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정현욱책이라면 정신을 못차리는 책벌레이며, 일상 속에 담긴 하나님의 신비를
    글로 표현하기 좋아하는 글쟁이다.
    <생명의 삶 플러스> 집필자이며, 서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리랑

정현욱 | 2017.12.07 16:00
거리는 공간을 차지한다. 공간은 거리가 있을 때 존재한다. 거리와 공간은 서로를 공유한다. 자는 거리를 재는 도구이다. 몇 마이크로미터부터 수만 킬로를 재는 자까지 다양하다. 사람들이 쓰는 자의 종류는 대개 몇 십 센티에서 몇 미터의 정도의 자일 것이다. 그보다 작거나 큰 자들은 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혹시 마음의 거리를 재는 자는 없을까? 나와 다른 사람들의 가시적이고 공간적인 거리가 아닌 마음의 거리를 재는 자가 있다면 불티나게 팔리지 않을까. 특히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알고 싶은 연인들은 그런 자가 있다면 사고 싶을 것이다.

 

 

-서편제, 아리랑 부르는 장면 

 

아리랑 노래를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이곳에 보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고 한다. 십리는 약 4km이며 걸어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십리는 단순한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가 있기 전 십리는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이며,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굳이 출타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이다. 일일 생활권 안에 있는 거리이며,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십리도 못간다는 말은 나를 절대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뜻하며, 십리를 벗어난다는 것은 가족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벗어나 다른 공동체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즉 존재감이 달라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나를 버리고 다른 연인에게로 간다는 것이다. 변심한 것이다. ‘백리는 남자가 하루 동안 종일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로 가면 그 날 돌아올 수 없는 거리다. ‘천리는 한 번 가면 돌아오기 힘든 곳을 말하며 머나먼 타향이며 유배지, 이민, 고독한 장소이다. 희생 불가능한 절대절망의 거리이다.

 

다음 시는 김소월의 왕십리이다. 감상해 봅시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 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던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돌아온다는 약속을 했던 님이 돌아 올 줄 모른다. 님을 찾아 나섰지만 비가 주룩 주룩 내린다. 가도 가도 왕십리는 반복법이다. 왕십리는 십리를 가라는 뜻으로 계속하여 갈 수 밖에 없는 연인의 애처로움을 담고 있다. 아리랑 가사 역시 자신을 두고 떠난 님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으로 노래하고 있다. 떠난 님에 대한 애달픈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보이는 거리가 우리에게는 존재한다. 사람마다 가까운 사람이 있고 멀리 있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공간적 거리와는 상관이 없다. 마음에만 존재하는 거리다. 하나님과 나의 거리는 얼마일까?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했다고 한다. 노아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들은 에드워드 홀이 말한 친밀거리안에 하나님을 두었고, 하나님도 그들을 친밀거리 안에 두고 늘 함께 했다. 그것이 동행이다.

 

시편 23편은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아리랑이다. 자신을 멀리 떠난 하나님을 찾아 고개를 넘고 산을 넘는다. 먼 타향에서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향해 아리랑을 노래한다. 십자가의 아리랑도 있다. 왜 나를 버리고 가시느냐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음의 거리다. 사랑의 거리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버려야 했던 아버지의 아리랑이자 아들의 아리랑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측량할 수 없는 거리의 무저갱까지 내 던져버린 아버지의 무자비?는 죄인들을 구원하여 자신의 품 안에 두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아리랑이다. 그것은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리랑이다.

 

하나님을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했던 백성 이스라엘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자 이렇게 슬픈 아리랑을 불렀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이사야1:1-4).

 

나를 버린 인간들아 돌아오라 돌아오라. 아버지의 아리랑은 끝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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