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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서중한총신대 신학과
    총신대학원(M.Div.)
    연세대연합신학대학원(Th.M.)
    총신대학원 박사 과정 마침(Ph.D.Cand.)
    다빈교회 담임목사

절망에서 솟아난 희망

서중한 | 2005.04.17 15:38
나는 요즘 교회의 어려움 속에서 사람이 사람에 대해 가지는 감정의 매서움이 어디까지인가를 보는 듯합니다. 신앙의 오용과 뒤틀림 속에서 20년이 다되도록 배웠던 신학도 어려서부터 익혔던 신앙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도 경험하구요. 부목사의 그 허약한 현실적 기반을 절감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사람 속에 내재하는 전혀 다른 양 극점을 보면서 절망에 휩싸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롬7,24)고 하는 바울의 탄식이 아니더라도 나는 인간 안에 그 상극(相剋)의 점들이 얼마나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가를 보고 있습니다. 내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모습입니다. 나는 신학 공부를 하면서도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이 영성신학과 신비신학이었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 전혀 비 영성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것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내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 행위들은 내게 좌절을 주지요. 좌절은 분노를 낳습니다. 그 절망스런 분노는 그냥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전달하는 의식을 치러야 그  꼬리를 감춥니다. 그 후 곤혹스러운 절망감으로 며칠을 견뎌내야 겨우 눈비비고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참 비참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내 속에 있는 상극이 행동으로 표출되었을 때 겪는 좌절은 내게 곧 사람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난 절망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절망이 꼭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나 자신에 대해 절망한다는 것, 정말 신중하게 절망한다는 것은 희망을 바라보기 위해 꼭 필요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절망의 깊은 골짜기를 걸어보지 못하면 그 골짜기에 쏟아지는 햇살이 얼마나 눈부신가를 알리 없습니다. 절망의 한 가운데 서 있을 때 비로소 십자가가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절망은 고통이기도 하지만 희망이기도 하지요. 나의 절망을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고 싶습니다. 행여 어둡고 무겁다는 소리를 들어도 나는 그 침침한 절망의 골방에서 언제나 다시 내 삶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 절망의 골방에서 시작되지 않은 희망은 거짓입니다. 내 마음속에 잉크처럼 번져오는 죄의 파괴성 앞에 절망하지 않고 나는 어떤 희망의 노래도 부를 수 없습니다. 나는 성실하게 절망하여 허락되는 희망을 보고 싶습니다.

며칠 전 올해 학교에 입학한 큰 녀석을 위해 내 공부방 한 구석을 비워낸 일이 있습니다. 책상 앞에 꽂힌 내 책을 다 내리고 책상 위를 몇 번의 걸레질로 닦아 냈습니다. 네 개의 책상 서랍 중 두 개를 그 녀석을 위해 깨끗이 비웠습니다. 비록 내 자식이지만 나 아닌 누구를 위해 내 한 부분을 비워내는 것은 참 오랜 만의 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부교역자의 생활 속에 한살, 두 살 나이를 먹고 마흔이 넘어선 나를 정리하고, 닦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목회는 여전히 힘들고 어렵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삐꺽거리는 사역지와 많은 사람들과의 부대낌, 메케한 보일러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골목을 걷는 듯한 답답함입니다. 부딪치는 현실보다 더 큰 하늘이 마음에 담겨있어야 하루하루를 품고 살아갈 텐데, 작은 일에도 쉬 상하는 마음은 좁은 인간성일까, 신앙의 허약함일까 생각해봅니다.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 내 소중한 것을 비우는 일만이 나를 절망에서 건져낼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고백하며 살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지 않고 내가 희망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내 것을 비워내는 이 비움을 통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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