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김성욱개혁신학을 사랑하여 관련 서적과 교회사를 통해 신앙선배님들이 걸어갔던 발자취에 관심이 많고, 조국 교회에 참된 말씀으로 인한 부흥이 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삼송제일교회에 출석하며, 중고등부 부장을 맡아서 봉사하고 있다.

삶의 체계로서의 기독교 진리와 통일성

김성욱 | 2020.09.11 11:08
< 삶의 체계로서의 진리와 통일성 >

기독교 진리는 필연적으로 한 사람의 지식, 가치관,
세계관에 직접적이고도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고후10:5).

우리의 신앙 선배님들은 한 사람의 신앙을 평가할 때,
그 인생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있었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보았습니다(전환이 일어난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진리가 구체화 되어 실제적으로 그 영혼을 사로잡았는지를
살펴 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천로역정의 주인공인 크리스찬이 멸망의 도성이라는 마을에서 죄 가운데 살다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죄에서 구원받고,
옛 고향을 버리고 천성의 본향에 시선이 고정 되듯이,
죄악된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옛 가치들을 버리고 새 가치들(하나님께 속한)을 기쁨으로 찾게 된 전환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그는 참 신자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죠.

그러면 동일하게 한 성경과 성령을 통해 거듭난 신자들이 동일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악된 것들을 미워하게 되고,
하늘에 속한 가치들로 생각과, 말과, 행동이 변화되고,
이것은 그 신자들의 새로운 정체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것은 단지 신앙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삶의 전반에 강력히 영향을 미치고
모든 영역을 진리 앞에 굴복시키게 합니다.
체계적이고도 유기적인 기독교 진리의 영향력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여러 난제들이 발생합니다.
신자들이 분명 하나의 진리를 통해 얻어낸 생각과 가치관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들을 다루는데 있어 신자들 간에도 의견이 나뉘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의 기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측에서 그렇지 못한 형제들을 볼 때, 그 상실감이 더 큰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더 쉽게 판단을 하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다루는데 있어, 크게 두 의견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비록 똑같이 성경을 통해 신앙을 고백한다 해도
여러 양상이 나타날수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쪽은 비록
그것이 추구하기 어렵더라도 성도들은 성경을 통해 통일된 세계관 및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양측의 주장이 다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어디로든 치우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성경이 말씀하는 것에 일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성경에서 조차 서로 분파되어 다툼이 있던 것과 교회사에서 ,그리고 지금도 보여지는 것처럼 나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 맞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양측의 주장이 다 옳다고 보여지지만,
이렇게 여러 생각을 만드는 요인들(자신의 생각, 가치관, 시대사조, 과학, 문화, 실용주의, 개인주의, 집단주의, 이성주의,
철학주의 등등)을 생각하며,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하며, 그 끝은 영화의 상태에 들어가기 전까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우리들은 성경을 기준으로 성경이 제시하는 수준에 도달하도록 은혜를 구하며 부단히 깨어서 달려야 하고,
너무나 쉽게 빠지게 되는 자기 합리화, 실용주의, 관용주의를 항상(이것들은 계속적으로 맹렬하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배격하고 싸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실은 우리가 너무 쉽게 비진리에 틈을 허용하고, 무감각하고 무뎌져서 이런 복잡한 현실을 만드는 것에 책임이 있습니다.

진리는 타협을 모르고, 기준이 명확하면 흔들림이 없습니다.

다른 기준들에 앞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기준에 이르기를 부단히 힘쓴다면, 우리의 나머지 기준들이 재정립 되고, 시나브로 더욱 통일된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진 우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성경의 기준에 이르기를 힘쓰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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