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설교의 능력

김성욱 | 2019.01.19 21:24


< 설교의 능력 >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설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선포하는 것이며,

그 말씀을 통해 영혼구원이 일어나는

, 구원의 도구로서의 설교의 가치가 있다고 보는 생각과 설교는 예배의 여러 요소중 하나이며, 다른 수단들과 적절히 사용하여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절대적인 성격의 것으로 보는 시각과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인 부수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 입니다.

 

설교는 명백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 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영원 무한하시며 전지 전능하시며 선하신 하나님의 위엄있는 말씀을, 설교자들을 통해 선포하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목양하게 하시는 수단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미련해 보일지라도 설교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사용하시는 거룩한 방법입니다.(고전1:21)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권위가 있습니다.

이것은 설교자 자체에 권위가 있다기 보다는(물론 당연히 권위가 주어진다고 봅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목사가 강단에 섰을 때 하나님으로 부터 권위가 주어지고 (말씀을 대언하는 사자로서) 내려올때 사랑으로 양들을 대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맡은 설교에 권위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왕의 명을 전하는 사신이 어명을 전할 때, 듣는 사람이 그 사신보다 직위가 높다 할지라도 무릎을 꿇고 엎드려 어명을 받드는 것은,

사신에게 권위가 있어서라기 보다 전하는 내용(왕의 명령)에 권위가 부여되어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사신은 단지 왕의 명을 있는 그대로 전할뿐,

듣는 사람을 이해시키거나 설득하지 않습니다.

설교 역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의 선포이지 설득이나 부탁이 아닙니다.

 

16세기 개혁자들이 교회 개혁을 할 때,

교리를 개혁하며 잘못된 전통이나 의식들을 성경을 기준으로 개혁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설교의 내용을 개혁할 뿐아니라,

외형적인 면도 개혁을 단행하여 설교단을 굉장히 높은 곳에 위치 시켰는데(지금도 외국의 전통있는 개혁교회들은 강단이 높은곳에 위치함),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의 중요성을 그만큼 깊이 인식 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즘은 모든 권위를 부인하는 이 세대의 영향과 교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주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에 의해 저런 강단(내용 뿐아니라 형식)을 찾기 힘든 시대입니다.

 

현 시대의 많은(거의 대부분)교회들은 더 이상 설교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대신 양적 성장에 관련된 세미나와 프로그램 및 교인 개인의 내면에 맞춰진 관심(내적치유등과 같은)에 온통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인인것을 깨닫게 하고 죄인에게 유일한 소망인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보다 심리학적인 위로와 자존감을 보장해주고 교인들의 요구에 맞춰(쉬운설교)설교를 수정하고 시간을 줄이게 되는 것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실예로 제가 청년부 때에 당시 담당 전도사님께서 청년부 부흥(?)을 위해 설교를 5분으로 단축시키고 그 내용도 에세이같은 것으로 대체하고, 찬양시간과 교제의 시간으로 채우게 되자 연간 목표였던 50명을 6월이 되기전에 이미 채우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설교를 통해 죄인들이 회심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믿지 않고,

더 이상 설교가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자 마땅히 순종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보다 듣고싶은 것을 말해주어 나를 만족시키고(은혜받는다고 표현),

자신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저주의 설탕들(세속적이고, 탐욕스런)이 범벅된

심리학이나 여러 스킬(방법)들을 사용하여 설교는 그저 부수적으로 돕는 역할로 전락시킨지 오래입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자기만족을 위한)을 세워놓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라!"고 했던 것처럼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교회의 다수가 되고, 이들의 요구가 교회 전반에 스며들어 이제는 설교의 능력을 믿는것이 이전에 잠깐 사용되고 이제 그 수명을 다한 골동품 처럼 전시되고 사용하지 못할 것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더이상 설교를 전하는 설교자를 주의 사자로 보지 않고 전문 직업인이나 인문학 강사 정도로 여기는 일들을 보게 됩니다.

진리에 여전히 매여 있는 주의 종들은 그저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 떨어진 감각없고 미련한 자들로 분류 되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집회나 세미나에 가보시면

설교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해 있는지 여실히 보게 될것 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하고 두려워해야 할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는 설교를 가볍게 여기는 것으로 인한 더 끔찍한 결과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하나님 그분 자체를 경히 여기는데까지 이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그리고 교회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다양하고 엄청난 양의 많은 종류의 프로그램들과 세미나, 각종 집회가 있음에도 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잃어 가는 것일까요?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수 많은 방법론들의 홍수의 시대에 여전히 노아의 시대처럼 의인이 천연기념물과 같이 희귀하게 된 것일까요?

 

왜 이전과는 다른 측면에서 많은 수고와 노력을 쏟음에도 인간이 바뀌지 않는것일까요?

(이 시대의 교회 안에는 회심자가 극 소수 입니다.)

 

답은 이미 교회사에 나와있습다.

 

이전 출석하던 교회에 스코틀랜드의 목사님 께서 방문하신 적이 있어서 질문을 드린적이 있습니다.

"장로교의 고향이며, 언약도들의 나라인 스코틀랜드가 어떻게 이렇게 황폐해졌습니까?"

목사님께서 슬픈 기색을 띠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변 하셨습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말씀의 개혁으로 말미암은 부흥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참된 부흥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종들을 통해 복음의 교리들(구원론)이 풍성하고 선명하게 선포되어 질 때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 철저히 헌신된 주의 종들이

오직 설교(성경)를 통해 능히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성령을 의지하여 주님의 복음을 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영광의 구원 사역을 일으키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구원)은 어떤 심리학이나 프로그램, 집회나 세미나 그리고 그 어떤 사회운동으로 일으킬 수 없으며 결코 그 곁 가에도 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통해 다시금 설교의 능력(죄인들을 구원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하나님의 복음의 교리들이 선포되는 강단들이 회복되고 늘어나기 시작하여 다시 초대교회, 교회개혁시대, 청교도시대의 그 영적 부흥이 조국 교회에 일어나길 기도하며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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