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신앙을 이득으로 바꾸려 한 발람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입성을 가로막던 여러 이방 나라들을 차례로 물리치며 승승장구했고, 마침내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 이르렀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메소포타미아의 유명한 점술가 발람을 매수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보고 깊이 감동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결심과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도구로 삼아 ‘마술’을 행하려는 욕망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교적 주술과 하나님을 향한 참된 섬김은 결코 함께 갈 수 없다.
처음에 하나님은 발람에게 발락의 요청을 거절하라고 명하셨다. 하지만 발락이 더 큰 뇌물로 발람을 유혹하여 그의 마음이 흔들리자, 하나님은 그가 길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발람이 모압으로 향하던 도중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났고, 그가 타고 가던 나귀는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귀가 세 차례나 멈추고 길을 비켜서자 발람은 분노하여 나귀를 때렸고,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열어 불의한 발람을 꾸짖게 하셨다. 결국 발람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만 말하겠다고 결심한 채 발락에게로 갔다.
발락은 발람이 저주를 퍼붓도록 두 번이나 장소를 옮겨가며 분위기를 바꾸고 회유했지만, 발람의 입에서는 저주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는커녕 축복하는 말을 선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이 발람의 혀를 붙들어 사람의 음모를 꺾으신 것이다.
그러나 발람의 탐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저주가 막히자 그는 발락에게 다른 계략을 제안했다. 곧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다면, 이스라엘이 스스로 무너지도록 타락시키라는 방법이었다. 발람은 모압 여인들을 보내 이스라엘 남자들이 음행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도록 유도했다. 결국 욕심을 버리지 못한 발람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버림받았고,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칠 때 죽임을 당했다(민 31:8).
발람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득을 위해 신앙을 거래하는 자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가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면 언제든 ‘신앙의 옷’을 갈아입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실 리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그리스도를 이용할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자들이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는 이유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발람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분명한 진리를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사악한 의도마저도 결국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돕는 수단이 되게 하신다. 세상만사를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뜻은 어떤 사람의 꾀나 음모로도 결코 좌절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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