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영적 싸움
제가 8살쯤 일로 기억된다. 그토록 나를 사랑해주셨던 친할머니께서 84세까지 장수하시다가 별세하셨다. 신앙생활 잘 해오시던 중 한 일주일 정도 노환으로 앓다가 가셨는데,참 평안하게 잠자듯한 모습으로 주님 품에 안기셨다. 3일장 장례를 무사히 치루고 난 후에 문제가 발생했다. 무슨? 그 당시 우리 가족 대부분이 예수믿는데,유득 아버님은 완고하게 버티고 계셨다. 장례후 4일째 선친께서 영실[靈室](지청?)을 지으신단다. 우리는 할머니께서 예수믿고 천국가셨기 때문에 영실은 안된다하며 만류했지만, 완고하신 아버지한테 통하지않았다.
예수믿는 우리네는 초긴장하며,어머니 누나(7살연상) 그리고 작은 어머니 함께 끝방에 모여서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하는 예배와 기도회를 절박하게 가졌다. 말하자면 영적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기도와 찬송과 예배를 드리고, 그 시각에 아버님은 안방 툇마루 벽에 영실[靈室](지청?) 을 손수 짓고 계셨다. 잘 아시다시피 영실이란? 돌아가신 영혼을 섬기는 유교예식으로 기독교 신앙에서 용납될 수 없는 제2계명을 범하는 우상숭배다.
찬송을 힘차게 부른 후에 전주에 사시던 작은 어머니께서 간절하게 기도하신다. 당시 작은 어머니는 섬기시는 전성교회에서 매일 밤마다 주무시며 기도하시는 영성있는 분이셨다. 그런데 기도 중에 난리가 났다. 무슨? 어린 제가 봐도 이상할 정도로,그 어르신 몸이 어떤 초인적인 손길에 의해서 이리 들렸다 저리 꼬꾸라졌다 하시면서 “아이구 나죽네! 살려주세요 하나님! 잘못했습니다.”라고 절규하듯이 외치시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면서 그 상황을 재해석하자면, 어떻게 절대다수가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가정에서,그것도 초자 신앙도 아니고,믿음생활의 연륜있다 할 수 있는 기독신자 가정에서,우상단지를 만드는데 그것 하나를 못막고 방치하느냐에 따른 책벌로 하나님께서 가장 영적 어르신인 작은 어머님을 징치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인 듯 했다.
그러자 사태를 파악한 신실했던 누님(전주여상 다니던 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영실을 지어가시던 아버님께로 급히 가서, 그 벽에 거의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영실 막대기를, 한 손을 뻗어 낚어채 앞으로 확 당기니까, 희안하게도 일시에 영실이 다 무너져 내렸다. 여성치고는 놀라운 힘이었고, 하나님께서 역사한 것처럼 보여졌다. 문제는 그로인한 아버님께서 받은 상처이다. 세상에 딸자식이 아버지 권위를 도전한 것(불효행동)에 분노를 못참고 그 자리 마루바닥에 벌렁 드러 누우셨다.
우리 아버님은 동네에서 호인이라 인정받는 인격자이시며,외유내강형이시다. 집안에서 단 한 번도 큰 소리 내시는 것을 어려서부터 보지 못하고 자랐다. 그런 아버지께서 분노가 머리끝가지 치밀오르신 모양인데도, 그럼에도 자기 권위를 대항하는 딸에게, 어떻게 해보질 못하시고, 마루에 두러누워 버리신 것이다. 자 일은 크게 벌어졌다. 그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내가 지금 와서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그때 그 일은 복음화돼 가는 우리 가정에, 사탄이 아버지를 통해서 우리 가정믿음을 붕괴시키려 그의 전투 교두보를 세우느냐,믿는 우리 내가 막아내느냐 하는 치열한 영적싸움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 싸움에서 우리 믿음이 이겼다....
1.불신자 아버님의 변화
아버님이 그토록 분개하시며 얼굴이 벌개진채 미루에 누워버렸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아버님이 한참 동안을 그렇게 누우신채 분을 스스로 삭히시더니,다행스럽게도 한참만에 누우신 자리에서 일어나셨는데, 그때 잠깐 이나마 누우신 상태에서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시며 나름 정리하셨던 모양이다. 그뒤로 영실을 만드시는 일을 중단하셨다. 그 사건 이후로 말없이 보내시다가 주일날이 돌아왔는데. 글쎄 교회에 나가시겠다 하신 것이다. 할렐루야이다.
지금 이글을 쓰면서 돌이켜 생각헤 보면,그렇게 가족한테는 인자히시고 좋으셨던 분! 그러나 영적으로는 완고하게 불신자이셨던 아버지께,할머니 신앙 본받아 같이 교회 나가자고 그 영혼구원을 위해서 중보기도와 함께 전도 시도도 했지만,신앙만은 타협없이 완고하게 부인하시던 아버지께서,할머니 사후 자기방식으로 할머니께 효의 행위를 하시고자,영실을 지으시려 했는데,
기독교 신앙에 위배된다하여 딸이 와서 그 영실을 확 손으로 끌어내릴 때,인간적으로는 부모권위에 도전적인 자녀의 행동에 충격도 크게 받으셨겠지만, 동시에 그때까지 아버님 생각과 마음을 붙잡고 완고하고 강팍했던 불신영이 패하고 떠나간 것 같다. 그러지않고야 어떻게 아버님 스스로 교회 나가시겠다 하실 수 있느냐 말이다. 도저히 불가능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 주일이면,꼭 교회에 나가셨다. 그리 수년간 교회 다니시다가 위암이 발병돼 72년 11월 12일에 향년 72세로 소천하셨다....
2.행동하는 영적싸움
그때 그날 우리가 예배만 드리고 찬송만 하고 기도만 하는 것으로 끝냈다면,아버지는 여지없이 끝까지 영실을 고집하시고 완성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영실이 만들어졌다면, 그로인해 우리 믿음의 집안에는 치명적인 영적 도전과 손실을 초래했을 것이다. 그리되면 영적싸움에 진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기도 많이 하시던 전주 작은 어머니 영성을 통해서,육신적으로는 집안의 최고 어르신 아버지시만,영적으로는 사탄적인 일을 하고 계신 아버지의 행동을,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셨으며,육신적인 아버지 권위에 밀려 그것을 못막아내는 하나님의 지녀들의 신앙태도를 못마땅해 하시고 싫어하심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기 위해서, 기도시간에 작은 어머니를 육신을 이리 저리로 들었다 놨다 하시는 현상같이 책벌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그나마 우리 집에서 영적리더 역활하던 누님이 성령으로 자극받아 “아 이것은 아버지를 통한 악한 영과 영적싸움이구나! 아무리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일이니 막아내야 하겠다”고 깨닫고,성령으로 담대한 용기를 얻어,아버지한테 건너가서, 영실을 손으로 잡아 내려 우상숭배길을 차단해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때 그날 우리가 하나님께 가족이 모여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드리며 영실 못짓게 부르짖는데,왜 전능하신 분께서 아버지 마음을 감동하사 스스로 영실을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구지 작은 어머니를 매 때리시며, 그로인해 누나를 통해서 영실 짓는 일을 중단시키도록 용기있는 믿음행동을 요구하셨을까?!..여기서 우리는 기도하되 그 기도가 응답되게하는 행동하는 믿음을 배워야 한다.
그때 보이지않는 치열한 영적 싸움이 진행중이었다. 사탄이 우리집 믿는 가정에 불신자 아버지권위를 통해서 영실을 만들어 사탄활동 교두보를 만들어놓고, 우리가정 신앙체계를 붕괴하려는 역사이었고,그런 사탄의 전략을 미리 내다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영실이 만들어진 다음에 제거는 더 어려울테니, 지금 막을 수 있을 때, 다급할 때 기도만 하고 예배찬송만 부르고 있지말고, 현장에 가서 용기있게 막아내는 믿음행동으로 영적싸움을 실제적으로 하라! ..그것은 아버지께 반항하는 효와 불효 문제가 아니라,그 이상 의미,하나님을 향한 영적 싸움이어서, 불신아버지를 통해서 믿음의 가정을 파과하려하는 사탄의 진지 영실을 만들지 못하게끔 그의 영적 자녀들인 가정식구들을 통해서,막아서는 담대한 믿음의 행동을 요구허셨던 것이다.
아버지 권위에 눌려 영실을 막아내는 일에 소극적으로 기도만하고 있었다면,못막아냈고, 그것은 영적 싸움에서 지는 모습이었을텐데, 하나님께서는 작은 어머니를 통해 징벌하시는 모습 통해서, 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죄임을 뻔히 알만한 믿음을 가진 너희들이 막지못하고 마뭇거리느냐 하시는 하나님의 책망적 뜻을 파악해 깨달은 누님이 부모와 자녀관계라는 도의적 윤리관계를 뛰어넘어 영적 절대자 하나님께 더 순복하여 아버지의 영실작업을 막아내었고, 그럼으로써 사탄의 역사를 제지시킨,치열한 영적 싸움에서 거둔 값진 승리였다.
①평화시 영적싸움
평화시란? 우리 가정에 있어 아버지께서 기독교 신앙을 반대하거나 그런 우상숭배 행동을 노골적으로 하지않던 때이다. 아버지는 불신자라도 가족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해 주셨다. 그렇다고 영적싸움이 없나? 아니다. 영적싸움은 그때도 계속 진행돼 왔다. 우리 먼저 믿는 가족들은 아버지 영혼구원을 위해서 계속해 기도해왔다. 그게 영적싸움이다. 그것은 평화시 영적싸움이라고 난 정의하고 싶다.
나라와 교회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신령기관이다. 그리고 나라는 세속기관이다. 교회는 평상시에도 항상 영적싸움을 피할 수 없다. 우리 가정에서, 아버지 외에는 가족구성원 불신세력이 다 꺽여지고 복음화돼 가듯이, 국내에서도 교회가 하나님나라 확장위해 말씀과 기도로 영적싸움한 결과 1200만 성도수를 채우기까지 교회부흥성장 해갔다. 그 모든 과정이 영적 싸움이다. 나라 지도자도 불신자나 설사 타종교신앙을 가진자라 할지라도, 헌법정신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가지고 불신자 우리 아버지께서,가정을 평화롭게 이끌어 나가시며,가장의 의무와 제 역할을 해주듯이, 국가 지도자들이 하나님 두려워할 줄 알고 정의로운 국정을 펼쳐나가면 괜찮다(일반은총).교회는 그런 지도자와 국정을 위해서 협력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줘야 한다. 이것을 평화시 영적싸움이라고 본다.
②비상시 영적 싸움
분명히 아버지는 불신자 가장이라도 가족이 교회다니는 것을 막지않으셨다.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주신 것이다.--그런 우리 아버지는 평화시 지유민주주의 체제 지도자다고 비유해 볼수 있다.. 불신자 정치 지도자라도 헌법에 입각해서 바르게 자유민주주의 바른정치 하며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주며 정의롭게 국가위해 봉사하면, 우리 교회는 그런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고 따라주고 협력해줘야 한다. 성경도 그들의 권세를 인정하라 하셨기 때문이다. 즉 불신자 아버지께서 우리가족이 그에게 세워진 권세에 따라 가정을 치리하면 협력하고 복종해야 함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문제는 앞에서처럼, 가족(교회)신앙을 파과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노골적으로 대적하고 나설 때이다. 그때는 다르다. 비상시국의 영적 싸움이 된다.
정치지도자들이 헌법사상을 바꿔, 국가와 사회를 반헌법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움흉하게 계획하고, 교회도 지도자를 구속시키며, 지능적으로 탄압하려 하고, 교회폐쇄까지 노린다 하면, 그때는 다르다. 비상시국이다. 그럴 때는 교회가 기도하되,잘 분별하며, 그들의 잘못된 정책적 시도를 막아내야 하는 적극적인 행동하는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실제적인 영적싸움을 해야 한다. 교계와 교권에서는 그런 문제 해결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되, 초교파 초교단적으로 연대의식을 가지고,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과 방안을 강구해 교회 앞에 방향 제시해줘야 하며 실제 영적 싸움을 하도록 독력해야 하며 반드시 이겨내는 영적싸움하기를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향해 기대하신다.
그렇지않고 오늘날 한국사회와 교계가 함께 당하는 위기상황속에서, 사탄이 그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강력하게 사용하는 무기인 정치를 사용해서,그가 좋아하는 지도자를 세워 반성경적이고 반헌법적인 권력을 시도하고 휘두를 때, 교회가 그 권세 앞에 쥐늑들어 못막아낸다면,그런 자세는 하나님께 서 기뻐하지않으시며, 하나님뜻도 아니며. 이후 북한처럼 교회와 사회는 더 큰 혼란과 위험한 세상을 겪을수도 있음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막을 수 있는 기회있을 때, 힘들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큰 영적싸움에 함께 나서야한다. 한국교회만 하나돼도 국가와 교회가 처함 위기를 이겨내는 영적싸움을 할수 있다고 확신한다.
가정의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서 우리 누님이 했던,용기있는 신앙행동처럼, 교회와 국가위기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 하나님 편에 서서,자주독립을 위해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앞장섰던 불렀던 유관순 누나처럼, 실제 교회와 구국을 위해 영적싸움을 해줄 수 있는 정치지도자들이 나오고 교계지도자들이 앞장서, 그들을 중심으로 똘돌뭉쳐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잘 싸워내서,사회구원,교회구원,남북평화통일 축복의 나라로 일궈내는 승리의 영적싸움을 싸워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땅끝까지 떡과 복음을 나눠주는 제사장나라로 사명감당하는 그릇이 돼 줄 수 있기를 앙망하며 각성해 함께 기도하자. 그래서 내거 지금 과거 우리 집안에서 발어진 영적 싸움 이야기를 회상하며 기뻐하듯이, 훗날 작금 한국사회외 교계의 상태를 뒤돌아보며 그 때 위기 때 이기는 영적 싸움을 잘 해내 지자손손 복받는 믿음과 나라를 세웠다고 회상하며 감사영광 하나님께 돌리는 그날이 속히 오도록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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