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선지자 엘리야에게 들린 세미한 음성의 힘

채천석 | 2025.04.28 11:13

엘리야는 길르앗 디셉 출신으로, 북이스라엘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다스리던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다. 열왕기서는 북방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 가운데서도 특히 아합을 비중 있게 다루는데, 이는 바로 그 시대에 엘리야라는 위대한 선지자가 사역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은 이방 공주였던 이세벨과 결혼해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공공연히 들여온 아합의 시대에, 엘리야를 통해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가뭄과 기근을 겪게 될 것을 선포하게 하셨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르밧 과부의 집을 찾아가, 마르지 않는 가루와 기름의 기적을 베푸셨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죽은 그 아들을 다시 살려 주시는 능력을 나타내셨다.


가장 잘 알려진 장면은 갈멜산에서의 영적 대결이다. 하나님은 엘리야로 하여금 바알 선지자들과 맞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사를 응답하게 하심으로, 누가 참 하나님이신지를 분명히 드러내셨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은 제물을 마련하고 하루 종일 자신들의 신을 외쳤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러나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물을 부어 흠뻑 적신 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자 즉시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과 장작과 돌과 흙, 도랑에 고인 물까지 모두 태워 버렸다. 엘리야는 백성들로 하여금 바알 선지자들을 붙잡게 하고 그들을 처형함으로써, 이스라엘 가운데 판을 치던 우상숭배에 결정타를 가했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승리 뒤에도 엘리야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분노한 이세벨이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그는 깊은 두려움과 낙심에 사로잡혀 광야로 도망쳤고, 결국 호렙산까지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호소할 만큼 절망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를 버려 두지 않으시고, 크고 강한 바람이나 지진, 불이 아니라 세미한 음성으로 그를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다시 일으키셨다.


하나님께서는 낙심한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도 맡기셨다.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며, 엘리사를 불러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것이다. 엘리야는 이 사명을 하나씩 감당해 나갔고, 마침내 자신의 길을 다 마친 뒤에는 죽음을 보지 않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영광을 누렸다.


이스라엘이 영적 암흑기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당신이 여전히 살아 계심을 증언하게 하셨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이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선포했다. 그런 그도 홀로 외롭다고 느끼며 나만 남았다고 탄식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아직도 무릎 꿇지 않은 자들이 남아 있음을 알리시며, 조용한 음성으로 다시 용기를 불어넣으셨다.


우리 역시 인생의 길에서 좌절과 낙심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오히려, 모든 소리가 잦아든 가운데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폭풍 같은 큰 소리보다, 마음 깊은 곳에 다가오는 조용한 속삭임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어느 어머니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하여 깊은 슬픔에 잠겨 통곡하고 있었다. 그때 어린 딸이 다가와 엄마, 하나님이 죽었어요?”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딸아, 하나님이 나에게 너를 그의 사자로 보내셨구나. 그래, 하나님은 죽지 않으셨어. 주님은 살아서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고 계신단다.”


엘리야의 하나님, 그 어머니가 다시 붙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 거짓과 우상이 판치는 시대 속에서도, 낙심과 절망의 골짜기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시고 일하신다. 중요한 것은 소용돌이 치는 세상 한복판에서도, 그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는 믿음의 사람으로 서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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