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문양호평신도 때부터 제자훈련과 평신도 신학, 기독교 세계관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와 책이라면 모든지 모으는 편이었고 독서 취향도 잡식성이라 기독교 서적만이 아니라 소설, 사회, 정치, 미술, 영화, 대중문화(이전에 SBS드라마 [모래시계] 감상문으로 대상을 받기도 했죠) 만화까지 책이라면 읽는 편이다.
    지금도 어떤 부분에 관심이 생기면 그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씩 읽는 중독성을 가진 총신대학원을 졸업한 목사.

<갑작스런 질문>

문양호 | 2013.06.11 18:53
<갑작스런 질문>

얼마전 한분이 전화로 상담을 요청했다.
그분은 전화하자 마자 "목사님은 교회에서 낮은 자세로 열심을 다해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을 많이 섬겨주셨는데 힘들지 않으셨나요? 스트레스받을때는 어떻게 하셨나요?"라고 돌직구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면서 그 분은 내게 그렇게 할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의 성품때문인지 아니면 부목사라는 위치가 그렇게 할수 있게 한 것인지 물으셨다.
당황스러웠다. 워낙 착하시고 성품이 순수하신 분의 질문이긴 했지만 그래도 내 얼굴이 붉어질 질문이었다.
그 질문은 내게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한참의 전화통화하는 동안 또 전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그 드는 생각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먼저는 나를 그렇게 보아주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사실여부를 떠나(?) 누군가에게 그렇게 ...
여겨졌고 비쳐졌다는 사실은 감사한 것일게다. 보여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어떤 판단을 받느냐도 자기자신을 점검하는 한가지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생각은 그 질문처럼 난 그성도분의 질문처럼 그렇게 '낮은 자세'로 '열심을 다해' 섬겨왔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비쳐졌고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떠나 내 자신에 대한 진실성이고 성실성의 문제다.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암이 하는 말에 속아 내 진실성과 열심이 과대 포장되고나 왜곡될 때가 있다. 목회자 앞에서 대놓고 '목사님 이것은 목사님이 잘못했다'고 ' 말하는 성도는 드물다. 아마도 직접 그렇게 이야기를 듣는다면 두가지 중에 하나 아닐까? 정말 진솔한 성도를 만났거나 그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간의 갈등이 갈데까지 다간 교회일 것이다. 목회자 앞에서 상당수 성도는 칭찬과 격려를 말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다보면 목회자는 자신이 사역을 잘하고 성도들이 자신의 설교에 은혜받고 있다고 착각할수 있다. 자신의 실체와는 상관없이...
또 설혹 실제로 성도가 그렇게 생각하고 내 모습이 그렇게 비쳐졌다 할지라도 내자신은 내 모습이 실제로 어떠한지 질문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 지난 사역을 돌아볼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돌아보면 나름 내 최선을 다한다고 달려왔지만 허점많고 부족한 점 투성이고 실수도 많았다. 성도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도 많이 드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그 분의 나에 대한 평가와 질문은 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세번째 힘들었느냐 하는 내자신에 대한 질문이었다. 두번째 질문에서처럼 이미 하자많은 사역이었지만 그럼에도 내 나름의 최선은 분 명있었기에 그분의 질문은 내게는 의미가 있다. 힘들었느냐 하는 것은 여러가지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먼저 육체적으로는 분명 힘들었다. 인간적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함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그것을 감당할 체력을 주시곤 했다. 어떤 때 주변의 다른 사역자들보다는 내가 특별히 건강하지는 않을진 모르지만 덜 아팠고 잘 견뎌냈다. 그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일종의 달란트같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인간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스케쥴도 감당해내곤 했던 것 같다. 무리한 일정으로 아프기도 했지만 분명 아프다가도 쉽게 회복되곤 했다.
심적인 측면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성도들로 인해 마음이 감당할수 없는 힘듦은 없었다. 이것은 그분들이 겪는 고통을 느끼는 것이 적었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로인한 영적 침체는 적었다는 것이다. 심방이나 상담은 영적 심리적 영향이 크기에 목회자가 받을 충격과 영향도 상당하다. 그런 점에서 그래도 잘 견뎠던 것 같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물론 성도들의 문제를 상담하고 같이 하면서 시간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더이상 도울 수 없는 어려움으로 인한 고통은 컸다. 내가 갖는 한계성이 있기에 성도들이 같는 섭섭함과 불만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그것은 어차피 목회자로서 부교역자로서 내가 감당해야될 부담이었을 것이다.

네번째로 드는 생각은 내성품으로 또 내가 목회자이기에 감당할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질문은 다시 두가지로 나뉠수 있을 것이다. 먼저는 성품문제다. 그것은 분명 아니다. 내 성품은 섬김의 열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못하는 성품이다. 하지만 내 나름 최선을의 다하려 노력했고 힘썼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번째는 목회자이게 감당할수 있었느냐는 것에는 yes 이기도 하고 no이기도 하다.
왜 yes이냐면 목회자로 부름받은 사역자로서의 내역할과 위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 힘썼기 때문이다.
또 왜 no이냐면 나는 목회자나 평신도나 모두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대학부, 청년부시절 리더나 엘더로 활동할때 감히 나도 전임 사역자 다란 마음으로 성경공부 인도와 양육, 상담을 해왔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사역이 항상 최선을 다했고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시간과 마음을 다해 나름의 최선을 다한 것은 사실이었고 목회자가 되서도 그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 질문과 평가는 내게 부끄럽다. 아마도 평생 그럴 것이다. 나는 자주 넘어지고 실패할 것이고 상처도 줄 것이다. 하지만 주님 안에서 내가 항수 있는 최선을 다하도록 내 자신을 계속 점검해야 할 것이다. 그분의 말씀은 내게 도전하라는 분발의 명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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