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내가 글을 쓰는 유익
내가 동기 카톡방에 글을 쓰기 시작한 때는 4년 전 22대 이동호 동창회장 수련회에서 부터다. 수련회 중 족구장에서부터 글쓰기에 관여한 후부터 듬성듬성이지만 연속성 있게 글을 중단않고 써 올리기 시작했다. 컴퓨터에 저장하지 않고 삭제시킨 글까지 포함한다면, 지금까지 그간 꽤나 많은 양의 글을 써올린 듯 하다...그러다가 목회 은퇴를 했고,최근에 이르러서 “네가 뭔데” 하는 자격지심이 생겨서, 글 쓰기를 잠시 중단했었다..
그러다보니 현직이 아니라 은퇴해서인지 영적 관리가 좀 소흘히 된다고 여겨졌고,그로인한 마음속에서 잡다한 생각들로 분산(Distraction)된다. 시간관리 영적관리가 잘 안된다 싶어, 그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글을 쓰면 흩어진 마음과 생각이 좀 집중될수 있다 싶었가에, 그래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 본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혼란스럽고 나태해지는 삶이 반복되거나 지속된다거나 우울해진다 싶을 때면, 그런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볼 것을 권유하고 싶은 것이다. 글 내용 성격과 상관없다., 그냥 마음과 생각에 떠오르는 단어를 제목 잡고 그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가 보라. 마음이 다스려지고, 시간이 잘 가며,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서 그럴듯한 글이 형성되더라...그러면서 글내용이 쓰고나서 읽어보면 그럴 듯 마음이 들어 은근한 위로와 기쁨도 일더라..
1.집중력
현직에 있으면 아무래도 목회에 매이다 보면 바쁘게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난 현직을 떠난지 5년째이다. 은퇴해서 살다보니 영적인 매임에서 좀 자유로워졌다. 그러다보니 기도생활 깊이도 때론 옅아지고, 육적인 생각들이 밀려 들어올 때가 많다, 정과 욕심이 유혹한다. 영적관리가 잘 안돼 심령이 다운되다 보니, 그렇게 계속돼서는 안되겠다 하는 반성이 든다. 그 해결책을 위해 글을 써 올리자 하는 생각을 다시 했다. 그 생각 후에 첫 번째 써올린 글이 『이스라엘의 부강과 멸망』이란 제목하의 글이다. 아마도 그런 글제목이 됐던 것은 현 시국과 관련된 생각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그러니까 순전히 나를 위한 글이다, 마음에 있는 생각을 담아낸 목회적 관점의 글이다. 그렇게 글을 쓰고 나니 좀 마음과 생각이 집중돼 나아지는 듯 싶다. 설교가 아니다. 그저 마음에 찾아든 생각을 글로 표현해 봄이다.
현직 때,한번 우리들 교회 김양재 목사 설교를 들은 적 있다. 그때 설교 중에 그분은 자기도 사람인데,남편 일찍 여의고,성직자의 길을 겉지만, 과부로 홀로 사는 인생안데, 어찌 세상 생각이 안나겠냐 한다, 특히나 주일 보내고 월요일날 목회자들이 가장 자유로워질 때면, 인간적인 생각들로 고독과 외로움들로 밀려와 마음이 산란하고 복잡해 진단다. 그러면 안되겠기에 그분은 어떻게 그런 마음을 극복하고 다스리냐 하면,다음 주 설교를 미리 구상하고 자료 수집하고 작성하기 시작한단다. 그러면 산란해졌던 마음이 설교 준비로 집중이 된단다. 마음이 혹 산란하고 집중력이 흩어질 때가 있는가?! 그때 설교준비 하시든지, 아니라도 글을 써보라. 그러면 집중력이 생긴다. 마음과 생각을 다스릴 수 있게 도움이 된다. 영적 관리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글을 써본다, 먼저 나를 위해서다.
2.교제목적
내가 처음에 카독방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동기간에 교제에 동참하는 데서 비롯됐다. 닫혀있던 마음이 동기를 향하여 열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글을 써 주고 받고 하니 동기 간에 소통이 되고 교제도 도움이 돼 보인다. 그렇게 글을 쓰도록 계기가 돼 준 이동호 목사님 증경회장 때 살악산 쪽 바닷가 동창회 수련회 주선에 감사한다. 그동안 글을 써본다는 것 자체에 감사가 된다. 수줍어하던 내가 그렇게 동기들을 향해 카독방에 글을 써올린다 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하나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며 감사드린다.
우리 다른 동기님들도 조금 더 글을 써 올리는 데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주면 좋겠다 싶다 왜? 교제에 기여하며 좋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가 뭐일까?1 그것은 ①바쁜 목회에 매여 무관심 ②냉소적인 태도 ③쓰고 싶지만 제대로 글이 될까히는 부담감 때문일 수도 있다. 여기서 3번째 이유에 대해 방점을 두고 권면하고 싶다.
우리가 카톡방에 글을 써올리는 것은, 글을 통한 간접적 소통과 교제가 목적이다. 그러니 너무 글을 완벽하게 쓰려하지 마시라 ...쉽게 마음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진솔하게 글로 표현해주시라 ..예)동기간에도 친분이 두터운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 친구 구성원 중에는 큰 교회도 있고 작은 교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여서 함께 시간을 내 교제 할 때,말을 잘하려고 고민하며 연구해서 하는 분 있는가?! 아니다. 그냥 친구로서 마음 편하게 말을 교제로 주고 받는다. 예)현실 목회적인 이야기,설교 준비, 세상 이야기도,때론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자연스레 나눈다. 수준을 따지지 않는다. 친구간이기 때문이다. 난 우리 동기 카톡방에서 그런 교제를 좀 나누기를 원한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흠이 되지않는 아군이 돼 받아주는 그런 관계말이다. 그러니 넘 어렵게 글을 쓰기를 신경쓰지 말고 쉽게 대화하듯이,편하게 진솔하게 마음과 생각을 글로 표현해주시라. 그런 교제가 진정한 소통을 이룬다 본다.
3.영적 유익
우리가 쓰는 글은 어떤 이유와 목적으로 쓰던 간에, 적어도 목회자들인 우리 동기들이 써올리는 글은 영적 유익을 끼치는 글이 된다고 본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예)음식적 밥상에 밥과 반찬이 함께 올라온다. 반찬이 많을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 손이 많이 가는 반찬도 있고 덜가는 반찬도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다 유익해서 올라오는 반찬들이다. 예)오늘도 노인일자리 원주로 교육받으로 갔다가 끝나고 점심 때가 돼, 그 동행한 아는 목사님 한분하고 우리가 사는 지역 인근에 있는 대감집 보리밥 집에 가서 중식 식사를 했다.
12,000원린데 보리밥치곤 비싸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상에 올리오는 반찬을 보니 다른 보리밥집 음식점보다 숫자가 많다.. 그래서 값을 더 받는가 싶다. 상대 목사님은 나보다 가려 잡수시는데, 난 그 모든 반찬을 의지를 가지고 다 맛보았다. 왜? 골구루 먹으면 건강에 도움되니까, 그처럼 밥상에 올라오는 모든 반찬이, 젓가락 손길이 눈군가에게는 덜 가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유익한 에네지 제공하는 하는 영적 유익을 끼친다. 그러니 최선를 다해서 글을 썼으면 따지지말고 카톡방에 올려드려라..그 글을 읽고 누군가는 꼭 필요한 은혜와 위로와 교훈울 받게 해 주기 때문이다...부담없이 글쓰기에 동기님들이 모다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조금더 풍성해지는 카톡방 영적 식탁 교제 모습이 됐으면 참 좋겠다.
그 목사님하고 식사 후에 간현 쪽 분위기 있는 카페로 가서 함께 음료수를 시켜 마시며 케이크도 먹으며,지나간 목회를 회상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 나무며 교제하며 웃고 즐기다가, 이제 집에 돌어와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예)전도도 유익한데 왜 하지않는가?! 이유가 있다면 몰라서가 아니라, 거룩한 부담감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넘 전도를 완벽하게 잘하려고 하지말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부딪혀 보시라. 그라하면 전도가 될 것이다.어차피 열매는 하나님께서 맺게하실 일이니까. 나로서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글 쓰기도 처음에는 부담감이 있을지 몰라도, 한번 부딛혀 써보면 된다. 다들 교인들을 상대로 설교 잘 하시지않는가, 그래서 지금 목회하고 있자않으신가 말이다. 조금더 많이 글쓰기에 동참하여 교제가 순순하게 폭이 좀 넓게 이뤄졌으면 하고 바램으로 이글을 써봤다. 웃을 사람은 웃고 공감할 사람은 공감이 되면 그만이다. 이렇게 표현해보는 것도 용기이며 봉사이며 필요하다....끝까지 좋은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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