스 배틀즈는 칼뱅신학을 요약할 수 있는 하나의 원리로 ‘대칭적인 구조’를 말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극단사이의 바른 중간 길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독교 강요》전체에서 로마가톨릭과 좌경화된 종교개혁자들의 양극단적 잘못된 신앙과 그 한계를 보여주면서 진리의 중도를 걸어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헬름 니젤에 의하면, 칼뱅의 신학적 중심 구조는 ‘그리스도 중심주의’라고 말합니다. 니젤은 칼뱅의 궁극적 목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뱅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의 신학의 중심을 형성하는 ‘성경 중심주의’, ‘대칭적인 구조(중도)’, ‘그리스도 중심주의’의 관점들을 이해하고, 견지하면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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