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성욱계명대 영문학, 총신신대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구약 Th.M 수학), Calvin Theological Seminary(신약 Th.M), University of Pretoria(설교학 Ph.D),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두란노, 2014), 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뇌가 힘들 땐 어떻게 해야 하나?
[1] 견딜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요즘, 그 여파로 인해 살고 싶은 욕망조차 없이 무기력하게 사는 이들이 주변에 참 많다. 목사와 신학교 교수인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적지 않음을 몸소 경험하고 산다. 이처럼 낙심과 절망으로 인해 힘겨운 이들에게 다소간의 힘이 될 문장이 하나 있어서 소개해본다.
“견딜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그래도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은 ‘예술’뿐이다.”
[2]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다. 누가 한 말일까? 독일의 실존철학자 니체(Nietzsche)가 한 말이다. 이상한 것은 정치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쉬 받아들이기 힘든 사고를 가진 이들이 글 하나는 참 잘 쓰는 것 같다. 니체는 삶이 버거워 생의 의지조차 상실한 이들에게 보약이 될 만한 것이 ‘예술’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글을 곱씹고 있을 때 한 권의 책이 눈에 띄었다.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란 책이다.
[3] 수전 매그새먼(Susan Magsamen)과 아이비 로스(Ivy Ross)가 저자이다.
이 책은 번잡하고 상처받은 마음에 미술관만큼 평온과 위로를 건네는 공간이 없다고 말한다. 나 역시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위대한 작품들 관람하기를 좋아한다.
시카고 미술관과 LA 미술관에서 그 유명하고 값비싼 고흐, 고갱, 피카소, 르느와르 등의 작품들을 대면했을 때 느끼는 감정과 차분함은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4] 예술은 그처럼 더없이 성찰적이고 한없이 치유적인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공감으로 인해 니체의 명문장이 내 마음에 꽂힌 것이다.
예술의 힘이 그처럼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예술뿐 아니라 스포츠도 사람들의 외로움이나 고난을 달래주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이든 스포츠든 다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5] 살다 보면 예술이나 스포츠의 힘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경험하는 경우가 적어도 한두 번은 생긴다. 이럴 때 유일한 해결책이 있다면 그것은 ‘신앙’이다. 신앙의 힘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능력이 있다. 물론 헛된 신을 섬기는 신앙으로는 불가하다. 기독교와 같은 참 신앙이라면 그 어떤 인간의 난제나 난국도 능히 해결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주가 되시므로 불가능하신 게 없기 때문이다.
[6] 국가의 일로 인해 사업으로 인해 학업으로 인해 목회로 인해, 아니면 개인의 문제로 인해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아픔 속에 힘겨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 작품들을 둘러보거나 좋아하는 스포츠를 관람하는 것이 적잖은 위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상처와 아픔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세상 그 무엇으로도 위안이 되거나 치유 될 수 없다. 그렇다.
[7] 인간의 한계는 인간 세계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불가능하다. 인간 세계를 초월하는 신적인 차원에서만 가능하단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언제나 하나님께 항복하고 엎드리기를 즐겨한다. 그 방법 외에는 나의 한계와 나의 난제와 나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 121:1-2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8] 산을 향하여 눈을 드는 이유는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도 장애물과 한계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을 쳐다보셨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실 때나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실 때나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 공통적으로 취하신 행동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늘을 우러러”였다. 하나님을 쳐다보면서 도움을 요청하셨다는 말이다.
사람은 문제나 장애물을 만나면 그 자체에 눈길이 머물러 버리는 경우가 많다.
[9] 그 한계 자체에 필이 꽂혀 있어선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땐 예수님처럼 하늘을 우러러 우리의 영원한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것이 문제해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는 일로 인해 힘들어 할 때나 뇌가 힘들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니체와 수전 매그새먼과 아이비 로스의 말대로 예술 작품이 진열된 미술관을 찾아야 할까? 약간의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삼위 하나님을 찾아서 살려달라고 엎드리는 것임을 반드시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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