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성욱계명대 영문학, 총신신대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구약 Th.M 수학), Calvin Theological Seminary(신약 Th.M), University of Pretoria(설교학 Ph.D),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두란노, 2014), 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성경 읽고 나니 소송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신성욱 | 2020.12.04 08:52

최근 우리는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의 직무 배제와 징계를 청구하는가 하면, 그에 맞선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는 등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두 사람의 첨예한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피로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가릴 것 없이 고소와 고발들이 난무하고 있는 모습에 우리는 너무도 질려 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소송들이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루었다는 찬송은 잘도 부르면서, 걸핏하면 서로 다투고 분쟁하고 법정에 고발하는 모습을 너무도 자주 본다. 오죽하면 길거리에서 싸우는 두 사람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싸우려면 교회 가서 싸우지 왜 여기서 시끄럽게 싸우느냐?”라고 했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인 2008년 4월 24일, 울산지법에서 일어난 감동적인 사건을 하나 소개한다.


울산 모 교회 소속 교인들이 교회의 일로 다투다 서로 폭행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 일로 쌍방이 치료비 청구를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같은 날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함께 출두했다. 이때 울산지법의 한 판사가 폭력사건으로 치료비 소송이 붙은 기독교인들에게 성경 구절을 읽도록 한 뒤 스스로 소를 취하하고 화해하는 기회를 줘 큰 화제가 됐다. 그 주인공은 울산지법의 김은구 판사이다.


울산지법에 따르면 민사11단독 김은구 판사는 지난 22일 한 손에는 재판기록을, 다른 한 손에는 한 권의 성경책을 들고 법정에 들어섰다.독실한 기독교인인 김 판사는 법정 재판장석에 앉은 뒤 원고 A씨에게 신약성경의 고린도전서 6장 5-6절의 내용을 소리 내어 읽도록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이것은 바울이 교인끼리 송사를 일삼는 고린도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로, 서로 형제라 부르는 교인들끼리 송사하는 것은 이미 허물이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내용이다.


김 판사는 관련 재판기록을 검토하면서 원, 피고들의 교회가 교인들 간의 분쟁으로 분열될 상황에 처해 있고, 이 사건도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김 판사는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당사자들끼리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평소 자주 읽던 성경구절을 읽어주리라 생각하고 이날 법정에 성경을 들고 나온 것이다.


결국 원고와 피고, 법정을 가득 메웠던 양측 교인들은 김 판사가 읽도록 한 성경구절을 들으며 법정에서 다투는 것이 교인의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게 됐고 곧바로 법정에서 쌍방이 제기했던 모든 소를 취하했다.
더 이상 이 일로 법정에서 서지 않기로 한 것은 물론이다. 김 판사는 ‘성경을 통한 해결책’을 낸데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쌍방 폭행으로 인해 서로 감정이 상해있는데 일반사건을 처리하듯 하면 재판이 장기화될 것 같고, 판결이 나더라도 상한 감정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지법 손동환 공보판사는 다음과 같이 소회를 말했다.
“재판을 지켜본 방청객들이나 당사자들 모두 법리적 판단에 그치지 않고 양심에 호소하는 김 판사의 해결방안에 모두 공감했다.”


교회나 노회나 총회 안에 고소고발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현 시점에서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신선하고도 충격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원수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도끼리 싸우고 고소하는 행위는 거부해야 한다.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대한다면 고소할 일이 어찌 생기겠는가?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은 모두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물보다 부패한 게 우리 인간이거늘, 죄 된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서로 잘났다고 하는 자존심 때문에 양보하지 못하고 품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짓이 난무하고 권모술수와 내로남불과 뻔뻔스러움의 극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현 정치권 인사들의 추한 모습은 분노를 넘어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시가 오늘 따라 나를 무척 괴롭게 한다.
“삭개오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의로운 사람이었느냐?”
나부터 의롭게 살면서 다른 이들의 허물과 실수는 이해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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