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확신에서 부인으로

강도헌 | 2016.10.12 08:38

확신에서 부인으로

(천로역정 함께 읽기 7)

 

전도자와 재회

 

순례자는 좁은 벼랑 끝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을 때 저쪽에서 전도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전도자는 왜 이쪽으로 왔느냐고 책망을 한다. 순례자는 어떤 노(老) 신사가 자신의 등에서 짐을 벗겨내는 기술을 가진 선생님이 이쪽에 있다는 말을 듣고 왔다고 대답을 한다. 전도자는 성경책을 펼쳐 읽어준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그가 뒤로 물러서면,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히10:38) 이 말씀을 들은 순례자는 털썩 무릎을 꿇고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부짖는다. “맙소사, 이젠 완전히 끝났구나”

 

 

새 생명

 

전도자는 순례자를 달래고 일으켜 세우며, 다시 돌이키면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해 주시고, 기회를 주신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율법은 사기꾼과 같다고 알려준다. 등의 짐에서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으며, 그분께 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유혹과 시험을 만나고, 시시 때때로 자신을 죽여야만 갈수 있는 길이지만 반드시 새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격려해 준다.

 

 

율법의 허구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 자신의 믿음이 과연 ‘올바른 믿음인지?’를 점검하고 고민하는 성도는 얼마나 될까? 출애굽을 하여 가나안까지 정복한 이스라엘이 다시 이방민족들에게 가나안 땅을 잃게될 위기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사사기의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믿는 위험에서 지금 우리는 안전한가?

 

매주일 교회에 출석하고, 교회에서 여러 가지 봉사를 하고 있고, 성경공부와 전도활동에 동참하고 있으니 스스로 믿음가운데 살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으로 과연 만족할 수 있는 문제인가? 만약 여기까지가 자기 믿음의 확신이라면 ‘바리새인의 의’ 보다 더 나은 것은 무엇인가?

 

 

바리새인의 문제점 : 자기 확신

 

복음서에 예수님과 바리새인이 서로 대치하는 장면과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대적하는 장면들이 나타난다. 바리새인은 율법에 정통하고, 유대교의 전통을 철저히 지키는 자들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예수님을 보고서도 예수님을 알지도 못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깨닫지 못했다. 이것이 바리새인의 문제점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메시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믿고, 자기들이 확신하고 있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즉, 하나님에 대해 자신들의 지식과 생각으로 상상하고 그려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그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이 확신하고 있는 믿음을 강화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확신에서 부인으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의 신학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신학은 믿음을 돕기 위한 도구로 나아가야 하며, 믿음을 판단하는 도구가 되어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신학, 자신의 종교적 열정, 자신의 헌신, 전통 등을 확신하지 말라.

 

지금 내 앞에 주님이 와 계신 것을 보고, 지금 내 앞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나의 확신을 내려놓고, 자신의 신학, 열정, 헌신, 전통을 부인하고 오직 주님을 구해야 한다. 그때에 살아 있는 신학, 살아 있는 열정, 생명 있는 헌신, 능력 있는 전통들이 세워질 것이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020개(9/51페이지)
편집자 칼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860 [신성욱 칼럼] 낯설게 표현하기(Remarkable is good) 신성욱 2021.06.06 01:33
859 [신성욱 칼럼] 씁쓸함 가운데 빛나는 감동 스토리 신성욱 2021.06.06 01:31
858 [신동수 칼럼] 찰나(刹那)의 사역 신동수 2021.06.04 04:41
857 [조정의 칼럼] 그리스도인이 정치를 논할 때(3) 정치를 논할 때는 무신론자가 돼야 하는 조정의 2021.05.31 12:03
856 [배영진 칼럼] 세상은 씁쓸한가? 배영진 2021.05.31 10:25
855 [조정의 칼럼] 그리스도인이 정치를 논할 때(2) 한쪽 이야기만 듣기 조정의 2021.05.24 09:42
854 [배영진 칼럼] 인생에는 각각 한계가 있다. 배영진 2021.05.21 14:08
853 모바일 [김성욱 칼럼] < 악에 동조하는 침묵 > 김성욱 2021.05.21 08:08
852 [조정의 칼럼] 그리스도인이 정치를 논할 때(1) 세 도끼 모델 사진 첨부파일 조정의 2021.05.17 10:53
851 모바일 [김성욱 칼럼] 모든 진리는 명백하다 김성욱 2021.05.10 21:38
850 [조정의 칼럼] 대면예배의 가치-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6) - 주의 만찬 조정의 2021.05.10 10:16
849 [조정의 칼럼] 대면예배의 가치-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5): 교제 조정의 2021.05.03 09:37
848 [조정의 칼럼] 대면예배의 가치-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4): 봉사 조정의 2021.04.26 10:31
847 [배영진 칼럼] 성도의 신앙성숙 4단계 배영진 2021.04.19 12:18
846 [조정의 칼럼] 대면예배의 가치-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3): 기도 조정의 2021.04.19 09:11
845 [신성욱 칼럼] 로또 당첨금 3억보다 소중한 우정과 배려 신성욱 2021.04.13 08:37
844 [신성욱 칼럼] 사형수가 오늘 가장 원하는 것은? 신성욱 2021.04.13 08:32
843 [신성욱 칼럼] 유명세에 속지 말라 신성욱 2021.04.13 08:31
842 [조정의 칼럼] 대면예배의 가치-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2): 말씀 조정의 2021.04.12 09:40
841 [신성욱 칼럼] 메신저(Messenger)로만 그치지 말고 메시지(Message) 자체가 신성욱 2021.04.09 00:43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