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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이성호함경도 실향민의 아들로 서울의 유력한 산동네 돈암동 출생. 북악산과 삼각산을 닮은 작은 교회와 소박한 사람들을 가슴에 훈장처럼 여기는 포항의 작고 불편한 교회의 책임사역자. 한신대 신학대학원. 한신대 대학원 교회사 박사과정(Ph.D.Cand.)수료. 연규홍 교수와 「에큐메니칼 신학의 역사」(Vital Ecumenical Concerns) 번역,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 집필. 포항CBS라디오 5분 메시지, 포항극동방송 ‘소망의 기도’ 진행자. 책에 한(恨)이 맺혀 ‘Book Party’할 수 있는 도서관 교회를 꿈꾸다.

한국 교회의 정교분리, 과연 성경적일까?

이성호 | 2016.11.21 21:27
한국 교회의 정교분리, 과연 성경적일까?

지난 토요일(19일) 광화문의 어느 식당에서 어르신 한분이 식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밥값을 대신 계산하면서 이런 말씀과 함께 지갑을 여셨답니다.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 여기까지 나오니 너무 고맙다...”  돈 몇 만원에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냐’는 피켓을 받아드는 비참한 노인들이 있는가 하면, 불순세력이 촛불집회를 선동한다고 핏대를 올리는 목사도 있고, 종교는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며 기도만 하라는 교회서부터, 집회에 참석하면 징계하겠다는 학교장까지, 각기 저마다의 입장에서 다양한 소리를 내는 듯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요?

자면서도 수익을 계산한다는 장사꾼은 정권에 협조하므로써 돌아올 보장을 우선하고, 경찰은 하달된 명령에 복종하느라 시민을 감시하며, 검찰은 권력의 향후 재편성을 예상하며 판결을 내리려 합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지만 조직의 생리에 충실해야 하는 오늘의 공무원들은 차라리 측은해 보입니다. 어찌 보면 자신이 속해있는 상부 지시에 따라 절대적으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너무 당연한 물음일까요? 

한국 교회의 주인은 일부에선 예수그리스도가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고 저마다의 제사장들인 교인들은 더 더욱 아닙니다. 많은 교회들의 주인은 목사 자신이자. 정치하는 장로들 손아귀에 있다고들 합니다. 그래서인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 의지합니다”가 아니라 목사님의 의견을 따르고 기득권자인 정치 장로들에 좌지우지 되어가는 현실을 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린다는 말은, 젊은 목사들의 경우 장로들과의 공조를 돈독히 하면서 눈치를 보겠다는 의미이고, 노련한 목사들은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돌파해 가겠다는 뜻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교회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종교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맹신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정교분리, 과연 성경에 있는 원칙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교훈일까요? 이도저도 아닙니다. 루터는 가톨릭 신학자이자 주교인 어거스틴의 ‘두 도성 이론’을 이어받아, 이 땅에 세속 왕국과 신의 왕국이 각자의 영역에서 공존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정교분리 원칙의 본질은 당시 상황에서 세속 왕국(제후들)이 하나님의 왕국(교회)에 간섭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교회의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고자 함에 있었습니다. 

미국의 정교분리주의 역시 본질에서 동일합니다. 국가 권력은 언제나 스스로를 신격화하며 복종을 강제했습니다. 국가의 박해를 피해 떠나온 청교도들의 신앙을 계승한 이들은 ‘국가는 교회를 간섭하거나 억압할 수 없다’는 정신을 수호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유지 메커니즘이 목적 메커니즘을 삼킴에 따라, 정치권력을 찬양하는 대신에, 부당함에 관하여는 입을 다무는 대가로 세 확장을 보장받으며, 일제에 이어 이승만 정부,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역으로 정교분리주의를 표방했습니다. 부끄러운 하수인으로 추락한 궁색한 논리가 바로 한국의 ‘정교분리’입니다. 

한국 교회의 ‘정교분리’ 주장은 불의한 국가권력에 대한 교회의 암묵적 동의와 타협을 두둔하는데 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성경이 가장 경계하는 우상숭배의 형태는 국가권력과 종교가 서로 결탁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정교분리는 국가(정부)와 교회의 유착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의 영역 밖인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의미는, 사탄의 세력과 영향이 미치는 모든 곳은 물론이고, 부패한 정치인에서부터 악한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불법을 행하거나 불의에서 돌이키지 않을 때, 불복종하거나 저항할 것을 포함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통치는 이 땅, 어느 한 곳에서도 제한될 수 없습니다. 참된 기독교는 모든 영역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만 들어오면 도리어 왜곡되고, 오용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아직까지 정치와 결탁된 종교인들, 타락한 권력과 불의한 기업의 도움을 받아도 큰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무성영화 변사 같은 목회자들, 출세에 혈안이 된 신학교수들, 호위무사 자처하는 약삭빠른 부교역자들이 저마다 자기 입장에서 각색하고 도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한국 교회 급성장의 원인으로 숨길 수 없는 요인입니다. 

실체를 직면하는 순간이 결코 유쾌하진 않지만,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그들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겠습니다. 제정신 가진 젊은이들이 그런 교회에 앉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어설프고 가련합니다. 진짜 신앙은 불의를 대면하여 있는 그대로 말할 줄 알고, 거절할 줄 아는 용기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세상에 포위당한 교회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로 세상을 포위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세상을 살아 숨 쉬게 하는 '희년의 해'를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한복음 15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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