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안영혁서울대 철학과와 총신대학교(M.Div., Th.M., Ph.D.)에서 공부했다.
    현재 신림동의 작은교회, 예본교회를 목회하면서, 총신대학원 교수, 지역학교운영협의회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작은교회가 더 교회답다」가 있으며, 「청년 라이놀드 니이버」 등을 번역하였다.

목민심서 율기편 - 단정한 자유

안영혁 | 2003.06.29 01:16
유학이 원래 군자의 학을 목표하였거니와 다산에 와서 그 한 절절한 예를 보니 목민심서야 말로 군자의 글이다. 목민심서는 모두 12편으로 되어 있는데, 제1이 부임이요, 그 다음이 율기이고 제3은 봉공이고 제4는 애민이다. 그리고는 수령 산하 6전(이, 호, 예, 병, 형, 공전)이 차례로 이어지고 11이 진황(흉년구하기) 그리고 12가 해관이다. 필자고 보고 있는 책은 6전은 세세한 업무로 보고 나머지 6편을 2권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는데, 앞선 서평에서 가장 먼저 부임을 그리고 두 번째로 해관을 소개한 바 있다. 제1권에서는 그렇게 부임과 해관 그리고 율기편을 담고 있다. 차례는 다소 무시한 것이다. 율기를 소개하면 일단 솔출판사가 출판한 목민심서 1권을 다 소개하는 것이다. 서둘러 율기편을 소개하는 것은 이 또한 목회자가 반드시 유념할 바이기도 하거니와, 내 욕심은 서둘러 목민심서 소개를 끝내고 한스 큉의 [그리스도교]라는 대작을 소개하고자 함이다.

천박한 목회 지침에 세 끝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손끝 혀끝 그리고 입에 담지 못할 한 끝이 더 있다. 손끝이라 함은 손을 놀려 돈을 함부로 하면 낭패를 본다는 것이고, 혀끝이라 함은 말조심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끝은 음란에 관한 것이다. 목민심서는 목회자들이 이렇게 아주 가볍게 논하여도 빠뜨릴 수 없는 요소들을 중후하게 잘 다루고 있는 셈이다. 부임과 해관에서는 사치하지 않도록 권하여 돈을 쓰는 일에 조심하도록 가르친 것이거니와, 율기에서는 말하자면 혀끝과 다른 한 끝에 대하여 논하고 있는 셈이다.

혀끝에 대하여 다산은 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중심은 품위를 잃지 말라는 것이다. 너무 급해서도 안되지만 반드시 해야할 말이나 업무를 늦추거나 게을리 하는 것에 대하여도 경고하고 있다. 율기편의 맨 앞에 몸가짐을 다루었는데, 단정하고 게으르지 말 것을 주로 교훈한다. 그 단정함에 있어서 말은 매우 중요하다. 정선의 교훈을 예로 들어 이런 말을 인용하였다. "자신이 백성의 수령이 되면 몸은 화살의 표적이 되는 것이므로 한 마디 말이나 한 가지 행동도 삼가지 않을 수 없다". 송나라의 포증은 말과 웃음이 적으니 그가 한 번 웃을라치면 마치 황하가 맑아지는 것과 같이 사람들이 느꼈다 한다. 까닭없이 웃음이 헤프고 말이 많은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물론 목사는 좀 다르기는 한 것 같다. 사랑이 넘치고 어려운 사람을 상담할 일이 좀 많겠는가? 그러나 이런 상황에 이르러도 가볍게 행동해서는 안될 일이다. 성도들을 재미있게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설교를 한다는 것이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너무나 많은 말을 하게 되는 것이 오늘 목회자의 처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만큼 더 아껴야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많지 않은 말이여도 가장 적절한 말을 성도들을 위해 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훌륭한 목회자이겠는가? 함부로 성내지 말고 화평을 또한 지키라 하였으니 목회자가 자신의 험악한 마음을 함부로 드러내는 것은 결코 솔직함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함직하다.

꽤 많은 선비들이 풍류를 논하고 호탕하게 술마시는 것을 하나의 재미로 여겼거니와 다산은 그런 일을 별로 신용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서도 정선의 말로서 교훈하였다, "총명에는 한도가 있고 일의 기틀은 한이 없는데, 한 사람의 정신을 다하여 뭇사람의 농간을 막아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어 말하기를 술에다 시에다 바둑이나 두면 가려야 할 시비가 쌓이고 모든 일의 기틀이 번잡해질 것이니 특별히 술을 경게하였다. 전반적으로 다산은 아주 단정한 모습으로 정사를 처리하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단 아주 꽉 막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소동파의 예에서는 그가 짧은 시간에 중요한 많은 일들을 명석하게 처리하고는 저녁이 되면 좌중과 함께 술을 즐겼어도 실수함이 없었다 하여 그를 높이 평가하였다. 사람따라 차이가 있으나 하여간 단정할 뿐 아니라 분명한 판단력을 가질 것을 목민관에게 주문하였던 바, 이것은 그대로 목회자의 일이라 하겠다.

입에 담지 못할 한 끝. 이것은 여색을 말하는 것인데, 이를 논하는 다산의 필치가 자못 특별하다. 다른 경우에는 실패의 예를 그리 들지 않았지만, 여색과 관련하여는 실패의 예를 많이 담았다. 그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문제인 것을 다산을 간파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말을 하였다, "소박하고 순진하여 바깥 출입이 없던 선비가 처음 기생을 가까이 하면 홀딱 빠지고 말아 잠자리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한 것을 철석같이 믿으며...... 평생에 단정하던 선비가 하루 아침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니 어찌 애석한 일이 아닌가?" 구체적인 사례로 기록하여 두었다. 유봉서란 사람이 북평사가 되어 한 요사스런 기생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아버지의 화상을 걸어 놓고 밤낮으로 쳐다보며 울었으나, 그것도 무위여서 끝내 금하지를 못하고 마침내 임지에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도 정선의 말로 교훈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정욕이 일어날 때 그것을 채우고 나면 반드시 후회하고, 참고 넘기면 반드시 즐겁다. 분노도 마찬가지다" 여색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유혹인지 익히 짐작할 만하다. 그런 면에서 목민심서는 리얼리티가 매우 뛰어나다 하겠다. 그냥 고담준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참으로 잘 돌아보기 위해서 다짐하고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생물학자 가운데는 남자는 물론이지만 특히 여자가 털이 없는 것은 성적 매력을 높이기 위해 그렇게 진화한 것이라고까지 말하니(2003년 6월 11일 한겨레신문), 우리가 진화는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에게 성적 이끌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가히 짐작이 간다. 가리워진 가운데 이성의 문제로 고민하고 감추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목민심서에서 다시 교훈을 삼고 우리 자신을 바로 채찍질할 일이다.

우리 땅의 선인들이 노력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심정이 와서 닿는 것을 느낀다. 율기란 말하자면 기강을 세운다는 것인데, 목회자가 어찌 기강이 없겠는가? 그리고 기독교인 일반이 이런 일에 어찌 소홀하겠는가? 목민심서를 하나의 좋은 격언집이나 예화집으로 여겨 시시로 읽으면 목회와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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