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김성욱개혁신학을 사랑하여 관련 서적과 교회사를 통해 신앙선배님들이 걸어갔던 발자취에 관심이 많고, 조국 교회에 참된 말씀으로 인한 부흥이 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삼송제일교회에 출석하며, 중고등부 부장을 맡아서 봉사하고 있다.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김성욱 | 2020.01.29 11:59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3-4).

 

타락한 죄인들은 자신들이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들을 강렬히 추구한다. 죄인들은 나면서부터 철저히 타락해 있기에 내면에는 소망이 전무하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은혜가 있기 전에는 썩은 냄새가 나는 시체의 상태이다.

 

이 사실은 죄인들로 하여금 외부에서 들어오는 은혜의 통로인 복음설교(외적소명의 관문) 외엔 소망이 없음을 보여주는데, 슬프게도 톨스토이가 지적하듯 죄인들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도 당장 눈앞의 작은 유익(당장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상태에 있는 무지함과 비참함이 그 특징이다.

 

많은 이들이 바른 교훈을 듣기 싫어한다. 그것은 마치 의사가 생명을 살리는 외과적 조치를 하고 꾸준한 치료의 과정이 힘겹고 더딜지라도 결국은 그 목적이 생명을 얻기 위한 것과 같은데, 죄를 드러내고 죄인을 끝까지 회개에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을 참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떠나 버린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외과적 수술(생명에 이르는 회개)이 아니고 잠시 외적 증상만을 완화시켜주는 몰핀(피상적 위로)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사욕을 채워줄 스승을 찾고 그들에게 열광하며 종교적 치장과 열심으로 자신들의 의를 쌓고 있는지 모른다. 한때 '긍정의 힘'이란 책으로 종교분야뿐 아니라 일반분야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조엘 오스틴은 자신의 설교를 이렇게 평가했다.

 

"저는 설교시간에 성도들의 죄를 지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이 상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가 담임하는 교회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많은 이들이 실상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 굶주려 있다. 게걸스럽게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니거나 혹은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지만 내면으로는 끊임없이 거듭나지 않은 자신의 죄악된 욕망을 추구한다.

 

진리가 무엇인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고 다만 쉽고 편하게 부담이나 거리낌 없이 천국에 가는 길을 추구한다. 놀라울 정도로 이 세상의 사고와 방식에 부합하는 것을 신앙이란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이용한다.

 

성경은 이러한 자들의 결과를 명확히 보여준다(3:19).

 

성경은 듣는 것을 강조하고, 특별히 무엇을 들어야하는지를 더욱 강조한다(10:17).

이것은 우리 영혼의 생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듣고 있는 말씀이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고, 성령(진리의 영이시다)께서 역사하시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추구하게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죄악된 본성의 욕구를 더욱 추구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에 만족하게 하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후자의 경우는 일종의 종교활동이지 결코 신앙인이 될 수도 되고자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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