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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서중한총신대 신학과
    총신대학원(M.Div.)
    연세대연합신학대학원(Th.M.)
    총신대학원 박사 과정 마침(Ph.D.Cand.)
    다빈교회 담임목사

정주(定住)

서중한 | 2018.10.11 15:10

정주(定住)

 

베네딕트가 수도원 원장으로 있을 때 청빈, 순결, 순명이라는 세 가지 수도원 원칙 중에 한 가지를 더 덧붙였는데 바로 정주서원(定住誓願)이었습니다. 5-6세기 많은 구도자들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더 좋은 스승과 더 나은 수도원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모양입니다. 베네딕트 규칙 1장에는 네 종류의 수도사를 언급하는데 회수도자’(會修道者 anachorita), ‘독수도자’(修道者獨), ‘사라바이따’(sarabaita 몇 명씩 무리지어 제멋대로 사는 수도자들), ‘기로바꾸스’(girovagus 떠돌이 수도자)입니다. 베네딕트는 기로바꾸스사라바이따는 참된 수도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했고, 그들 중에서도 기로바꾸스가 더 좋지 않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정해진 규율을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무리를 지어 다니는 수도사들도 나쁘지만 윤택한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수도사를 더 나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6:7-10)고 하셨습니다. 사역을 위해 최소한 것을 지니고 한 곳에 머무르게 되면 더 좋은 거처를 찾느라 기웃거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마가뿐 아니라 마태와 누가도 동일하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먼저 허락하신 것은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권능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힘을 주셨지만 정작 제자들에게는 배낭, 전대, 돈을 지니지 말고, 두 벌 옷도 가지지 말고, 지팡이와 신발 한 켤레로 만족하라고 하십니다. 허락된 힘과 권능을 부와 재산을 축적하는데 사용하지 말고, 오직 세상을 치료하고 고치는데 사용하라고 하십니다. 어디서 머물던 그 곳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처소로 알고, 그곳을 떠날 때까지 정주(定住)해야 합니다. 정주는 단순히 몸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교제를 통해 내적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당시의 상황과 오늘의 사역의 현장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검소한 삶을 명령하신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그들이 가진 능력이 크고 놀라운 것일지라도 말입니다.

 

주께서 사역자들에게 맡기신 사람들은 단순히 목회의 대상이 아니라 주님이 피 흘려 사신 존귀한 영혼들입니다. 그들과 함께 한 곳에 진득하니 머물러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현존과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역자는 어떤 상황 속에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자신의 마음을 붙들어 매야 합니다. 기쁨과 아픔과 배반과 쓸쓸함과 고통을 가슴 속에 켜켜이 담으며 주님과 함께 긴 세월을 겪어내야 나무처럼 연륜(年輪)이 생기고 뿌리가 깊어집니다. 하나님의 속내를 깨닫는 듬쑥한 사람이 됩니다.

 

저는 얼마 뒤 담임목사 위임식을 갖습니다. 개척한 지 이제 일 년이 조금 넘은, 교인 스물 명 남짓한 교회입니다. 담임목사 위임식은 다름 아닌 정주서원(定住誓願)입니다. ‘정주서원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엇나간 걸음을 멈추고 내가 선 곳을 소명의 자리라 여기며 검박하게 몸과 영혼이 머무는 일입니다. 머무는 것은 떠나는 것보다 퍽 힘들고 고단합니다. 한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오랜 시간 머문 일이 있습니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교회에 어려움이 불어 닥쳐 고통의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을 떠나고 싶을 때마다 정주의 삶이 내 마음과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다 17년을 머물렀으니 원로 부목사라는 이죽거리는 말을 들을 만도 합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이 머물게 하셨고, 하나님이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사역자의 길임은 분명합니다. 저는 이제 새롭게 시작한 교회에서 남은 힘을 온전히 쏟고 싶습니다. 기술자가 연모를 탓하지 않듯 열악한 환경과 조건에 굴하지 않고 부단히 새 길을 찾아 마침내 모두가 걷는 통길이 되도록 걷고 또 걷겠습니다. 그렇게 이곳에 정주하겠습니다. 내게 주신 고운 영혼들, 아침마다 불러도 가슴에 차지 않는 스물이 넘는 이름들 소중히 여기며 정주하겠습니다. 살품에 가을 찬바람 스며들어도 이끗에 이끌리지 않고, 애옥살이 감사히 여기며, 주님 곁에 바싹 앉아 시선마주하고 성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겠습니다. 그러다 한 평생이 지나가도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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