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나상엽스무 살 어린 시절 만나 20여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한 아내의 남편, 10대에 접어드는 예쁘면서도 드센 두 아들의 아빠로, 지금 경기도 안성의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머리 굵어가고 얼굴 두꺼워지는 중학생 아이들과 성경과 문학, 아름다운 우리 주님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자라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베풀어주시는 은혜로 인해, 이제껏 기독교 문서사역과 중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사역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기대하며 따르기 소원합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나상엽 | 2016.04.02 12:54

“그분은 어찌나 광대하고 광활하신지, 만물이 그분 안에서 저마다 알맞은 자리를 차지해도 전혀 비좁지 않습니다”(골로새서 1:19, 메시지)


1

“우와 저기 봐요~ 산에 분홍색이요!”, “비가 오고 나니까 개천가 초록색이 더 파래졌어요.”, “목련이 저렇게 같이 피어 있으니까 더 환해요.” 함께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이 쏟아내는 감탄사들입니다. 모두 시인들입니다. 보이는 봄 퐁경들이 매주마다 다릅니다.


교회 앞 마당을 분홍 빛으로 물들였던 홍매화는 며칠 새 비를 품은 시린 바람에 거의 다 지고, 남은 몇몇 꽃송이들도 잎을 잔뜩 오므리고 있습니다. 산수유가 수줍게 길을 열었던 노란 봄길에는 이제 개나리가 일렬로 서서 환영해주고 있습니다. 이 비 그치면 또 새로운 꽃들과 나무들이 방긋 얼굴을 내밀겠습니다. 봄을 가장 화려하게 수놓는 벚꽃은 남도에서는 벌써 한창이고, 여기 도시 볕 잘 드는 곳에서는 하나둘씩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분홍으로 산들의 허리를 장식하는 철쭉들은 곧 팔도 여기저기서 무리지어 축제의 기쁨으로 등장하겠습니다. 환하게 피어오르는 봄들을 바라보다보면, 별안간 마음이 환해집니다. 입가에 멜로디가 따라붙습니다. 눈부신 햇살을 머금고 싱그러운 봄내음 여기저기 흩어주는 봄바람이 우리 마음에도 살랑 불어대나봅니다.


2

처음 사람이 범죄했을 때 그들은 동산을 잃어버렸습니다.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며 사람들에게 반역해왔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아름답게 우리 앞에 펼쳐지는 봄은, 서늘한 바람이 불 때 찾아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며 그 이름을 불러 찾으시던 하나님의 부드러운 부르심입니다. 그 옛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수치를 감추려했던 가련한 인생들을 위해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입히시던 그분의 눈가에 맺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눈물 방울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동산을 잃어버린 우리를 다시 그분께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초대장이요, 우리 귀에 은은하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시인 타고르도 이렇게 노래했나 봅니다. “나무에게 부탁했네, 하나님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그러자 나무는 꽃을 피웠네.”* 나무는, 그리고 꽃은 우리를 향해 흔드시는 하나님의 손짓입니다.


온 계절을 통해 하나님은 촉촉히 젖은 노래로 우리를 부르시며 초대하십니다. 초록 바람과 함께 들려지는 이 노래는 영원, 곧 잃어버린 그 세계(전도서 3:11)를 향한 갈망을 새롭게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인지 이 봄에는 우리 마음이 자꾸만 자꾸만 그분께로 향하게 됩니다.


언제나 우리들 갈망의 중심은 예수님 그분입니다. 우리를 만족시키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그림자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메아리만으로는 늘 부족합니다. 무엇으로, 아무리해도 그분만큼은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십니다(엡 1:23).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십니다(골 1:19). 충만하신 그분만이 만물을, 그리고 우리를 충만케 하십니다. 그러니 이 계절을 타고 흘러내리는 영광스러운 충만을 조금 맛보니, 그분이 더욱 간절히 그리워집니다.


햇살이 저리 눈 부신 만큼 우리 심령의 갈증은 더 커지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이토록 싱그러운 만큼 그분을 찾는 우리의 호흡은 더 거칠어지면 좋겠습니다. 봄이 소리없이 별안간 찾아왔다면,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더욱 큰소리로 부르짖으면 좋겠습니다. 꽃들이 시들도록 열심히 피는 것처럼 우리도 그분을 구하느라 더욱 수척해지면 좋겠습니다. 이 생명의 근원되신 주님을 얻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는 그분으로 충만해질 수만 있다면!


“연초록 잎들이 저렇게 햇빛을 허천난 듯 먹고 마셔대도 그래도 남아도는 열두 광주리의 햇빛”**처럼, 우리가 아무리 먹고 마셔도 하나도 부족해지지도 않고 닳아 없어지지도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빛나시며 그 완전한 충만이 더욱 충만해지시는 이 예수님은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지요.


3

봄입니다. 꽃들에게 아름다움을 주신 아름다운 그분을 그려봅니다. 새들이 함께 노래하는 그분의 노랫소리에 귀기울이고 싶습니다. 대지를 달리는 초록을 따라 우리도 그분께로 달려나가면 좋겠습니다. 다시 우리를 불러주시는 그분의 음성에 감사한 마음으로 대답하면서, 부지런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가겠습다. 그리하여 거기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 발 아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모두 새롭게 만나고 싶습니다. 거기가 우리의 자리입니다. 거기서, 새롭게 뵙겠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2세기의 이레네우스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후로도 오랫동안 여러 경로로 전해져, 카잔차키스는 이것을 성 프란체스코의 이야기로 그의 작품에서 소개하고 있으며, 타고르도 자신의 작품에 사용한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도 계속 여러 작가에게서 여러 형태로 변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나희덕, 「허락된 과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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