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이성호함경도 실향민의 아들로 서울의 유력한 산동네 돈암동 출생. 북악산과 삼각산을 닮은 작은 교회와 소박한 사람들을 가슴에 훈장처럼 여기는 포항의 작고 불편한 교회의 책임사역자. 한신대 신학대학원. 한신대 대학원 교회사 박사과정(Ph.D.Cand.)수료. 연규홍 교수와 「에큐메니칼 신학의 역사」(Vital Ecumenical Concerns) 번역,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 집필. 포항CBS라디오 5분 메시지, 포항극동방송 ‘소망의 기도’ 진행자. 책에 한(恨)이 맺혀 ‘Book Party’할 수 있는 도서관 교회를 꿈꾸다.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이성호 | 2016.03.24 23:37

기도에 대하여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치 못한 것이 기도입니다. 공사를 위해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농사를 위해 비를 간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하나님께서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할까요? 비행기 시간에 늦게 도착하여 출발 시간이 연기되기를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정시 출발을 못하면 큰 지장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번엔 누구 기도를 들어주셔야 할까요? 타석에 선 타자는 홈런을 기도하고 투수는 삼진 아웃을 기도합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를 냉정히 평가해 보면 다소 말이 안 되는 것이 제법 많습니다. 특히 기복적이고 이기적이며 물욕적이고 무속적인 기도가 많습니다. 대학 입시는 실력순 또는 자격순으로 합격해야 순리건만, 내 자녀의 원하는 대학 입학을 위한 것이라면 경우를 가리지 않고 매달립니다. 만일 그런 기도가 그대로 응답된다면 다른 적격자 한 학생이 더 떨어져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며 무책임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가르쳐도 기복으로 빠지는 것이 우리네 모습들인데 도리어 목회자들이 앞장서서 기복으로 가고 있으니 이 모양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저립니다.

 

"하나님! A대학에 갈까요 B대학에 갈까요?" 이런 기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만 한다면 어느 대학으로 가도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어디에서든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기만 한다면 요셉처럼 감옥에 있어도 되고 총리가 되어도 좋은 것입니다. 그게 믿는 자의 바른 자세입니다.

 

왼 쪽으로 가시든 오른 쪽으로 가시든 가고 싶은 길로 가십시오. 그런 것도 일일이 기도 응답을 받고 가야 하는지요. 그건 미신적 신앙입니다. 짜장면을 먹든 짬뽕을 먹든 그냥 먹고 싶은 것을 드시면 됩니다. 이 직장을 가든 저 직장을 가든 신앙양심에 문제만 없다면 원하는 대로 가셔도 됩니다. 그걸 기도하면 정말 하나님께서 "저 직장으로 가라!"고 직접 알려주시던가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기도 중에 어떤 일을 결정한다는 것은 '주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이지 무슨 점쟁이처럼 "이리 갈까 저리 갈까?"에 대한 점괘를 구하는 것이 될 순 없습니다.

 

성도에게는 거기에 가서 '어떻게 사느냐'가 진정한 관건입니다. 하나님은 무슨 직업, 무슨 일, 혹은 무슨 신분이 되는 것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들은 높이, 크게, 많이에 열중하고 주목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그 위치에서 내가 하는 역할에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말로만 기도하지 마시고 삶으로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모든 삶이 향기로운 제사입니다.

 

내 뜻대로 아무렇게 살지 않기를, 아버지의 뜻대로 살게 해달라고 진실 되게 기도했다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목적하며 사는 것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없던 초라한 이 죄인이 거만하고 이기적이며 제 자랑으로 낙을 삼던 먼지 같은 인생이 성령으로 새롭게 변화를 받아 그런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기도의 진정한 완성이며, 기적과도 같은 응답입니다.

 

이 한주도 주안에서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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