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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문양호평신도 때부터 제자훈련과 평신도 신학, 기독교 세계관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와 책이라면 모든지 모으는 편이었고 독서 취향도 잡식성이라 기독교 서적만이 아니라 소설, 사회, 정치, 미술, 영화, 대중문화(이전에 SBS드라마 [모래시계] 감상문으로 대상을 받기도 했죠) 만화까지 책이라면 읽는 편이다.
    지금도 어떤 부분에 관심이 생기면 그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씩 읽는 중독성을 가진 총신대학원을 졸업한 목사.

날이 궂으면 도지는 상흔

문양호 | 2017.04.13 15:01

날이 궂으면 도지는 상흔

 

1.

아프냐?”..“나도 아프다.”

제대로 본적은 없지만 나도 알고 전국민이 안다고 할수 있는 그 유명한 드라마의 대사.

그런데 오늘은 한번 딴지를 걸어보고 싶다. 정말 아팠을까?

아니 아팠을 수는 있지만 그만큼 아팠을까?

그러기는 쉽지 않을 듯 싶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는 표현은 가슴이 찢어지는 경험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 , 찢더라도 마취는 없어야 겠지.

이런 엉뚱한 생각은 고난주간을 보내며 예수 그리스도가 겪으셨던 십자가 사건을 묵상하다보니 드는 잡념이었다.

십자가에 달리기전 수많은 채찍질과 가시 면류관은 일단 접어두고서라도 손과 발을 관통한 그 못의 고통, 그리고 옆구리에 깊숙이 파고들어 장기까지 손상케 한 창으로 인한 통증은 쉽게 표현할수 없으리라.

그것을 다 넘어 부활하신 후 도마를 만났을 때 주님은 도마에게 그 못자국을 보고 옆구리의 상흔에 손을 넣어보라고 하신다.

그런데...그런데 도마가 손을 대어 예수님의 상처자욱을 만지셨을 때 주님은 그때도 아프셨을까? 부활하신 후 걸으실 때 못자욱으로 인한 고통이 있으셨을까?

큰 교통사고를 당한 이들이 비오거나 날이 궂으면 상처 자욱과 사고부위가 쑤시듯 혹시 주님도 지금도 천국에서 못자국과 옆구리의 상흔으로 인해 힘들어 하실까?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것도 알고 신학적으로도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닐수 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중 하나는 최근 주변에 다양한 형태로 아프신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많은 이들의 아픔을 주님은 어떻게 느끼실까 하는 생각이 말이다.

그 고통의 동질화가 혹시나 주님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고통이 아닐까 하는 정말 엉뚱한 생각.

 

2.

그 엉뚱한 생각은 한번 더 날아간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심장이 멎는 고통을 겪으셨을 것이다.

어느 가수의 총맞은 것처럼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어느 누구의 글에서 의료적 관점에서 심장이 멎는 상황이 닥칠 때 그 통증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다고 기술했었다. 그것이 맞는 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 고통은 곧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낌에서 더 가중되는 것일까? 모르겠다. 어찌됐건 주님은 다른 신체적 고통과 더불어 죽음의 임박과 심장의 멈춤을 겪으시며 숨을 거두셨을 것이다.

어쩌면 천국에서 주님은 그 고통이 반복되는 경험을 때때로 하시는 것 아닐까? 다시 돌아가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심장에 오는 강한 통증 같은 것. 누군가 숨을 거둘 때 마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때마다 주님도 그런 통증이 몰려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 모든 것이 다 쓸데없는 생각인 것 안다. 주님이 우리의 고통을 어떻게 느끼실까 하는 그냥 막연한 상상일 뿐이다. 꼭 그것이 그런 구체적인 방법으로 고통의 동일화가 이루어져야 할 이류는 없을 것이다.

주님만이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셔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던지신 그 주님의 고통을 우리도 이해해야 한다.

내가 고난주간을 보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겪으셨던 수치와 모욕을 이해하는 것도 이루어져야 하지만 주님이 겪으셨던 고통을 내 것으로 체화할 때 더 주님의 고통과 그 지신 짐을 약간이라도 이해할수 있으리라.

주님은 십자가의 길에서 이미 그분이 받으실 필요도 없는 고통과 수치를 당하셨고 직접적 고통이 아니더라도 공생애 3년을 위해 삼십년이란 세월을 인간으로서 사역의 결과도 없이 기다리셔야 했다. -이것을 생각하면 선교사로서의 열매거두기 힘든 곳에서 묵묵히 서있는 분들과 개척교회를 하면서 몇 안되는 성도와 씨름하는 이들을 결코 가벼이 여길수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자체가 주님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3.

그런데 이런 엉뚱한 생각 속에서 나는 얼마나 내가 관계하는 지체들의 고통을 동질화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지금 내가 나름 개인적으로나 가정이 지고 있는 짐들과 무거움도 있지만 그것 이전에 내 주위의 힘들어 하는 지체들의 마음을 나는 얼마나 느끼며 사는지 생각해본다. 종종 내 짐이 그들이 지고 있는 짐들과 달라 내가 진 짐만 힘들어 하고 타인의 짐에 대해서는 무관심할때가 있다. 아픔을 덜 겪어본 이들은 아픔 중에 있는 이들을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그렇다고 고난을 부러 자초할 이유는 없지만 어떤 형태로건 간에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수적일 것이다. 고통의 이해가 없는 것은 그 지체와 내가 소통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결국 단절된 관계, 즉 그리스도의 몸을 하나되어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특히나 목회자나 영적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그러한 단절은 결국 공동체의 하나되지 못함을 넘어 갈등과 분열의 징후로 이어질 것이다. 당장 그 분열이 느껴지지 안더라도 말이다.

고통을 이해하는 이들은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전이시킬줄 안다. 그러한 민감함은 주님의 못자국이나 창에 찔리셨던 옆구리같은 고통을 느꼈던 기억과 유사 상흔으로 내 안에 존재해 내안의 경보시스템이 될 것이다.

날이 궂으면 옆구리가 쑤시듯 지체의 아픔을 들을 때 우리도 우리가 가진 상흔에 고통이 전달 될때 진정 우리도 주의 마음으로 성도의 고통을 아파해 하고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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