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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아(phobia)’가 없는 그리스도인

고경태 | 2016.08.09 19:18

포비아(phobia)’가 없는 그리스도인

고경태 목사(한국성경연구원)

기사입력 2016-08-09 오후 7:16:00 | 최종수정 2016-08-09 19:16

 

포비아(phobia)’는 공포 장애(恐怖障碍), 공포증(恐怖症)으로 어떤 대상에 대해서 불안이 발생하는 병의 일종이다. 포비아를 가지고 있으면 상대에 대해서 과도하게 판단하여 강박, 공포 등을 가지고 예측이 불가능한 행동 양상이 발생한다.

 

포비아(phobia)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발생하는 비인격적이고 폐쇄적인 양상이다. 정상적인 정보 때문에 포비아(phobia)가 발생할 확률은 매우 약하다. 그래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수용자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의 공동선에 목적을 두고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단편적 자기 한계의 지식을 전달하면서 포비아(phobia)가 발생한다.

 

포비아(phobia)는 그리스도인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가능한 현상이다. 그것은 잘못되거나 제한되거나 편협한 정보를 절대가치로 삼을 때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국가, 민족, 문화에서 이절적인 외부인에 대한 혐오이다. 제노포비아는 인종학살(genocide)까지 자행한다. 기독교에 있는 포비아는 동성애에 대한 호모포비아(homophobia)와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이다.

 

한국 교회의 현재 중요 이슈는 동성애와 이슬람 문제에 대한 방안 마련이다. 이것은 교회의 일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 전체를 규정하는 절대선과 같은 것이다. 이 결정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결정할지 전과 후의 차이가 너무나 확연한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첫째, 동성애 포비아이다. 동성애는 죄인가? 소수자의 성적 취향인가? 동성애에 대해서 죄로 규정한 것은 구약성경에 명시되어 있고, 신약성경에는 죄의 양상으로 제시한다(로마서). 기독교는 죄를 정죄하는 집단이 아니고, 죄를 치료하고 회복하는 집단이다. 동성애가 죄라면 정죄하고 배척하는 극단적 자세나 포비아적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동성애는 죄로 분명하게 규정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가 명시적으로 죄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나 다양하다. 죄에 경중이 없는데, 경중을 구분하기도 한다(가벼운 죄와 무거운 죄). 하나님의 판단 기준과 인간의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판단 기준에는 경중이 있다. 그 경중에서 동성애는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동성애는 창조 질서(번성의 의무를 포기하고, 가정을 부정하는)를 허물며, 성관계를 탐욕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성적 즐거움이 이성(異性)에서 발생하지 않고 동성(同性)에서만 발생한다는 것은 인체 기능 구조가 정신 기능에 의해서 통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동성애에서 다시 이성애자로 전향하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포비아적 자세는 지양(止揚)해야 한다. 치료의 대상이라면 치료의 목적으로 접촉하고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을 시도하고 확장해야 한다.

 

둘째, 이슬람포비아이다. 이슬람, 무슬림, 무슬림은 이슬람을 종교로 믿는 사람이다. ‘‘~사람이란 뜻이다.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의 조합어로 크리슬람(Chrislam)’이란 신조어도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와 이슬람을 함께 놓아 기독교를 부정하고 새로운 통합종교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무슬림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서두에서 제언했듯이 정확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우선한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만들기 위해서 전문가들은 노력해야 한다. 맹목적인 이슬람포비아 다민족 사회가 시작된 우리나라에서 적합한 자세가 아니다. 무슬림이 텔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테러는 종교의 표현 이전에 분노의 표현이다. 거짓 선생이 유혹하여 덫에 빠뜨리는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분노’, ‘적개심이다. 두 성질이 마음에 있으면 거짓 선생과 만나면 바로 거짓 선생에 충복(忠僕)이 된다. 이슬람포비아는 무슬림에게 경계와 적개심을 갖게할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다민족화 되어 무슬림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입국한다. 이들을 열린 마음으로 접촉하며 자기 보호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보호를 목적으로 상대방을 경계하고 문을 닫는다면 그것은 편협한 율법주의보다 더 파괴적인 포비아 양상을 갖는다.

 

교회를 파괴하고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대적의 진에 대해서 지래 겁을 먹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독교는 항상 기쁨과 생명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포비아가 있을 때에는 스스로 폐쇄가 되는 폐단이 있다. 미래지향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대상 지식에도 갇혀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람을 아는 지식만이 유일한 대상이다. 처음 기독교는 거대한 로마 제국의 위협에서 로마포비아는 없었고 복음 정진에만 관심이 있었다. 결국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교회가 진행하는 반대 프로그램이 포비아적 경향으로 판단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결코 포비아가 있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주 예수께서 주신 믿음이고, 그 성령으로 정진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유월전 전날에 제자들과 새언약을 체결하시며 주신 새 계명사랑이다(13:34). 성전 파괴를 목격한 사도 요한의 메시지는 사랑하라였다. 사도 요한이 전한 사랑이란 메시지는 압제자 로마,유대교의 훼방자 그리고 모든 이방인 그리고 피조 세계 전반에서 실천해야 할 적극적인 정진 명령이다. 예수의 피로 수립된 새언약의 백성들은 새계명인 사랑 계명을 준행해야 한다. ‘사랑에는 포비아가 없다.

   <이집트에서 전도 사역하는 선교사님이 방문해서 준 티셔츠....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9:6/아랍어)>


기사제공 : 크리스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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