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안영혁서울대 철학과와 총신대학교(M.Div., Th.M., Ph.D.)에서 공부했다.
    현재 신림동의 작은교회, 예본교회를 목회하면서, 총신대학원 교수, 지역학교운영협의회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작은교회가 더 교회답다」가 있으며, 「청년 라이놀드 니이버」 등을 번역하였다.

목민심서 해관편 - 청백리의 영성

안영혁 | 2003.06.29 01:15
내가 한 학기 정도 영성신학 강의를 하였다고 해서 아무 일에나 영성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다. 목민 심서의 해관편은 참으로 모든 목사들이 필독하여야 할 부분이다. 해관이란 즉 관직을 떠나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는데, 지방 수령의 해관시 처세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다산이 수도 없이 많은 사례들을 열거한다는 것이다. 타의 모범이 될만한 청백리가 이리도 많았나 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 사례 하나 하나가 정말 우리의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한 예를 들면 다산의 친구인 한익상이라는 사람은 수십년 벼슬 길에도 전혀 재산을 얻지 못하여 항상 곤궁하고 삶이 어려웠다 한다. 그러던 끝에 경성 판관에 오르게 되니 사람들이 이제는 부하게 되리라는 뜻으로 축하하였다. 그러나 부임하여 얻은 녹봉들의 많은 부분을 오히려 규휼에 사용하고, 사소한 잘못으로 그 직책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때에 그의 다스림을 받던 부의 사람들이 집집마다 한 필씩 베를 내어 그에게 전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사양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가서 사흘 동안 땔감이 없어 방이 싸늘하였어도 자신의 이런 행적을 끝내 후회한 바가 없었다고 한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들으면 코메디라 하지 않을까? 나는 여기에서 그런 영성을 느끼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부로서 사람들을 감싼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청렴함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공평을 행하였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수령직에 대한 소명이 있었다. 그 직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함부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청렴함을 통하여 부하든 가난하든 다 다스렸고, 그래서 부자라고 수령을 무시하거나 가난하다고 특별히 더 비굴해지는 일이 없었다. 단 이것은 그가 훌륭한 수령일 때만 그런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시장바닥과 꼭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청백리들은 자신이 다스리는 지방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굳은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가난이 자신을 괴롭힌다 할지라도 지방 수령이라는 일을 맡아서는 반드시 그 직책에 대하여 그런 자세로 감당해내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하늘이 낸 사람이다.

해관이란 관직을 그만둔다 함이 아닌가? 요즈음 한국 교회는 목사들의 정년 퇴임으로 꽤나 소란하였다. 법정에서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관점에서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나, 목민심서가 보이는 담백한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어찌 대형교회 목사들만의 일이겠는가? 목사라면 누구나 다산의 해관의 관점을 들추어서 그 깨끗함에 감동을 얻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제 한국 교회에서 깨끗한 부자 이야기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책들은 저자가 자진해서 수거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말도 있고,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해석도 많을 것이고, 그것이 실제로 생활에 도움도 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 없이도 우리는 차라리 담백하게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꾸 이런 궤변들을 만들다 보면 마침내 기독교는 그 원래의 단순한 빛을 잃고 방향을 모르고 헤매이게 될 것이다. 실로 걱정스럽다. 그런 복잡한 논변들은 그냥 평신도에게 맡기고 목사들은 그저 이 청백리의 이상이나마 충실히 따라보아야 할 일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 다산은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서 그것을 요구했다. 우리도 행복의 말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아니겠는가? 깨끗한 부자가 되기보다는 청백리로 사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서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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