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문양호평신도 때부터 제자훈련과 평신도 신학, 기독교 세계관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와 책이라면 모든지 모으는 편이었고 독서 취향도 잡식성이라 기독교 서적만이 아니라 소설, 사회, 정치, 미술, 영화, 대중문화(이전에 SBS드라마 [모래시계] 감상문으로 대상을 받기도 했죠) 만화까지 책이라면 읽는 편이다.
    지금도 어떤 부분에 관심이 생기면 그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씩 읽는 중독성을 가진 총신대학원을 졸업한 목사.

책에 갇힌 사람들

문양호 | 2017.09.13 21:17

  

알폰소 슈바이거르트가 쓴 책이 되어버린 남자란 이미 절판 된 책이 있다. - 이 책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 도서출판 이란 곳에서 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었다. 원제도 Das Buch’이다. 심지어 주인공 이름도 비블리다. -카프카의 변신을 책 버전으로 오마주한 듯 보이기도 한 느낌도 드는 책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비블리가 중고서점에서 어느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에 결국 그 책을 훔치고 그 스스로 책이 되어가는 과정과 책이 되어 책으로서 겪는 이야기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자칭 책벌레라고 하는 필자로서는 이 책에 대한 강렬함을 잊을 수 가 없었다. 책으로 변모하면서 비블리의 생각과 지식이 각 페이지 별로 분화 되어지고 구절화 되며 문장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압권이다. 또 책이 되어버린 비블리자신을 어느 독자가 읽을 때의 묘사도 리얼하게 그려낸다.

책을 자신이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책으로 흡수되어진 남자의 이야기. 책에 대한 욕망으로 책에 갇혀버린 남자.

이 소설은 판타지에 지나지 않고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가끔 주변을 돌아보면 마치 책이 되어버려 그안에 갇혀 머물러 있는 듯한 이들을 보곤 한다. 이들은 책을 좋아하고 책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다. 다양한 책들을 폭넓게 많이 읽고 그 책 내용들을 정확히 기억하며 분석과 비평도 하는 이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주눅이 든다. 나같이 읽어도 돌아서면 잊어 버리고 머릿속에 겨우 남아있는 내용도 엉키어 뒤죽박죽 되곤 하는 수준이기에 그러한 분들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한다.

하지만 거기에 멈추는 이들이 있다. 많은 책을 읽고 인용도 하며 세련된 논리도 펴지만 정작 이론 뿐이고 그 책들이 그들의 삶과는 무관한 이들을 본다. 물론 그들은 그 책을 바탕으로 옳은 이야기와 방향성도 말하여서 존경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돌아보면 그들의 인격은 그가 읽은 것과는 상관없고 그들이 말하는 것에 따르지도 않음을 보곤 한다.

우리는 이런 모습의 실제를 우리 사회에서도 본다. 교수출신의 장관후보가 인사청문회에서 존경스러웠던 겉모습과는 다른 불법과 부정의 골방과 그림자를 보이고, 지난 부패한 정권의 어두움 속에서 더 치졸하고 부끄러운 행동을 했었던 것도 지금 우리는 보곤 한다. 이들만이 아니라 대학이나 교육기관, 문화계에서도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최근 많이 보았었다.

이러한 모습은 정치가나 관료, 학계만이 아니라 일부 목회자도 그리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설교로서는 교회개혁을 이야기하고 제자도를 설파하지만 그들의 교회는 고루함에 머물고 그들의 생활은 제자가 아닌 제사장과 사두개인의 삶을 지향하는 듯 하다.

그들은 학문적으로나 지식적으로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정작 그 지식속에 갇혀 있는 이들이라 할수 있지 않을까? 갇힌 지식은 무의미하다. 교리적이라 할수 있는 바울 서신의 대부분도 전반이 교리라면 그 후반은 그 교리를 어떻게 삶에, 교회에 적용할지를 보여주곤 했다. 또 그 교리조차 성도와 공동체의 거울로서 작용하여 변화시키는 제자도로서 작용한다.

나 또한 책을 좋아했고 어릴 적엔 별명이 책벌레라 자처하기도 했지만 책이 책으로서만 존재하고 그것이 내 머리 뿐만 아니라 내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의미하리라. 책뿐이랴. 무엇보다 성경은 더더욱 그러하다. 매일 묵상하고 읽고 공부해도 그 공부한 것에 그쳐 버리면 그 말씀은 내게 교조화 되어버린다. 또 살아있는 말씀은 말라버려 죽은 말씀이 되어 우리를 가두어 버리거나 역으로 우리가 그 말씀을 도구화 시키는 사악함도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인지 요새 책을 읽기가 힘들다. 그러한 책읽기의 위험성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또 그 책에 대한 리뷰나 서평을 쓰는 것이 점점 힘이 든다. 읽긴 하지만 그 읽는 것을 내가 진정 소화했고 그것을 논할 가치가 있는 가를 더 고민하게 된다.

책에 대한 중독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책읽기의 무거움이 점점 더 느껴지는 가을이다.

이 가을이 천고마비(天高馬肥)가 아니라 천고마비(天苦痲痹)가 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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