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김성욱개혁신학을 사랑하여 관련 서적과 교회사를 통해 신앙선배님들이 걸어갔던 발자취에 관심이 많고, 조국 교회에 참된 말씀으로 인한 부흥이 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삼송제일교회에 출석하며, 중고등부 부장을 맡아서 봉사하고 있다.

<기독교인과 정치>

김성욱 | 2019.08.27 07:18

우리에게 민감한 주제 정치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민감해 하는 주제들이 있는데, 민감하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음식점에서 자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자신의 메뉴를 주장하거나 다투지 않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무엇이 중요할까요? 신앙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단지 입술의 고백일지라도) 결혼, 학업, 취업 등이 목록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많은 이들을 대립하게 만들고 사상의 격전지로 이끄는 '정치' 또한 중요한 영역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민감한 주제이기에 친구나 이웃, 심지어 가족간에도 의견이 다를 경우 평화를 위해 관련 이야기를 삼가하고 조심합니다.

 

저는 정치때문에 가족이 등을 돌리고 부모와 자식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친구들과 반목하는 이야기들을 종종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생각과 철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바른 성경 해석을 통한 기독교 세계관과 그 렌즈를 통해 해석된 정치관이 아니라 대부분은 자신이 어릴때부터 영향 받은 가정환경, 지역적 영향, 학연, 그리고 누구에게 배우지 않고 자연적으로 스스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로 정치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밝히 말하고 있고, 신앙의 선배님들이 주장했던 성경의 가치는 "우리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정의 됩니다.

 

신앙과 삶의 유일한 기준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을 통해 나의 생각,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정치에 참여하는 태도 등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작은 부분부터 민감한 주제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정치 역시 성경의 세계관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정치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선택하고 그리고 다수가 선택한 리더쉽은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극단적인 비유입니다만 리더쉽이 공산주의를 지향한다면, 그래서 그것이 성공한다면, 자유민주주의를 원하는 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치 않는 체제 하에 살아 갈 수 밖에 없음을 역사를 통해 보게 됩니다.

 

문제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세계관으로 정치를 해석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원론에는 동의하겠지만, 실제적으로 어떻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하는 각론의 문제에서는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입니다.

 

언급한 것처럼 어떤 성경적인 교육을 통해서라기보다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철학을 접목시켜 성경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에 대한 대안으로 신앙고백서들, 그리고 신앙 선배님들의 유산(ex: 쉐퍼, 아브라함 카이퍼,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치는 여러 책 등)을 통해 공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재정립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욱 큰 틀에서 생각한다면 명백히 성경이 금하고 있는 낙태(살인), 간통죄(간음), 동성애등을 지지하거나 정책적으로 이것을 실행하려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자신이 좋아한다 할지라도 명백하게 반대의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성경과 반대를 주장한다면 성경에 순종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기독인들이 한 마음으로 이 혼탁한 세상을 구별되게 살아가길 원합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선하신 왕이신 하나님의 생각과 그분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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