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나상엽스무 살 어린 시절 만나 20여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한 아내의 남편, 10대에 접어드는 예쁘면서도 드센 두 아들의 아빠로, 지금 경기도 안성의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머리 굵어가고 얼굴 두꺼워지는 중학생 아이들과 성경과 문학, 아름다운 우리 주님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자라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베풀어주시는 은혜로 인해, 이제껏 기독교 문서사역과 중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사역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기대하며 따르기 소원합니다.
오늘부터는!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학개2:18,19)
1.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뉴스에서는 7시 47분이라 예보했었습니다. 하지만 뿌연 하늘이 조금 붉게 물들어 있을 뿐, 그닥 기대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랬는데 갑자기 시야를 가리던 아파트 뒤가유독 빨개지더니, 이내 똥그란 “새 해”가 기웃기웃하며 얼굴을 들이대더군요. 그때 찍은 사진의 시간을보니 7시 55분. 거듭 말씀드리지만,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해돋이를 본 것도 처음이니, 새해 첫날 해돋이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러고 뽑아든 “올해의 말씀” 카드에는 “구원”이라는 큰 타이틀과 함께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잠언 23:18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늘은 이내 맑게 개고, 낙산 공원의 바람은 함께 한 우리들 마음만큼이나 싱그럽고 시원했습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어제 오늘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저 말씀이 참 좋습니다. 바로 앞 구절인 17절은“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씀인데, 두 구절을 연결지어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면 반드시 장래가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소망은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2.
지난 12월 31일, 송년 특집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서 여러 성도님들의 사연들을 들으면서 참 감사했습니다. 자칭 전지현-김수현 커플의 천연덕스러운 진행이 유쾌했고, 마음 담긴 사연들에 공감하고 웃어주며 박수보내는 형제자매님들이 예뻤습니다.
주님을 위해 전적인 헌신을 다짐하는 어떤 형제님의 이야기가 마음을 새롭게 해줬고, 믿지 않는 이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마다 않겠다는 어떤 자매님의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한 해 동안 겪은 여러 인생의 맛들을 묘사했던 어떤 삼삼한 이야기를 다시 곱씹게 되고, 일본에서 온 갸루상, 이즈미 자매님의 기도 요청을 기억하며 얼른 기도합니다.
지난 1년, 다 알 수 없었던 우리들의 즐겁고 아프고, 감사하고 두려웠던 일면들을 조금 엿보면서, 알게모르게 우리 주님께서 정말 함께 하셨구나 싶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니 하나님이 돌보시고 기르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일에 우리 모두가 함께 동참할 수 있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새해에도 더욱 서로 돌아보고 다 함께 자라나는 우리 모두이길!
3.
밤새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상한 야곱이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습니다. 하나님의 천사와 싸워 이기고도 엉엉 울 수밖에 없었던 그였습니다(호 12:4 참조). “내 이름은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그의 마음에는 온갖 회한과 고통, 수치와 후회, 자기 연민으로 가득했을 겁니다. 수많은 속임수와 탈취, 자신을 죽이려 들었던 형, 사랑하는 부모와의 이별, 기나긴 타향살이의 설움, 지금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 등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뿌린 씨의 열매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요? 그렇게 약하고 악한 사람이 게 바로 나라고 말하는 그의 심정은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그래서 그는 더욱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구했을 겁니다. 이토록 추악하고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에분하고 속상했던 만큼, 이대로 그냥 끝날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의 마음을 더욱 격동시켰을 겁니다(창32:26).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었던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받은 이름이 나타내는 바 마침내 얻어낸 장래에 대한 약속과 축복으로 울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밤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렇게 해서 지난날 모든 실패와 수치, 두려움과 설움을 다 비워내고(‘얍복’이라는 말의 뜻은 ‘쏟아붓다pouring out, 비워내다emptying’라고 합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얼굴 때문입니다. 더럽고 추악한 그를 찾아오셔서 마침내 미소지으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얼굴 말입니다. (그 밤에 이긴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던 것일까요?)*
그 밤이 지나고 돋은 해는 적어도 그에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해였음에는 틀림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에게 드리웠었던 수치와 패배감, 절망의 그늘이 아닌, 온통 강렬한 기대와 따뜻한 소망으로 가득찬, 말 그대로 “새 해”말입니다.
4.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날의 모든 아픔과 슬픔, 외로움과 설움들은 없었던 것으로치부할 수도 없고, 그냥 무시할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서럽고 나빴던 것도 모두나였다고 솔직히 말해야 합니다. 그래도 그런 나도 다시 찾아주시고 그 얼굴빛을 비춰주시는 그분이시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랑하는 한 우리의 장래는언제나 있습니다. 소망은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새 해”입니다. 이전에는 비루하고 메마르고 황량했을지 몰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 2:19)
오늘부터는!
네, 주님! 오늘부텁니다.
다시, 오늘부텁니다.
그래서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3의 내용은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폴 스티븐슨, 죠이선교회 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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