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성욱계명대 영문학, 총신신대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구약 Th.M 수학), Calvin Theological Seminary(신약 Th.M), University of Pretoria(설교학 Ph.D),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두란노, 2014), 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뮤지컬 버스 이야기

신성욱 | 2021.02.14 19:05

 ‘뮤지컬 버스’란 연극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끄러운 시골 동네 사람들을 싣고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던 길에서 갑자기 버스가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킵니다. 한쪽은 절벽, 한쪽은 낭떠러지인 내리막길을 요리조리 간신히 잘 피해 내려왔다. 하지만 계속 가다가는 틀림없이 한쪽으로 치우쳐 차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이다. 아찔한 순간 다행스럽게도 충돌 완충을 위한 건초더미가 하나 보였다.


‘살길은 바로 저기다!’ 하면서 그곳을 향해 돌진하던 중 버스 기사는 건초더미 앞에 선 한 물체를 발견한다. 가만히 보니 아이 하나가 자기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버스가 아이를 친다면 그는 틀림없이 죽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그 아이를 피해가려면 버스 안에 있는 7명 승객들의 목숨을 희생시켜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직면한다. 이것을 가리켜 ‘딜레마’ 또는 ‘진퇴양난’이라 한다. 이럴 때 우리가 운전사라면 어떻게 결단할 거 같은가?
 
‘뮤지컬 버스’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버스를 이끌고 내리막길을 운전하던 기사는 마침내 승객 7명을 살리기로 작정한다. 그래서 건초더미 앞에 서서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던 한 아이를 희생시키기로 하고 아이를 치고 넘어가 건초더미 속에 버스를 세우게 된다. 7명의 승객들은 안전하게 생명을 건졌다. 하지만 그들의 생명을 위해 차에 치인 아이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생명이 끊어져 버렸다. 한 아이의 희생 때문에 기사를 포함한 8명이 구원받았다.
 
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죽은 아이 곁으로 가 미안한 맘을 억제하지 못한다.
아이의 생명이냐, 기사 자신을 포함한 여덟 명의 생명이냐,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우리는 어느 쪽을 택할 것 같은가? 물론 다른 7명의 생명도 귀하지만 자신의 생명이 포함된 선택이라면 당연히 아이를 희생시키는 쪽을 택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아이가 다름 아닌 자신의 아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냐는 말이다. 
승객들은 버스에서 살아 나온 후 비로소 뜻밖에도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발견한다. 자기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기사가 희생시킨 아이가 다름 아닌 그 기사의 친아들임을 알게 된다. 기사는 7명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사랑하는 자식을 희생하기로 한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자기 손으로 치어 죽일 때 그 기사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는가? 그게 바로 독생자 우리 위해 희생시켜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이 더 있다. 이 감동적인 연극 ‘뮤지컬 버스’는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실화란 사실이다. 그저 감동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스위스에서 일어난 실화란 말이다.


사실은 이랬다. 버스를 운전하던 기사는 매일 정해진 코스로 승객들을 실어다주는 일을 했는데, 문제의 바로 그 장소 근처에 자기가 사는 집이 있었고, 매일 그 시각이 되면 사랑하는 아들이 아빠를 마중하기 위해 밖에 나와서 미소로 손짓하며 인사를 하곤 했다.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지만 승객들의 생명을 위해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그 기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이게 바로 독생자 우리 위해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임을 아는가?


‘뮤지컬 버스’의 포스터가 있다. 거기 보면 우측 상단에 이런 글씨가 적혀 있다. “My life is the death of Someone.” “나의 생명은 다른 이의 죽음 때문이다” 이런 뜻이다. 의외의 구원을 경험한 일곱 명의 승객 모두는 충격 속에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아 버스를 떠나게 된다. 이 뮤지컬의 엔딩은 이런 노래로 감동적인 막을 내리고 있다.
“누군가가 사랑했기에, 누군가가 희생했기에, 이제 우린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요!”


여기서 ‘누군가’(Someone)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시다. 주님 예수께서 날 위해 희생되셨기에 오늘 우리 역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분명히 믿는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 지금 ‘새로운 삶’을 잘 살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가 희생되신 의미를 제대로 알고 맛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로마서 5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처럼 말로만의 사랑이 아니라 실제로 그 사랑이 어떠함을 십자가를 지심으로 몸소 보여주신 주님처럼, 남은 생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변화된 새로운 삶’(New life)으로 알차게 열매 맺는 우리 모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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