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이성호함경도 실향민의 아들로 서울의 유력한 산동네 돈암동 출생. 북악산과 삼각산을 닮은 작은 교회와 소박한 사람들을 가슴에 훈장처럼 여기는 포항의 작고 불편한 교회의 책임사역자. 한신대 신학대학원. 한신대 대학원 교회사 박사과정(Ph.D.Cand.)수료. 연규홍 교수와 「에큐메니칼 신학의 역사」(Vital Ecumenical Concerns) 번역,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 집필. 포항CBS라디오 5분 메시지, 포항극동방송 ‘소망의 기도’ 진행자. 책에 한(恨)이 맺혀 ‘Book Party’할 수 있는 도서관 교회를 꿈꾸다.

어버이날과 고려장

이성호 | 2018.05.08 18:36

어버이날과 고려장

 

1. 인터뷰

 

지난 2012년 서울교육감 보궐선거에서 보수진영의 후보로, 다음 선거에는 진보진영의 후보로 거론된 모 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학교폭력대책위원, 여성가족정책위 자문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공직을 포함해 어떤 자리도 맡을 생각은 없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어디 줄을 서거나 하지 않고 할 말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여서 공직을 맡아 인사이더가 되는 순간 바보가 될 거라는 이유에서 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남긴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은 이러합니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어른이 아니라, 어린애를 양성하고 있다는 겁니다. 나는 어린애와 어른을 나이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나눠주는 자(Giver)인가, 받는 자(Taker)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하지요. 갓난아기는 하루 종일 달라고만 합니다. 그러다 성장하면서 점점 독립적으로 됩니다. 그렇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노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 시작할 때,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른은 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도 계속해서 얻고, 받고, 자기 몫을 챙기는 데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2. 교육

 

대기업 신입사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왜 대기업에 들어왔느냐고 물었습니다. 다들 조금 더 높은 봉급, 대기업의 후생복지, 안정된 생활, 좋은 배우자를 얻는 것을 그 이유로 꼽았습니다. 결국 모두 얻는 것을 생각하는 겁니다. 이렇게 얻으려고만 하는 한 그들은 어린아이입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내가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어른입니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내가 먹여주고, 차 태워주고, 모든 것을 다 해줄 테니 앉아서 공부만 해라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혼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그동안 한국은 위로 올라가는 교육을 해왔습니다. 즉 계층 상승용 교육입니다. 고려시대부터 이런 교육이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시행돼오다, 광복 후에는 모두에게 개방됐고요. 실제로 196080년대에는 배경이 없고, 미천하게 시작하더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장을 얻고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유효한 성공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발전한 사회에서는 위로 올라가려면 남을 짓밟아야 합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제 위로 올라가는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다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교육을 해야 함께 갈 수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이유는 남이 심어놓은 나무의 열매를 나 혼자 먼저 따먹겠다는 겁니다.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우리 사회가 축적해놓은 열매를 혼자 독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겠습니다. 그걸 가르치고 부추기는 것이 지금의 현실 아닐까요?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열매를 따먹는 데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열릴 더 많은 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뒤에서 따라오는 후손들이 열매를 따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렇게 사고방식, 인생의 틀 자체가 변해야 하는데, 교과과정을 아무리 개선해도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학교에서는 오로지 국어, 영어, 수학만 집중적으로 가르칠 뿐입니다. 학교현장의 인성교육은 뒷전입니다. 이를 놓쳤기 때문에 한국에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닐까요? 가정교육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도 오래됐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교육은 어떨까요? 불행히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3. 고려장

 

고려장이란 노모를 지게에 진채, 산에 올라 깊은 산중에 노모를 버린 아버지의 아들이, 아버지가 늙으면 나도 아버지를 져다 버릴 것이다 하며, 그 지게를 가지고 하산하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노모를 버린 아버지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듯합니다. 하지만 이 고려장의 이야기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오래된 옛 무덤을 도굴하기 위하여, 날조한 유언비어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더구나 이 이야기는 중국의 효자전과 흡사하며, 어머니의 지혜로 전해오는 인도의 잡보장경기로국연조와 유사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고려장을 실제 역사로 묵인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일본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의 영향일 것입니다. 일본의 영화감독인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품으로, 1983년 제36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정도로 익히 알려진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영화도 우바스테야마나 오바스테 산같은 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70세를 넘은 노인은 의식에 따라 버려야 한다.’는 자연에 순응하는 일가의 비극적 운명과 끈질긴 인간의 생명력을 그려낼 뿐입니다.

 

4. 어버이날

 

그러던 고려장이 한국사회에 재등장했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전답을 팔고, 소득의 대부분을 자신의 노후 준비와는 무관하게 전부를 쏟아 넣은 우리의 부모님들은, 인적 없는 시골집에 남거나 도시의 빈집을 지키거나 손주들을 돌보는 가정지킴이 비슷한 노년을 보내는 것이지요. 그나마 손주들이 성장하고 나면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기 일쑤입니다.

 

연금이나 재력이 남은 소수를 제외하곤, 우리나라 어르신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오십보백보입니다. 자식들을 부양하며 갖가지의 교육비를 감당하고, 전세를 전전하다 집이라도 장만하면, 곧 대학과 결혼자금으로 마지막 남은 재산을 탈탈 털어낸, 이미 쇠잔해지신 부모님들은 의지 할 곳조차 위협받게 됩니다.

 

자녀들은 도시로, 직장 근처로 분가하여 경쟁적으로 바쁜 일상을 살아갑니다. 부모 세대와의 한 가정을 이루는 자녀는, 부모의 부동산에 기대어 합치는 경우를 제외하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마르고 건조해진 피부만큼이나 피폐해진 우리의 부모들은, 간간히 들려오는 아이들 소식에 웃고 울기를 반복하며 속절없이 죽어가는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판 고려장아닐까요? 자식이 살기 위해 부모의 최후까지를 빼 막아야 하는 오늘의 현실.

 

평생을 자녀들에게 기꺼이 뜯겨준 부모님은 장렬한 최후를 그렇게 끝내는 겁니다. 어찌 어찌 시간이 되거나 그나마 불현 듯 마음이 동하여 부모님을 방문하기 전까지, 우리는 나나할 것 없이 유연하게 잊고 살아갑니다.

 

올해는 빨간 카네이션이 부끄럽고 송구스러워, 큼지막이 담은 꽃바구니를 들고 부모님 장지를 찾습니다.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청개구리일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유언만이라도 지킨답시고 강가에 어머니를 묻고 비가 오면 내내 우는 그 청개구리 말입니다. 어머니... 청개구리 같은 아들, 어찌 저 같은 아들을 그리 사랑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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