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김성욱개혁신학을 사랑하여 관련 서적과 교회사를 통해 신앙선배님들이 걸어갔던 발자취에 관심이 많고, 조국 교회에 참된 말씀으로 인한 부흥이 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삼송제일교회에 출석하며, 중고등부 부장을 맡아서 봉사하고 있다.

진리전쟁

김성욱 | 2019.01.17 10:31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농익은 열매들이 풍성히 드러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전에 포스팅 했듯이 이제는 영화나 여러 매체에서 드러내놓고 신앙인들의 사상 체계를 위협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저도 느즈막히 방송대 교육학 공부를 하면서 더욱 깊이 느끼게 된 것은 공교육을 열심히 따라 갈수록

이 세속 사상의 체계에 더욱 깊이 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전 세기에 당연히 죄악시 되던 간통(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둔갑), 동성애(역시 사랑의 이름과 인간의 자유를 존중, 존엄성), 심지어 마약까지..

그리고 권위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마저 탈권위주의 라는 이름으로 무시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기독교 교회 안에도 이 사상은 이미 깊숙히 들어와서 또아리를 틀고 있음을 봅니다.

포용, 관용, 이해 , 타협, 연합, 공존...

 

이 모든것들이 사랑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상자 안에 담겨 선물인냥 전해지고 있고,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편협하고 사랑과 관용이 없는 몰염치한 부류로 몰아 가는것을 볼때 정신이 번쩍 들때가 많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사랑이란 오직 한 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없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고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오직 한길이라는 배타성과 영혼을

깊이 사랑하는것이 녹아져 있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만일 사랑만 있고 배타성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배타성만 있고 사랑이 없다고 주장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분의 근원을 점검 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오직 한길이라는 배타성이 걸림돌이 되니

진리를 내려놓고 그저 자신들이 말하는 '사랑'안에서 연합을 내세우는 W.C.C같은 단체들이 교회내에 버젓이 활동하는 슬픈 현실을 직면합니다.

 

교리(진리)를 포기하거나 양보하면,

이런 일들이 늘 존재할 것입니다.

 

교회사 가운데 진리를 등한시 했던 수 많은 배교자들과 목숨을 기꺼이 바쳐 사수했던 순교자들.

 

저는 신앙고백서를 포함한 신조들을 보며 진정 감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 수 많은 이들의 헌신과 순교의 핏방울들이 녹아져 내린 결코 사변적이지 않은 진리의 전장에서 싸워낸 치열한 삶의 결과물이자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만약 그것이 참 진리라면, 거짓을 대적하고 거짓을 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체득한 이들은 그것을 전하고 사수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전장에 참전 하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감상적이거나 낭만적이지 않고 피를 튀기는 치열한 싸움이 있을 것입니다.

 

아타나시우스에게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친구들이 설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이 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자네를 미워할걸세."

이에 아타나시우스는

"그렇다면 나는(진리를 사수하기 위해) 온 세상을 대적하겠네."라고 답했습니다.

 

설교의 황제 스펄젼 목사님도 그 유명한 '내리막길 논쟁'을 겪으며, 그의 아들이 고백하기를

"이일로 아버지는 많은것을 잃고 거의 죽음에 이르렀습니다."라고 했고,

침례교 교회 협회는

"그분 때문에 우리가 거의 괴멸할 뻔 했습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진리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것인지 보여주는 반증이라 생각합니다.

 

메이첸 박사도 자유주의라는 거짓의 파도에 맞서 자신의 대부분의 삶을 그 파도를 막는 방파제의 역할로 사용했습니다.

 

이들의 삶은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

때로 다수의 의견에 맞서 진리를 개진해 나가는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인지를 생각할 때,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저의 견해입니다.

 

신앙 선배님들이 경험했을 고독, 무력감, 중압감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진리는 거짓과 함께 거하지 못하고 그것을 배격하고 치는것이 자연 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없음이 아니라 참된 사랑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어렵고, 피 튀기는 치열함이 있고,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등을 지는 아픔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싸움을 회피하고 외면 한다면

이 세상은 마치 중세처럼 빛을 잃고 어둠에 뒤덮이게 될 것입니다.

 

위폐(위조지폐)가 아무리 정교해도 위폐일 뿐인 것이고, 진폐의 외형이 오염됐다 하더라도 그 본질을 잃지 않는 것처럼, 성도는 진리이시며 대장이신 주님을 아는 자로서 그분의 명령에 합당한 영적군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이며 이에서 지나는 자는 유사 그리스도인 입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후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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