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잊을 수 없는 결혼식

신성욱 | 2022.04.08 23:09

미국에서 9.11이 터졌을 때 나는 L.A에서 담임 목회를 하고 있었다. 당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결혼식 주례를 한 적이 있다. 신부는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암환자였다. 결혼 후 허니문을 즐겨야 할 부부에게 남은 시간은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신부와 결혼하는 신랑의 모습은 너무도 장엄하고 숙연했다. 아주 감동적이면서도 참 가슴 아픈 결혼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날 뭐라 설교하고 권면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마치 장례식처럼 무겁고도 장렬했던 분위기였던 것으로만 기억한다. 결혼식 주례 후 논문을 마치느라 교회를 사임하고 학문의 고향인 시카고로 이사했기에 이후의 얘긴 듣지 못했다. 주례자인 내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 결혼식이었다. 나 같으면 생명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암환자와 그렇게 당당히 결혼할 수 있을까? 신부가 죽으면 3개월 만에 혼자 남게 되고, 다시 결혼하더라도 재혼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자에 대한 남자의 사랑이 얼마나 컸기에 그럴 수 있었던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저 존경스러웠을 따름이었다.

오늘 페이스북에서 이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재미있는 결혼식 영상을 하나 보았다. 주례자는 유머가 출중한 분이었다. 신랑 신부 맞절을 하는 순서에 사랑하는 만큼 고개를 숙여주세요라고 두 사람에게 주문했다.

 

그러자 신랑 신부는 서로를 마주 보고 절을 한다. 그런데 신부가 신랑보다 더 고개를 아래로 숙이는 것이었다(사진1). 그 모습을 쳐다본 신랑은 아예 땅바닥에 코를 박은 채 엎드려버렸다(사진2). 순간 하객들로부터 웃음이 쏟아졌다. “사랑하는 만큼 고개를 숙이라" 했으니 신부한테 질 순 없었으리라. 그렇다고 새 양복을 입은 채로 땅바닥에 엎드릴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하객들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했을까?

 

무엇보다 결혼식 날의 주인공인 신부의 마음은 얼마나 행복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결혼식날에 그처럼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애틋한 마음이 없는 신랑 신부가 있을까? 문제는 세월이 지나면서 결혼식 때 가졌고 맹세했던 사랑의 마음이 식어진다는 것이다.

오랜 만에 결혼식 주례를 부탁받았다. 친구 목사님의 딸이 결혼을 하는데, 사위될 사람이 네델란드 사람이라서 영어와 우리말로 주례를 해야 한대서 내게 요청을 했다.

 

10여 년 전에 시카고의 지인 장로님 아들의 결혼식이 한국에서 열려서 주례한 이후로 모처럼 맡은 결혼식 주례다. 오늘 하루 종일 학생들이 제출한 페이퍼를 읽으면서 결혼식 주례 준비를 했다. 최고의 관건은 결혼식 설교를 어떤 내용으로 할 것인가였다. 영어와 우리말로 번갈아 설교를 해야 하기에 길게 할 순 없다. 어떻게 짧은 메시지를 전할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내가 결혼식 설교를 진행할 때면 언제나 써먹는 필수 코스가 하나 있다.

 

신랑 신부에게 윙크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결혼식에 웬 윙크란 말인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웃음과 함께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교훈을 주는 나만의 전매특허인 퍼포먼스다.

편지로 알게 되어 사랑을 주고받던 청춘 남녀가 결혼하기로 작정하고 처음으로 만나 대면을 하게 되었다. 자매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형제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러나 형제를 만난 자매는 그 자리에서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남자가 눈을 하나 못 쓰는 애꾸눈이었던 것입니다. 화가 난 자매가 소리쳤다. “나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약점을 감추고 나하고 결혼하려고 했어요? 나는 당신같이 뻔뻔스런 사람과는 절대로 결혼할 수 없어요. 당신이 애꾸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나를 속였다는 사실을 결코 용납할 수 없어요.”

그때 형제도 화를 버럭 내면서 이렇게 대들었다.

 

아니 이보시오. 내가 언제 당신을 속였다고 그러시오. 나는 당신을 속인 적이 없어요. 첫 번째 편지를 보낼 때 당신이 보내준 사진을 보고 내가 한 눈에 반했다고 쓰지 않았소?”

벤쟈민 프랭클린이 이런 얘기를 했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뜨시오. 그러나 결혼 후에는 한 눈을 감으시오.” 이 말은,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정말 이 사람이 내 평생 반려자로 부족함이 없는가를 신중하게 따져서 선택해야 하고,

 

일단 결혼한 후에는 상대방의 단점에는 무조건 눈감고 오로지 장점에만 눈뜨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거꾸로 적용하며 살 때가 참 많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내 짝인가를 세밀하게 잘 살펴야 하는데, 결혼할 땐 감정에 휩쓸려 막 결정했다가 결혼하고 나서는 두 눈을 부릅뜨고 상대방의 단점만 보게 되니 그게 큰 문제라는 것이다. 결혼 생활의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윙크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 알겠는가? “내가 당신과 결혼한 후에는 나는 당신의 장점에만 눈을 뜨고 단점에는 한 눈을 살짝 감고 살겠습니다!”하는 약속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를 하는 중에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살짝 윙크하게 주문한다. 그러면 두 사람은 물론, 이 모습을 지켜보는 하객들로부터 폭소가 쏟아지고 분위기도 좋아지고, 뜻 깊은 교훈도 가슴에 새기게 된다.

 

오늘 페이스북에서 보았던 사랑하는 만큼 고개를 숙이라!’는 영상 속 그 퍼포먼스도 꽤 구미가 당겨온다. 430일 결혼식 주례시에 꼭 써먹어봐야겠다 마음 먹어본다.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가슴에 깊은 감동과 눈물어린 아픔의 의미로 남아 있는 건 역시 L.A서 진행했던 3개월 시한부 신부와 신랑의 결혼식이다. 말로만의 사랑이 아닌, 희생적이고 숭고한 사랑의 결정체 말이다. , 오늘따라 그 사랑이 절실히 그리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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