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임재호서강대 영문학과
    총신대학원(M.Div.)
    미국 Liberty 신학교(Th.M.)
    총신대신학대학원(Th.D. Cand.)
    양곡제일교회 담임목사

모든 사람에게 기회의 문이 열려있습니다

임재호 | 2019.06.30 16:19

 많은 사람들은 기회가 아주 특별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은 아주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고, 내가 오늘 이렇게 사는 것은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항변합니다.

기회는 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운이 좋아서 기회가 찾아온다고 믿는 사람들은 정말 자신에게 기회가 와도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그 기회를 흘려 보내버리게 됩니다. 기회를 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회를 찾거나 만들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운이 좋아서 잘 살고, 운이 좋아서 그만한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운만 있으면 노력과 상관없이 하루아침에도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평생 뜬구름만 잡다가 일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 보통 기회가 세 번 정도 찾아온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말 속에는 한 번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고, 다른 기회가 올 적에 그것을 꼭 붙잡아야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운도 아니고, 인생에서 세 번만 찾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호흡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있는 법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 땅에서 태어나고(Birth) 죽습니다(Death). 탄생(Birth)의 첫글자 즉 이니셜(첫글자)B고 죽음(Death)의 이니셜이 D인데, BD사이에 C가 있습니다.  C가 바로 Chance이고 Choice입니다. (Birth-Chance/Choice-Death). 그러니까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동일한 기회가 있으니 그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삶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삶입니다. 지혜로운 삶은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붙잡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6절에 세월을 아끼라고 했는데, 이 구절의 원어를 직역하면 기회를 사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회를 붙잡아라는 말입니다. 기회를 붙잡는다는 것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며, 기회가 올 적에 그 기회를 선택하는 자가 곧 지혜로운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은 예수님이 여리고로 가는 길목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 한 시각장애인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불편한 몸을 갖고 있었고, 배우지도 못했으며, 아주 가난하여 근근이 구걸로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덜 하지만 그 당시에는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선택한 것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런 생활을 벗어나기란 상당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각장애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꿔지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기회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데, 그때 그 기회를 붙잡는 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무슨 일인지는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여느 날과는 다른 소리였습니다.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말은 할 수 있는 이 거지는 무슨 일이냐고 어떤 사람에게 물어 보았고, 그 사람은 이 시각장애자에게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 거지는 나사렛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다만 예수님께 대하여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님이 종교인들이 정죄하는 죄인들의 친구가 되실 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불치병도 고쳐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린 자도 고쳐 주셨으며, 어린아이의 도시락으로 수천 명을 먹이고도 남기는 기적을 베푸셨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나인성(나사렛 동남쪽 9킬로)이라는 곳에서는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들었습니다(7:15). 그는 비록 볼 수는 없지만 평소에 예수님을 만날 기회만 있으면 자신의 사정을 말해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한심한 구걸인생을 참으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비록 그는 앞을 볼 수 없어 길가에서 구걸하고 있었지만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꿈은 구걸하여 남의 도움을 받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떳떳하게 사는 삶이었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고, 기회의 문이 그에게 열렸습니다.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소리치는 것뿐이었습니다. 눈이 어두워 비록 예수님을 향해 뛰어갈 수는 없었지만 그는 말할  수 있었고, 소리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은 이 사람을 꾸짖어 더 이상 소리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소리쳐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다고 생각하십니까? 눈을 뜨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도 절실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은 채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는 구걸로 인생을 끝마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부끄러움과 비난도 감수하며,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치고 또 소리쳤던 것입니다. 귀머거리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이시라면, 자신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절실함은 믿음을 불러일으켰고, 그 믿음은 예수님을 부르고 또 부르게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시면서 그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소경이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을 찾을 적에 이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들이 어떤 경우에 처하든 이런 절박함과 믿음만 있다면 반드시 기회의 문이 열립니다.오늘날 우리들에게 이런 절실함과 간절함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태도는 믿음의 결핍으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간절함과 절실함이 없으면 우리에게 기회가 와도 그것을 기회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여리고의 소경과 같이 절실함과 간절함이 있다면 반드시 기회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브라질에서 오페라 아이다를 공연할 때의 일입니다. 공연 직전 지휘자와 단원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화가 난 지휘자는 지휘를 포기하고 공연장을 떠나 버렸습니다. 당황한 악단은 부지휘자를 무대에 올렸으나 관중들의 야유로 물러났습니다. 할 수 없이 첼리스트를 자휘자로 무대에 올렸습니다. 관중들은 반신반의하면서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그 첼리스트는 지신이 맡은 지휘를 훌륭하게 감당했습니다. 자휘가 끝나자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토스카니니는 시력이 너무 나빠 악보를 외우면서 연주를 한 사람입니다. 그가 시력으로 인하여 악보를 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안 악단은 그를 지휘자로 임명했던 것입니다. 연주자로서 자격이 안 되는 나쁜 시력이 도리어 그에게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는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기회는 절박함 속에서 바람처럼 나타납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스스로 질문해 보고 절박함과 간절함을 느끼고 기도하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는 공평하게 찾아옵니다. 기회의 문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어떤 경우에도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절박함으로 기도하며 찾으십시오. 기회는 절박감과 간절함을 느낄 때에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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