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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서중한총신대 신학과
    총신대학원(M.Div.)
    연세대연합신학대학원(Th.M.)
    총신대학원 박사 과정 마침(Ph.D.Cand.)
    다빈교회 담임목사

‘벙어리 개’의 슬픔

서중한 | 2018.06.18 18:10

 

윤동주는 또 다른 고향에서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어둠을 바라보며 짖지 못하는 자신을 지조 높은 개를 통해 질책합니다. 1941년 일본 유학을 위해 히라누마 도주(平沼東柱)’라고 창시개명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괴로웠을 겁니다. 윤동주의 시대뿐 아니라 7-80년대도 참 어둡고 엄혹한 세월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어둠을 따라 목 핏줄을 세우며 새벽을 노래했고, 사람다운 삶을 어머니만큼 그리워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전부는 아니지만 교회는 역사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서슬 퍼른 권력을 두려워하기도 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그 권력에 편승했습니다. 오랜 세월 이어온 교회의 부끄러운 맨 얼굴입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강산이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어둠이 조금도 없는 광명천지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세상은 참 많이 밝아졌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변한 게 없이 여전합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창피한 것이 천번 만번 덧칠해져 부끄러움을 타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합니다. “들의 모든 짐승들아 숲 가운데의 모든 짐승들아 와서 먹으라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56:9-12)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을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요,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개 취급하는 것, 그것도 당시 유력한 종교지도자들을 개중에도 벙어리 개로 여기는 것은 집을 지키는 옆집개보다 못하다는 통렬한 고발입니다. ‘벙어리 개들은 짖는 것은 잊은 채 잠꼬대하듯 헛소리를 주절대는 꿈꾸는 자들입니다. 탐욕으로 가득 찬 몰지각한 자들이어서 자기의 이익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보장되어 있는 내일에 취해 오늘을 사는 자들입니다. 형편이 이러하니 그런 벙어리 개들에게 어둠을 짖으라고 말해봤자 입만 아플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은 보수와 진보를 망라합니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총신대학과 한신대학의 사태가 이를 말해 줍니다. 두 대학의 학내 사태는 모두 총장의 비리와 전횡에 기인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이념과 성향이 사람의 신앙과 도덕성을 보증하지 못함은 분명합니다.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는 미국에서 재세례파인 메노나이트 교단을 대표하는 신학자입니다.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유명한 칼 바르트 밑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대표작 예수의 정치학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받은 감동이 컸고, 교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그는 평화주의자로 기독교 윤리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간, 수많은 학생과 여직원들을 성적으로 유린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그의 학문은 영화 미션의 마지막 장면처럼 총부리를 겨누는 침략자들을 향해 십자가를 두 손에 받쳐 든 평화의 행진이었습니다. 하지만 요더의 실제 삶은 우리가 알던 그의 학문과는 너무나 멀고 생경합니다. 또한 시카고 윌로크릭 교회(Willow Creek Community Church)의 빌 하이벨스(Bill Hybels) 목사가 14년 동안 여신도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도 한국교회에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교회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먼 미국 이야기뿐 아니라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대형교회들의 추문으로 한국교회는 어둡고 긴 암울한 시간 속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절망의 교회 현실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나 역시 지조 높은 개가 아니라는 것,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라는 사실입니다. 돌아보니 어둠을 짖어댈 만큼 지조(志操)있는 삶을 살지 못했고, 신앙의 결단을 삶으로 실천하는 어기찬 삶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가 된 것은 입이 없어서도, 그 무엇이 모가지를 비틀어서도 아닙니다. 단지 어둠을 걷어낼 만한 빛이 내 안에 없어서였습니다. 어둠이 어둠을 짖어대는 것은 똥 뭍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니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못할 짓입니다. 이스라엘 파수꾼들의 형국이 궁상맞은 저의 모습입니다.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를수록 자신의 이름이 부끄러워 이내 자신의 이름을 흙으로 덮어 버립니다. 저 역시 부끄러운 이름을 덮어야겠지요.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의 부끄러움이요,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안에 어둠을 걷어낼 만한 빛의 부재 때문입니다시인처럼 이름 묻힌 그곳에 풀이 돋아나기를 기다려야할지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제게 아직 흘릴 눈물이 많이 남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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