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나는 누구입니까?

서상진 | 2019.05.25 05:08

성경을 읽다 보면,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다고 할 때에는 꼭 공식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그 전에 기적적인 사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보고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무리는 말 그대로 사람들입니다. 왜 따라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이 따라가니 군중 심리로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본질을 알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선동자의 선동으로만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무리와 제자는 분명히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를 보면, 무리들이 있습니다. 왜 그 자리에 왔는지 본질적인 것을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의 선동에 의해서 온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왜 그 자리에 왔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잘 하지를 못합니다.

교인과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다릅니다. 교인은 종교 생활에 익숙한 종교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교인이면서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면서 일상에서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신의 삶 가운데 예수를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다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단순히 좋아하기 때문에 제자가 되는 것은 압니다. 그 이상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전심으로 사랑하기에 예수님을 쫓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면 인간의 좋고, 싫고의 결단을 넘어서는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삶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단들의 삶을 보십시오. 그렇게 메스컴에서 교주의 잘못을 말하고, 재판에서 교주의 잘못됨을 판단한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그런 결정과 보도 앞에서 절대로 자신들이 믿고 있는 교주는 그럴 분이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이단들은 성경 공부에도 열심이 있고, 암송도 열심을 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신봉하고 있는 그 곳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한 열심을 냅니다. 그들의 헌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러나 시간을 흐르면 흐를 수록 그들의 헌신의 동기와 목적이 드러납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이단 단체는 부해지고,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집니다. 가정이 파괴되고, 개인의 사회적인 삶이 무너지며, 정신적인 모든 가치는 다 무너져 있습니다. 타인은 그것이 보이지만, 그 안에 빠져서 사는 사람은 오히려 그런 삶도 옳다고 믿고 살아갑니다. 조직을 배신하면 가혹한 보복이 따르지만, 예수님처럼 뻔히 배신하는 가롯유다를 보내주는 일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김을 받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을 섬겨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희생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보이셨고, 목자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짐을 지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지고 있는 인생의 무거운 짐은 다 자신에게 가지고 오라고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참된 쉼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몰려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지만, 무리를 흩으셨고, 묵묵히 12명의 제자들에게 집중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에도 제자들을 찾아가셨고, 그들에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무리입니까? 종교인입니까? 그리스도인입니까? 제자입니까? 나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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