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이성호함경도 실향민의 아들로 서울의 유력한 산동네 돈암동 출생. 북악산과 삼각산을 닮은 작은 교회와 소박한 사람들을 가슴에 훈장처럼 여기는 포항의 작고 불편한 교회의 책임사역자. 한신대 신학대학원. 한신대 대학원 교회사 박사과정(Ph.D.Cand.)수료. 연규홍 교수와 「에큐메니칼 신학의 역사」(Vital Ecumenical Concerns) 번역,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 집필. 포항CBS라디오 5분 메시지, 포항극동방송 ‘소망의 기도’ 진행자. 책에 한(恨)이 맺혀 ‘Book Party’할 수 있는 도서관 교회를 꿈꾸다.

그리스도인과 대안사회

이성호 | 2019.01.19 16:05

그리스도인과 대안사회

 

1.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을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달려 나옵니다. 놀이터를 향하는 길인 듯 싶습니다. 녀석은 걸어가면서도 연신 허공을 향해 주먹질입니다. 입에서는 휙휙 손동작에 맞춰 바람을 가르는 소릴 냅니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지요. 아주 신이 나 보였습니다. 칼을 쓰는 동작,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동작으로 피하다가 다시 찌르는 몸동작으로 전환하면서 붕붕 날아다닙니다.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놀이터가 드문 탓에 골목 어귀 좁은 공터에 모여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하다 싫증이 나면 다방구니 오징어놀이니 술래잡기까지 그야말로 콧물과 땀방울이 범벅이 될 정도로 놀곤 했습니다.

 

2.

사람들은 자주 발생하는 살인사건과 잔인한 폭력들이 유아기 때부터 즐겨하는 컴퓨터 게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밖에 나가 놀만한 여유가 없는 아이들이 방에 홀로 앉아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다 보니 보고 배우는 것이 폭력이라는 겁니다. 분명 연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영화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리얼리티를 살린다는 이유에서 실제라 착각할 만큼 사람을 치고 자르고 죽이는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대체로 선이 악을 이긴다는 결론이지만, 상대를 공포에 떨게 하는 잔혹함과 포악성, 사람을 때려잡는 갖가지의 동작들은 따라하고 싶을 만큼 눈에 익은 기술이 되었고, 이 시대 아이들에게 익숙하게 노출된 흉내 내고 싶은 무언가가 되어 있습니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자라온 환경과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기 보다는, 해악부터 지적하고 질책하며 중단하기를 요구합니다. 세대 간 불통은 예견된 결과입니다. 이해를 무시하고 틀린 것이고, 하면 안 되는 것이므로 아예 중단하기를 우선 주장하다보니 발생되는 상황이겠습니다.

 

3.

자 다시 확인해봅시다. 이 세대가 나고 자란 환경은 우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간과하면 지적만 하게 됩니다. 그렇게 야단을 치는 세대라도 만일 이 시대에 출생했다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자기 경험에만 닫혀있는 분들은 다른 것을 보아도 알지 못할 뿐입니다. 겪지 못한 측면으로 보자면 서로 이해할 수 있으며, 같이 고민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경제적인 수혜와 혜택만을 가지고 예단할 수 없는 것이 행복만족도입니다. 생활의 궁핍에 시달린 세대들의 단순 비교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은 무엇일까요? 혀를 차며 걱정할 것만 아니라 무언가를 제시할 의무가 있는 겁니다.

 

강자의 승리만 존중되는 현실에서 약자를 지켜내려는 것은 기본 윤리입니다. 시장의 종교가 지배하는 곳에서 인간의 가치를 외치는 것은 종교의 책임입니다.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대안의 모색을 포기하는 것은 노예의 길입니다.

 

4.

대안이 저절로 보였던 시대는 어느 때도 없었습니다. 대안을 만들어 갔기에 대안이 생겨난 것이지요. 종교가 자본의 선전문구이거나 무속적 신념에 불과 할 순 없습니다. 특별히 개혁 교회는 사회와 역사의 궤적을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교회가 누리는 즐거움만족을 알리고 전하기에 앞서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굴욕적이고 치명적인 혼란입니다.

 

이 점은 16세기 영국의 금융업자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롯된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경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수요를 위해 더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더 자극적인 제품으로 현혹하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구조와 현상에 대한 관찰은 소홀히 하고, 사탄의 궤휼이요 마귀의 유혹이라는 막연한 혐오를 반복하는 한 교회는 더 고립될 것입니다. 이 고립은 스스로 자초한 것으로, 거룩과 경건을 위한 고초와는 별개입니다.

 

5.

예수님 당시의 유대사회는 어떠했을까요? 눈만 뜨면 나날이 로마의 신문화와 생활의 편리들이 이스라엘로 유입되는 시기였습니다. 대세는 요즘처럼 미국식가 아니라 로마식이었을 때입니다. 약삭빠른 사람들 사이에선 로마제국식의 교육과 문화를 습득하는 일이 출세의 지름길이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로 여겨지고 있을 때입니다.

 

한편에선 그때까지도 나은 지 8일이 되면, 할례를 받고, 3세가 되면 글자를 배우고, 5세가 되면 성경에 나오는 율법을 암송하면서, 가정교육을 시작하는 가정들은, 아무리 편리하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보인다할 지라도, 로마식 신교육 방식을 따라하지 않겠다는 당당함이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12세가 될 때까지 교육의 책임은 전적으로 아버지가 졌습니다. 그리고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성전에 가서 율법 교사들 앞에서 확인을 받게 되는데, 그 때 나이가 열두 살입니다. 가정에서 성경교육을 제대로 잘 배웠는지 시험하는 절차를 통과해야, 유대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들은 시대에 뒤처진다는 불안감보다,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신념이 확고했습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에게는 부모 세대로부터 생활신앙의 투철함이 계승되었습니다. 결국 누구의 문제일까요? 예 컴퓨터 게임에 빠진 아이들보다 부모 세대들의 문제입니다. 마치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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