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김성욱개혁신학을 사랑하여 관련 서적과 교회사를 통해 신앙선배님들이 걸어갔던 발자취에 관심이 많고, 조국 교회에 참된 말씀으로 인한 부흥이 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삼송제일교회에 출석하며, 중고등부 부장을 맡아서 봉사하고 있다.

< 개혁신학 >

김성욱 | 2019.09.18 10:15

개혁신학은 엄밀히 말하자면 어떤 주의(ism)이나
사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따르는 학파도 아닙니다.
물론 그것을 더욱 체계화 시키고 삶에 적용함으로 경건의 능력을 보여준 선배들에 대한 애정은 당연할 것입니다.

개혁신학은 개혁해야 할 신학체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주어진 거룩한 성경 말씀을 통해 이미 개혁된(Reformed)신학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추구하는 가치가 곧 개혁신학이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교회내에 여러 신학이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 당연히 저마다 성경적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각론으로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무엇이 성경적인 것인가?라고 물어야 하고 답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개혁신학의 핵심은 뚜렷한 구원론에 있습니다.
이것이 칼뱅의 후예들이라고 말하는 수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그 기쁘신 뜻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성령을 통해 적용시키시고 견인하시는 구원.

종교개혁의 모토라 불리는 5솔라가 이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칼뱅주의 5대 강령도 구원론에 있어 개혁신학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 신학들은 오직OO가 아닌, 오직 + 알파가 많이 보입니다.
작금의 시대에선 일부 개혁신학을 따르는 분들도 이 귀한 가치를 져버리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오직 성경이 아닌 여러 방법론을 통해 복음을 각색하고 구원론을 희석시켜 죄인들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설교방식과 전도방식'이 유행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보며
개혁교회가 건강한지의 여부를 "참된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가?"와 더불어 "지금 그곳에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가?"를 살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교도들의 시대가 다른 시대를 압도하는 경건의 능력을 보여준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개혁하고 참된 복음을 선포 함으로 교회내에 알곡과 가라지가 뚜렷이 구분되고
죄를 통회하며 자복하고 회개하는 거듭남의 역사가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능하게 했던 것이 개혁신학에 입각한
교리적 복음설교였습니다.
참된 복음 선포를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영혼이
구원 받는 이 복된 원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진리의 복음이 선포될수록 거짓과 오류가 밀려나는 현상.
이것은 마치 진리의 삼투압 현상과도 같습니다.

생명의 풍성함이 전도로 이어지고 더욱 풍성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양심, 거듭난 도덕성을 가진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사회를 개혁하는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조엘비키 박사가 지적하듯
삶을 위한 교리 입니다(Doctrine for life).

그들도 처음엔 제도개혁 정치개혁을 통해 교회개혁을
이끌어 내려 했으나 실패하고 예배의 개혁을 통해
교회개혁을 이루고 사회개혁에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그렇게 중요하며 언제나
처음 위치에 자리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개혁신학은
이미 개혁된 신학입니다.

이것은 이미 완성된 가치체계임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해 주신 이미 완성된 성경으로 돌아간 신학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뚜렷한 구원론, 삼위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하나님의 영광등을 귀히 여기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복된 신학체계입니다.

우리 앞에 이 길을 걸어가신 훌륭한 신앙의 선배님들이 있습니다.

사도들 - 어거스틴 - 장 칼뱅 - 존 녹스 - 언약도들 - 청교도들 - 위그노들 - 대륙의 개혁파들 - 19세기 프린스톤 신학교 - 그레이샴 메이첸 - 코넬리우스 반틸에 이르기 까지
그들이 보여주었던 것이 개혁신학의 롤 모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성경을 통해 구체적으로 구현된 이 길을
누가 따르고 적용하겠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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