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이성호함경도 실향민의 아들로 서울의 유력한 산동네 돈암동 출생. 북악산과 삼각산을 닮은 작은 교회와 소박한 사람들을 가슴에 훈장처럼 여기는 포항의 작고 불편한 교회의 책임사역자. 한신대 신학대학원. 한신대 대학원 교회사 박사과정(Ph.D.Cand.)수료. 연규홍 교수와 「에큐메니칼 신학의 역사」(Vital Ecumenical Concerns) 번역,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 집필. 포항CBS라디오 5분 메시지, 포항극동방송 ‘소망의 기도’ 진행자. 책에 한(恨)이 맺혀 ‘Book Party’할 수 있는 도서관 교회를 꿈꾸다.

믿음의 힘과 긍정의 힘

이성호 | 2016.04.02 23:43

믿음의 힘과 긍정의 힘

 

꽃이 피는 4월이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장엄하고 명쾌한 본문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자주 접하는 성구지요? 의욕을 솟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빌립보서 4장 13절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새로 창업한 사업장이나 이사한 아파트 거실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 성구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의미일까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우린 벌써 다 부자되고 다 명문대 가고 다 대기업에 들어갔을 겁니다. 죄송하지만 아닙니다!

 

이 말씀은 잘못 인용되는 대표적인 성구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긍정적인 감정’을 결코 믿음이라고 일컫지 않습니다. 말씀을 그렇게 사용하게 되면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외친 나폴레옹의 구호와 마찬가지가 되고 맙니다.

 

빌립보서는 비참한 삶에 처했지만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바울의 심경이 담긴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쓸 당시 바울은 참담한 환경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억류된 생활과 극심한 빈곤에도 동요됨이 없이 기뻐했습니다. 2장17절을 보면, "여러분의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바울의 결연한 심정은 분명해보입니다.

 

이 본문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11절부터 보셔도 무방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 아멘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이제야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록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비참한 지경에 처한 것 같지만 나는 이 처지도 감사합니다. 당신들도 나와 같이 믿음을 지키는 일로 괴로움을 택하였으니 참으로 잘하였습니다.”

 

느낌이 오시는지요? 성경 구절이 마음이 든다고 해서 아무렇게 갖다 붙이면 피차 우스워집니다. 이 말씀은 대박나라고 걸어두는 용도가 아닙니다. 이 성구를 개업한 사업장에 붙이면 “예수님 때문에 신앙을 지키다가 망할지라도 나는 기쁩니다.” 이런 뜻이 됩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자의 표적입니다. 믿는 자의 권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입니다. 복음의 능력이란 이런 것입니다. ‘비록 어려움에 처할지라도 나는 예수그리스도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말씀은 변함이 없는데 그 해석적용가 지나치면 사이비종교가 됩니다. 교회라고 해서 예외는 없습니다. 이런 고백이 여러분과 저의 삶에서 매일 매일 경험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한 주도 주안에서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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