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쉼파쎄오’(συμπαθέω)의 위력

신성욱 | 2022.07.06 23:25

부스 터커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시카고에 있는 큰 구세군 교회에서 전도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밤, 터커는 사랑의 하나님이란 주제로 뜨겁게 설교를 진행했다. 그때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다음과 같이 그에게 따져 물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저는 얼마 전에 아내를 잃었습니다.

 

만일 저처럼 아내를 잃고 아이들은 결코 살아나지 않을 엄마를 부르며 운다면, 당신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겁니다.”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아내를 잃고 절망과 분노에 가득 차 있던 그에게 사랑의 하나님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그의 질문에 대해 별 다른 답을 할 수 없는 자신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자신은 아내를 잃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일로 슬픔을 당한 이들을 위로하거나 권면하는 것이 얼마나 무력하고 부질없는 일인가에 대해서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며칠 후,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정말 예기치 않았던 의외의 사건이었다. 갑자기 터커의 아내가 기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발생했다. 시신은 시카고로 운구 되었고 구세군 교회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장례식이 끝나고 그는 말없이 누워 있는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평온하게 잠든 아내의 모습을 보는 순간 사랑의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평안으로 가득 채워주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터커는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로 얼굴을 돌리며 확신에 찬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 제가 이 자리에 섰을 때,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만약 아내가 방금 죽었고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 울고 있다 해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요? 혹시 그분이 여기 계신다면 그분께 말씀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맞습니다. 제 아내가 갑자기 제 가족을 뒤로 한 채 세상을 떠났어도 여전히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맞습니다. 제게 이런 평안과 확신으로 위로해 주고 계시니까요.” 놀랍게도 그 사람은 그 현장에 있었고, 관 옆에 무릎을 꿇고 사랑의 하나님을 영접했다.

 

이게 바로 직접 경험의 위력이다. 과거 유학 시절 아이를 유산하고 시험에 빠져 있는 가족을 위로한 적이 있다. 나는 아이 둘을 유산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산을 경험하지 못한 이가 아이를 유산해서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을 위로하면 큰 도움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아이 하나가 아닌 둘을 유산해본 사람이 위로할 때 그 위로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았다. 그렇다고 세상에 슬픔이란 슬픔을 다 경험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순 없다.

 

하지만 자신이 당해보지 않은 일을 위로하는 것보다는 직접 경험해본 일을 위로하는 것이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게 훨씬 큰 위로가 된다는 사실은 맞는 것 같다.

4:1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여기서 동정하다라는 우리말은 적절치 못한 번역이라 생각한다.

 

우리말의 동정하다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동정한다고 하면 좋게 받아들일 사람이 없다. ‘동정하다보다는 긍휼히 여기다로 바꾸는 것이 낫다. 이것은 쉼파쎄오’(συμπαθέω)란 말인데, 여기서 유래된 영어 단어가 ‘sympathize’이다. 이 단어의 정확한 뜻은 다른 사람과 같은 감정에 놓이게 되다’(to be affected with the same feeling as another)이다.

 

이 헬라어 동사 συμπαθέω똑같은, 동일한이란 뜻을 가진 ’(συμ)고통을 당하다, 수난을 경험하다란 뜻을 가진 파스코’(πάσχω)가 합쳐진 단어이다. 따라서 히브리서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제대로 살려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해서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전혀 도움이 되지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렇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경험해보셨기 때문에 우리의 약함과 고통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아파하고 위로하실 수 있는 분이시란 뜻이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할 때 위로자(comforter)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와 똑같은 아픔을 경험하지 못한 이의 위로는 큰 도움이 되질 못한다. 다행히 최고의 위로자가 한 분 계신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세상에 그분 만 한 위로자가 있는지 보라.

 

그분은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아픔과 슬픔과 억울함을 몸소 다 경험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적절하고 힘이 되는 최고의 위로자가 되신다.

우리 최고의 친구요 신랑이요 위로자가 되시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오늘도 힘차게 승리하는 모두의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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