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크리스마스 위드 코로나, 영혼의 치료자를 만나기를

조정의 | 2021.12.19 00:16

인류 최악의 질병
코로나와 함께 한 세월이 벌써 2년 정도가 됐다. 안타깝게도 바이러스에 확진된 사람과 그로 인해 사망한 환자가 점점 늘어갈 뿐만 아니라 다행히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도 삶의 전반에 걸친 제약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 먹는 것, 입는 것, 만나는 것, 자는 것, 숨 쉬는 것, 임신, 출산, 결혼, 장례 등 코로나바이러스가 끼어들지 않은 삶의 영역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래서 코로나보다 더 위험하고 전파력이 높은 바이러스가 곧 올 것이라는 몇몇 사람들의 경고가 참 공포스럽다. 그 정도로 우리는 전염병의 무서움을 현재진행형으로 체험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가장 전파력이 높은 바이러스는 코로나 훨씬 이전부터 있었고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인류를 괴롭힐 것이다. 감염된 모든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뿐만 아니라 자녀와 그 후손까지 대대로 전염되기 때문에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사람을 한 번 죽이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죽이는데, 육체만 죽이는 게 아니라 영혼까지 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인류 최악의 전염병, 죄를 말하고 있다.

물론 죄는 질병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항심과 거역하려는 의지, 계시하신 뜻에 대한 불순종으로 표출되는 책임이 분명한 전인격적 반응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삶의 전반을 괴롭히는 것처럼 죄는 사람의 전부를 타락시킨다. 왜 항상 바른 생각을 할 수는 없을까? 정직하고 정결한 마음을 품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 감정은 선하고 통제된 방식으로 표출되지 않을까? 왜 우리는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 금지된 행동을 하려는 욕구와 싸워야 할까? 왜 우리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걸까? 모두 죄 때문이다.

당신이 죄에 감염된 자인지 알기 위해 PCR 검사와 같은 특별한 검진을 할 필요는 없다. 비정상적인 생각과 감정, 행위를 지금부터 앞으로 얼마나 멈출 수 있는지 시험해 보라. 금세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도 예외 없이 죄의 확진자다. 죄는 당신 삶의 전부를 파괴하고 육신의 죽음과 영혼의 파멸을 가져온다.

유일 무이한 치료자
육신의 질병을 해결하기 위한 치료제와 치료 방법이 있는 것처럼, 영혼의 질병인 죄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방법이 있다. 대표적인 치료제는 종교다. 의사가 육신의 치료자라면 종교는 영혼의 치료자다. 인류가 만든 모든 종교의 특징은 죄를 지은 만큼 선을 쌓는 것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선을 행하고 공로를 쌓으면 죄의 책임이 삭감된다. 각 종교가 숭배하는 신 중에선 작은 선과 공로로도 많은 죄를 해결해주는 인심이 후한 신도 있다. 하지만 죄의 질병에서 완치되었다는 완전한 확신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치료자는 인류가 만든 종교 안에서 찾아볼 수 없다. 기껏해야 죄책감을 일시적으로 잊게 해주거나 언젠간 치료될 거라는 기대감을 미약하게나마 줄 뿐이다.

12월 25일. 우리는 이천 년 전 고대 이스라엘 땅 베들레헴에 예수께서 나신 것을 기념하고 기뻐한다. 그 이유는 바로 그분이 인류가 만든 종교에서 절대 찾을 수 없는 영혼의 치료자로 병자를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라에게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다(눅 5:31-32). 예수님은 유일 무이한 치료자다.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인간의 성장 과정을 거치셨고 인간의 시험을 모두 겪으시면서도 죄가 없으셨다. 그래서 모든 인간을 대표하여 죗값을 치를 수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에 과거, 현재, 미래에 자기를 믿는 모든 자의 죄를 단번에 영원히 해결하실 수 있었다. 100% 하나님이시면서 100% 사람이신 신인은 예수님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 그분은 유일 무이한 치료자이시다.

그러면 예수님이 영혼의 질병을 앓는 이들에게 주신 치료제는 무엇인가? ‘복음’이라 불리는 이 치료제는 인간이 만든 종교와 완전히 다른 방식의 치료제다. 인간이 만든 치료제는 죄에 대응하는 선을 직접 최대한 만들어서 어떻게든 악을 이겨보려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이 항상 실패하는 건 내재된 악은 너무나 크고 파괴적인 반면 우리가 만드는 선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제작하시고 예수님께서 제조하셨으며 성령께서 효력과 효능을 나타내게 하신 복음의 치료 방식은 획기적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죄를 모두 씻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의를 우리에게 주입하신다. 이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라 복음 치료를 받은 모든 이를 완벽하게 치유한다. 우리 죄가 크고 강력하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무궁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치료자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완치에 가까워지고 결국 온전함에 이를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치료자를 만나려면
다시 한번 말하자면, 성탄절은 영혼의 질병을 무섭게 앓고 있던 인류에게 완벽한 치료자가 찾아오셨다는 것을 기념하는 놀랍고도 기쁜 날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죄의 질병에서 치유받을 수 있을까?

먼저, 죄의 질병에 전염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정말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의인’으로 여겼다. 심지어 가장 종교적이었던 사람들, 종교의 전통과 규율을 철저히 지켰던 사람들이 자신들은 치료가 불필요한 건강한 상태라고 자부했다. 그런 자에게 의사는 쓸데없다.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소용없다는 말이다.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죄는 무증상이 없다. 죄와 그 증상을 못느낀다면 그정도로 중증 환자라는 말이다. 복음의 치료를 받으려면 먼저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걸 알아야 한다.

둘째, 영혼의 의사에게 당신을 온전히 맡겨야 한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의 의사로서 우리 영혼을 진단하여 죄의 문제를 깨닫게 하신다. 성경을 보라. 스스로 의롭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율법 검진을 통해 계속해서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밝히시는 그분의 신실한 손길을 볼 수 있다. 그분이 끝까지 내 영혼을 돌보시도록 믿음으로 내어 드리라. 죄의 심각성을 철저하게 보여주신 후에 오직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치료법으로 당신 영혼에 뿌리내린 죄성을 뽑아내고 그분의 온전한 의를 주입하실 것이다(신학적 용어로는 이중 전가: 죄의 전가 그리고 의의 전가). 예수님을 믿는 당신에게 오직 하나님의 은헤로 온전한 치유가 보장된 회복이 시작될 것이다.

셋째, 계속해서 건강한 삶을 살아라. 성경이 말하는 건강한 삶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 그런 삶의 완벽한 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복음의 능력을 날마다 일으키시는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연거푸 백신을 맞는 것처럼 영적 건강을 위해 우리가 뭔가 계속해야만 한다고 오해해선 안 된다. 물론 우리는 성경을 읽고 순종하며 공예배에 참석하고 성도와 교제하는 등 은혜의 방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동력(회복력)은 처음에 우리 안에 회복을 시작하신 치료자께 있다. 그러므로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이 내 안에 하신 일을 기억하라. 그것이 우리가 건강을 지키는 참된 비결이다.

2021년 성탄절,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소원 중 하나는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하고 파괴적인 영혼의 질병을 유일무이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치료하시는 분이 오셨다는 사실을, 이번 성탄절에도 까맣게 잊고 지나가지 않기를, 이 칼럼을 읽는 죽어가는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분께 자기 삶을 맡기기를, 이미 구원을 맛본 이들이 신실하신 치료자 예수님 안에서 계속해서 건강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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