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안영혁서울대 철학과와 총신대학교(M.Div., Th.M., Ph.D.)에서 공부했다.
    현재 신림동의 작은교회, 예본교회를 목회하면서, 총신대학원 교수, 지역학교운영협의회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작은교회가 더 교회답다」가 있으며, 「청년 라이놀드 니이버」 등을 번역하였다.

8.개혁가들의 영성

안영혁 | 2003.06.29 01:11
8.개혁가들의 영성

세계도 바뀌어야 했고, 믿음도 바뀌어야 했는데, 그것이 누구의 이름으로 불리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세계의 변화에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역할이 컸고, 믿음의 변화에는 개혁가들의 역할이 컸다. 종교개혁은 끝내 완결적이지는 못했다. 루터는 뮌쩌를 지원하지 않았고,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은 오직 루터파와 칼뱅파를 인정했을 뿐이다. 그 주변으로 밀려나고 만 많은 개혁가들은 오늘도 역사학도들의 연구의 대상이지만, 그래도 그 시대의 역사는 루터와 칼뱅의 이름으로 불렸다. 우리는 힐데브란트에게서 얻은 교훈을 여기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시대 가장 현실적인 개혁을 시도하였고, 그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결과를 얻어내었다. 주변의 수많은 개혁들보다도 그것만이 현실적으로는 가장 의미가 컸었다. 그래서 그것만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의 역사적 영향은 부인할 수가 없다. 어차피 다수는 그런 영향 안에 있기 때문이다. 소수로 남은 개혁들은 다시 더 많은 시대 가운데서 의미가 다시 곰씹어진 다음에 실제적인 개혁이 되거나, 아니면 개혁의 이상들로 역할하게 될 것이다. 루터와 칼뱅의 중요성은 그 시대의 종교개혁이 그들의 이름으로 불리웠고, 그의 시대와 그 후대에 마침내 정통 개혁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루터의 영성
루터는 한 시대를 바꾸어 놓은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가 비록 어쩔 수 없이 개혁의 선두주자가 되었다고는 하나 백 권에 이르는 그의 저서에서 보거니와 그는 시대에 대한 아픈 마음과 그것을 해결해 갈 나름대로의 구상들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시대는 루터같은 사람을 요청했고 루터는 그 시대 누구보다도 거기에 부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소위 루터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이라는 것을 필연적으로 하나의 잡담에 불과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루터의 개혁을 하나의 역사로 받아야 하며, 그럴 때 무엇보다 중요한 분석의 방향은 그의 영성이다. 또 그는 종교개혁가일 뿐 아니라 독일 지성들의 정신적 지주이다. 루터로 인하여 독일의 학문과 정신이 있다. 사실 독일로서는 개신교 교회의 탄생과 민족 정신의 탄생이 하나였다.

그런 루터는 당시의 여러 외적인 상황들에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끼쳤다. 오늘에 와서 보면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지만, 그는 그 시대 개혁의 선두주자로서 책임 있게 서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사람임에 분명하다. 결정적으로는 면죄부를 반대하여 1517년에 카톨릭 교회를 반대하는 95개조를 써붙였고, 끝내 로마로부터 파문을 당하기에 이르렀으나, 그는 결코 급진적이지는 않았다. 칼스타트와 뮌쩌가 대변하는 사회적이고 급진적인 개혁에는 반대하였으며, 신학적으로 쯔빙글리등이 보여주었던 현실주의적 신학에 비해 보다 보수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루터는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양상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어거스틴 수도회의 수사였으나 수도원 생활에서 자신의 영적 근심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루터는 끝내 수도회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데, 그 가장 기본적인 것은 수도회가 수덕적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도 카톨릭이 추구하고 있는 중요한 수도생활의 목적이다. 그러나 루터는 거기에 반대한다. 대체 인간이 무슨 덕을 닦을 수 있다는 것인가? 인간은 악하며, 이런 인간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대체 덕을 닦아서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루터는 여기에 대해서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런 까닭에 루터에게 있어서는 이 은혜라는 개념이 극히 중요하다. 기독교를 근본에까지 내려가서 정말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여 보았을 때 수덕이니 하는 개념은 사람을 현혹시키는 일에 불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 것을 통하여 죄 많은 사람의 영혼을 대충 누그러뜨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루터는 옳았고, 오늘의 개혁교회는 이런 루터의 은혜 개념을 매우 중요한 고백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루터의 이 은혜 개념이야말로 기독교의 근본을 돌아보는 개념이었다. 그리고 그 개념은 개신교 성립의 초석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개념은 바로 루터를 특징짓는 개념이었다. 실제적으로는 루터가 카톨릭 교회를 향하여 많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겠으나 그 근저에는 바로 이것이 있었다. 대체 은혜라는 가장 분명한 개념을 감추고 수덕을 일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고 물을 때, 여기에 대하여 목을 곧게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너무나 분명하게 기독교적인 신학이 탄생하였고, 또 그런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가 윌리엄 오캄을 극복했다는 것도 시대적 의미가 크다. 오캄은 말하자면 무너져가는 중세의 말미에 서서, 그 무너져감의 의미에 대해서 날카로운 입장을 제기하였다. 그는 말하자면 스콜라신학의 주지주의적 경향의 무기력함을 폭로하며 경험적 의지를 강조하였던 것인데, 즉 사람의 능력 안에 있는 자연적인 힘과 그것이 일으키는 의지에 의거하여 믿음과 은혜를 논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루터의 은혜 앞에서는 참으로 무기력하였다. 대체 인간에게 그런 무슨 은혜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은혜는 그렇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신자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루터는 바로 이 중요한 믿음을 처음부터 끝가지 밀어붙인 것이었고, 그것이야말로 루터의 진정한 의미였다.

루터는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예민하게 알고 느낀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할 때는 근본주의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지만, 사람에 대하여 말할 때는 매우 현실주의적이었다. 그는 “의인이자 동시에 죄인”인 인간의 현실을 분명하게 밝혀주었다. 신자가 의인인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죄인인 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이 세상에서 육을 가지고 마귀의 유혹을 받는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 또한 언제라도 범죄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바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마귀의 세력이 싸우는 하나의 전장과 같다고 하였다. 실로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루터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아주 실제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그려내 주었다. 루터는 죄가 하나님께 대적하여 자신을 인정하려는 인간의 성향 안에 존재하는 영구적인 실체로 보았다. 일원론이니 이원론이니 하는 형이상학적 규정을 떠나서 현상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은 문제제기였다.

인간은 의인이자 동시에 죄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으로 의인이고, 세상에서 몸을 가지고 마귀의 유혹을 받으며 그 영향 가운데서 결코 온전히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죄인이다. 여기에 무엇이 요청될까? 바로 믿음이다. 믿음은 우리를 우리의 힘으로 의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음은 참으로 우리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이여 오시옵소서 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우리는 참으로 철학적이 아니라 신학적이라 하는 것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사람은 죄있는 존재인데, 사람이 죄에서 해방되는 길은 어떤 철학적 규정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을 형성하는 어떤 철학적 요소를 충족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나아오시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은혜가 있는 것이고, 여기로 나아가는 사람의 태도는 믿음이다. 루터가 중세 스콜라철학을 아우르는 철학적 조예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 시대에 참으로 선지자적으로 깨달았고, 그것을 교회 앞에 강력하게 제기하였다. 이 아주 근본적이고도 예리한 문제제기는 너무나 기초적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루터처럼 그렇게 끈질기게 제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철학도 그 시대에는 소용이 없었다. 어떤 정치적 안배도 그 시대에 유효하지 않았다. 오직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고, 루터는 바로 그것을 깨달은 그 시대의 선지자였다.

루터가 은혜와 믿음에 있어서 절대로 타협이 없었다는 것, 그것을 제외하면 루터가 극단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한 흔적은 없다. 물론 말씀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지만, 성례의 중요성을 인정하였고, 7성사의 폐해를 통감했지만 고해 또한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여겼다. 성상에 대하여는 사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가졌으며, 대중적인 접근이라는 관점에서 찬송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였고 스스로 작곡까지도 하였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루터는 급진적 종교 사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참으로 구원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었고, 그 소박한 문제를 끝까지 견지했던 것이다. 어쩌면 루터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 개신교 영성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되어야하는 요소일 수도 있다. 대체 수덕적 경향으로 빠지기도 하는 카톨릭 영성을 넘어서 개신교가 다른 길을 갈 수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일 수 있겠는가? 거기에 대하여 루터는 아주 분명하고도 소박한 답을 준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것만 지킨다면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얼마든지 타협적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루터였다.

칼뱅
개혁교회의 지도자들은 근본적으로 도시적이었다. 이 말은 도시를 사랑했다기보다는 도시에서 사는 방법에 대한 통찰들을 얻었다는 뜻이다. 그들은 중세의 금욕과 정적이 도시 생활을 기독교적으로 이끄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믿었던 것이 분명하다. 칼뱅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드러난 대로 사태를 바라보는 능력과 용기가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인문학적으로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였고, 사회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는 사회에 처한 인간 실존을 그대로 기술하는 실존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는 자신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중세적 영성 개념을 그대로 가지고 있거나 한 가지 주제에 더욱 열중하는 경향을 가졌다.

우선 칼뱅은 자신을 철저한 성서신학자로 보았다. 물론 그는 체계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 체계를 아무 데서나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는 반대하였다. 이러한 체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오히려 침묵하시게 하거나 하나님의 결정을 유보시킬 우려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체계는 의미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오직 제한되고 실제적이며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했다. 그의 이런 태도는 말하자면 중세적 체계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성경이 철학과 다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성경을 통하여 성령은 전혀 가식없이 가르치셨기 때문에 방법론적인 계획에 정확하게 혹은 지속적으로 집착하지 않으셨다고 말하며,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섭리가 나타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칼뱅은 스스로를 성경학자로 매김하면서 그 성경이 드러내는 기독교는 역설적인 종교라 하였다. 말하자면 인간의 일반적 인식이 경멸하는 일들을 기독교는 오히려 수용하도록 명한다. 그리함에 있어서 성경은 수사학을 동원하고 있다. 수사학은 말하자면 성경이 말하는 역설적 진리들을 힘차게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그런 수사학에의 신뢰는 인문주의자들의 태도와 일맥 상통하였다고 하겠다. 오히려 인문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칼뱅은 자신의 신학을 전개할 도구를 얻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참 원천에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신뢰하였다. 그리하여 중세 철학에서 비롯하는 스토아 철학의 무정념의 상태(apatheia)같은 것에 대하여는 미친 철학이라고 공격할 정도였다. 말하자면 이것은 잘못된 체계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오히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모든 것을 사용하여야 하고, 예를 들어 예배 때에는 감각과 손과 말과 팔 모든 것을 사용하여 전인적으로 예배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야곱을 변호하면서 그가 외모에 마음이 끌려서 라헬을 아내로 선택한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런 경향들 가운데서 서방 영성의 금욕적 경향에 대하여는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또한 영성은 단지 정신에 의해서만 파악될 뿐 심령에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신속히 사라져 버리는 지식과는 다른 것인데, 이것은 두뇌의 것이라기보다는 마음의 것이요 성향에 속하는 것이어서 情意적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곧장 하나님의 가르침은 실천을 이룬다는 그의 주장과 이어진다. 실제를 드러내는 수사학, 거기에서 말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전인적 관계, 그런 관계 안에 있는 영성의 주의주의적 경향, 그리고 실천. 이것이 칼뱅 영성의 원천이라 할 수 있겠다.

소위 실천을 말하는 칼뱅의 영성에서 우리는 그에게서 인간의 공로를 읽어서는 아니된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전인적으로 드려야할 것을 인식하였지만, 그것이 인간의 공로가 된다고 보지는 않았다. 인간론은 그 나름대로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나야하는 것이었고, 공로주의는 오류일 뿐 아니라 오만이라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교회의 사회성에 주목하였다. 교회는 참으로 포괄적인 상호도움의 공동체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손을 뻗으시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것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사람을 돕고 그들의 영적인 진보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그렇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신앙의 통일성이 지배해야하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불쾌한 일은 각 사람이 자신이 따를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교회는 우리의 실천의 장인데, 그 실천에 장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적 관점에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같이 실현해 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칼뱅이 하나님의 초월성과 능력을 강조한 방법은 오캄주의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가졌던 “하나님 어머니”를 도출할 만한 여성관(사42:14)이라든지 섭리론 및 예정설들을 논할 때 우리는 이것을 체계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정의적 실천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관은 어떤 것이었나? 기본적으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인간관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체로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은 것에 대해 강조를 하는 편이지만, 그것은 수사학적이거나 겸손한 태도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기술이라는 평가도 있다. 어쨌든 원천적으로 인간의 타락한 상태에 대해서 매우 준엄하다. “인간의 정신은 하나님의 의로부터 크게 벗어났기 때문에 경건하지 못하고 왜곡되고 더럽고 부정하고 수치스러운 것만 생각하고 바라고 시행한다는 사실을 어떤 반대로도 흔들어 놓을 수 없는 진리로 여겨야 한다. 마음은 죄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서 역겨운 악취만을 토해 낸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편 죄에 대하여 그것이 인격의 보다 저급한 영역에서보다는 마음과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 이런 것은 말하자면 그가 말하는 전적 타락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고 하겠다. 죄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감정을 무디게 한다. 우상숭배자들이 열정적으로 우상을 섬기는 것에 비하면 죄로 인한 냉담함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런 면에서는 하나님의 징벌조차도 그런 냉담함을 떨쳐내는 하나님의 전략이라고 보았다. 기독교인의 고난에 대한 한 해석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대한 진정한 앎이란 결코 개념으로 끝나지 않고 지식은 반드시 행동과 연결된다고 보았다.

그가 인간의 타락등에 관한 인간관에 있어서는 인문주의자들과 대체로 일치하면서도, 성경을 가르침으로 사용함에 있어서 인문주의자들이 일반적인 명령과 금령만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반해서, 성경에 나타나는 많은 인물들에서 교훈을 얻으려고 하였던 것도 그의 정의주의적이고 행동주의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겠다. 그러나 소위 오캄주의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그는 성령의 내적 조명을 말한다. 성령의 내적 조명은 단지 성경을 이해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식에 이어 행동에까지 성령은 역사한다. 이 성령으로 인하여 믿음이 일어나며, 믿음으로부터 힘이 솟아나고, 힘으로부터 성취가 솟아나온다 하였다.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 신앙의 소유자였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그의 성취는 오캄주의를 넘어서 성령의 내적 조명으로 나아간 것이다. 칼뱅의 영성에 있어서 중요한 한 국면이다.

칼뱅은 이러니만큼 사회를 중시하였다. 사회에 유익한 삶이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을 삶이라고 하였고, 아주 현실주의적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과는 동떨어진 독신이나 철학적 삶을 아무리 존경한다고 해도,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라면 일상적인 삶을 잘 알고 인간 관계에서 행해야 할 일들을 잘 수행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에 훨씬 더 적합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마25:24주석).

그는 이 사회에서의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이 땅에서의 투쟁이라는 자리에로 이행해간다. 사회적 활동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의 자리에서 자아와 세상속 악의 세력과의 끊임없는 전쟁이 벌어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육신에 대항하고 다수의 인간들을 대적하고 궁극적으로 마귀를 대적하여 싸워야 한다고 하였다.

바로 그런 면에서는 역경도 오히려 유익이라고 보았다. 역경보다는 형통함이 더 위함한데, 이는 인간은 자신의 성공을 기뻐하고 자신의 행복에 도취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역경은 믿음을 시험하고 강화하고 인내와 겸손을 증진시키며 육적인 충동을 정화시키며 신자들로 하여금 눈을 들어 천국을 바라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말하자면 나태한 우리를 자극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하나의 순례와 같다. 결코 완전히 머물 수 없으며 떠날 때는 집까지 운반해야하는 장막의 삶이 이 땅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투쟁의 길이며 그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소명에만 전념하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이런 인생 역정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삶이 바로 영성의 삶이라 할 수 있는데, 영성생활이란 즉 인간 실존의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목표에 완전히 도달하는 경우는 없으나,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다. 이 성장의 과정 가운데서 연약했던 믿음은 진보할 것이며, 순결함이 증가하고, 부패함이 점차 제거될 것이다. 그리고 지식이 자라감에 따라 우리의 사랑도 진전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다 명확하게 보는 사람으로 변모하여 가는 것이다. 그래서 칼뱅에게서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는 영성 수련 일반의 목표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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