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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이성호함경도 실향민의 아들로 서울의 유력한 산동네 돈암동 출생. 북악산과 삼각산을 닮은 작은 교회와 소박한 사람들을 가슴에 훈장처럼 여기는 포항의 작고 불편한 교회의 책임사역자. 한신대 신학대학원. 한신대 대학원 교회사 박사과정(Ph.D.Cand.)수료. 연규홍 교수와 「에큐메니칼 신학의 역사」(Vital Ecumenical Concerns) 번역,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 집필. 포항CBS라디오 5분 메시지, 포항극동방송 ‘소망의 기도’ 진행자. 책에 한(恨)이 맺혀 ‘Book Party’할 수 있는 도서관 교회를 꿈꾸다.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이성호 | 2016.12.31 14:23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1. 몇 해 전에, 이곳 한동대를 다녀가셨던 기독교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는 <삼국사기>에는 그냥 넘겨서는 안 될 기사가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백제 의자왕 16년(656)에 발생한 사건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의자왕이 궁인과 더불어 황음, 탐락, 음주를 그치지 않자 좌평 성충이란 신하가 왕에게 충언의 말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의자왕은 크게 노하여 충신 성충을 옥에 집어넣으니 ‘이로 말미암아 감히 말하는 자가 없어졌다’는 대목입니다... ‘이 기록을 남겨 후세에 당부하고자 하는 교훈은 무엇이었을까요? <감히 말하는 자가 없어졌다> 이 한마디가 천오백년 이상의 큰 울림으로 남습니다.

실제 660년에 무너진 백제는 이 말의 동선을 따라 쇠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왕의 실정을 충간한 대신을 투옥했을 정도라면 그 후 군신 간의 언로소통 또한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초기에는 성군이었던 의자왕은 점차로 바른 소리를 멀리하고 소통을 폐쇄하면서 그 뒤 판단력마저 흐려집니다. 의자왕은 결국 입막음, 독단의 정책으로 자기 무덤을 팠고 나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이 된 것입니다. 

루터는 구석진 도시의 이름 없는 수사였습니다. 그런 그가 감히 세계 종교이자 통치 권력의 근간이며, 우주의 원리라는 가톨릭과 교황에 반대하는 자기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는 철회를 요구하는 교황청의 위협에 대해 자신은 바른 주장을 펼치는 것이라며 한 치의 물러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였습니다. 루터의 전 인생과 목숨도 걸어야 하는 저항이었지만 그로 인해 세상이 바뀌고, 개혁교회라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 저항자라는 별칭이 우리를 대신하는 명칭이 되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2. 성경은 죽어서 들어가는 저 세상, 예컨대 천국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지금 여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더 많은 양을 할애합니다. 구약은 전체가 오늘의 삶에 대한 이해와 ‘복있는 인생’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로서의 생활을 주목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문도 동일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사야의 표현대로 ‘그루터기’와 같은 ‘남겨진 자’란 어떤 존재일까요? 탄핵 정국을 맞아 나라가 시끄럽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소통보다는 대체로 지침대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해 보입니다. ‘말 많은 놈치고 제대로 일하는 놈 못 봤다’는 식의 과거 농경사회의 농부를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분업화된 현대사회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3. 만약, 대통령 주변의 그 많던 사람들 중에 ‘좌평 성충’ 같은 이가 한분이라도 있었다면, 이 정부가 그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겁니다. 지금까지도 누구하나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는 그 한 명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비단 정치권력에만 국한 된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위험합니다. 기업체, 교육기관은 물론이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 하나 ‘감히 말하는 자가 없는’ 사회는 병든 사회요, 죽은 사회입니다.  

신앙은 현실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진통제가 아닙니다. 이 현실 가운데 “의에 싸움”을 싸우는 존재입니다. 이 현실이 아프니 이 현실에서 고개 돌리고, 초월적 하나님만을 관상하며 돌아앉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날 똑똑한 목회자는 많은데 신뢰할 목회자는 적은 시대라 부릅니다. 왜 그럴까요? 공부하는 목적이 틀려먹었고 목회의 목적이 자기 성공과 출세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종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루터기'요, '남겨진 사람'이요, '생명의 씨앗'인 우리는 주어진 삶을 마주하며 현실 속 아픈 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4. 우리가 하나님께 뜨거운 기도를 드리며 찬양을 부르고 신비한 체험을 하고 성경의 말씀을 읽고 듣는 최종의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삶을 깨닫고 사모하며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함인 줄로 믿습니다.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 같은 은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지 체험과 감격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순 없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을 경험하여 신실한 인간으로, 책임 있는 존재로, 세상의 논리와 시대의 풍조에 대척을 이루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정의를 향한 용기와 선행을 외면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하나님을 외치고 성경을 줄줄 암송한다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과 천국과는 아무 상관없는 존재라는 자기증명에 불과합니다. 

5. 가로등은 밝은 대낮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두워지면 밝게 살아나 밤거리를 밝혀줍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곁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구처럼, 연인처럼, 희망처럼 빛이 되어줍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세상에 남아있는 가로등과 같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교회가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2017년 새해, 또 다른 변화를 경험하시는 한해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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