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성경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신성욱 | 2021.03.18 09:05

성경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독실한 신앙인에다가 목회자로 살기를 원했다는 사실은 웬만한 신자라면 다 아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살로 생의 마지막을 끝냈다는 점은 매우 아쉬운 대목으로 생각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그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타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화제를 끌고 있다. 그동안 예술사학자들 사이에서 고흐의 자살설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정설로 통해왔다.

 

하지만 퓰리처상을 받은 저명한 작가들이 10년에 걸친 연구 끝에 고흐는 자살한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고흐는 18905월 프랑스 북부의 한 마을에서 파리 근교 오베르로 가는 도중 총상에 의해 숨졌다. 예술사학자들은 오랜 기간 정신병과 우울증을 알아왔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고흐가 자신의 가슴에 스스로 총을 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최근 퓰리처상을 받은 스티븐 나이페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는 10년간의 조사 끝에 고흐는 자살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총에 맞아 죽은 것이라는 주장이 담긴 책을 발간했다. 두 사람은 고흐가 가족들과 주고받았던 새로 발견된 편지들과 작품을 분석한 내용과 기타 여러 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고흐의 자살설에 대해 강력한 의문을 제기했다. 고흐가 자살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나로서는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기쁘기 그지없다.

 

아래의 그림을 보라. 칠흑같이 어두운 배경 속에 두꺼운 성경 한 권이 펼쳐져 있다. 이 성경은 빈센트 반 고흐의 부친 책상 위에 늘 펼쳐져 있던 집안의 가보 성경이다. 성경 옆에 촛대가 있는데 촛불은 이미 꺼져 있다. 부친의 죽음을 상징한다.

두꺼운 성경 아래쪽에는 얇은 소설이 놓여 있다. 에밀 졸라(Emile Zola)삶의 기쁨이라는 소설이다. 성경과 소설이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고흐가 이 정물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바가 무엇일까? 고흐는 <성경과 소설이 있는 정물>이란 작품에서 성경과 소설을 어떻게 연관 짓고 있을까? 왜 그는 성경 아래쪽에 소설책을 그려 넣었을까? 이 구도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고흐가 뉴넌에 머물 때 목사였던 그의 부친은 졸라의 소설이 놓여 있는 것을 무심히 보고 지나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밤새 이것에 관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 시골 목사는 졸라를 비롯한 프랑스의 사실주의 작가들이 아들의 생각을 갉아먹어 무신론자가 되게 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고흐가 가보 국가 공인역 성경 아래에 졸라의 소설을 의도적으로 배치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얼핏 보기에 두 책은 대조되어 보인다. 아주 두꺼운 성경과 그 아래에 놓인 얇은 소설책 말이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해보라.

 

성경은 오픈 되어 있지만 그것은 읽기 거북해 보이고, 소설은 덮여 있지만 수없이 읽어서 해어져 다 떨어질 지경이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대립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흐의 부친과 고흐 자신의 상징적인 초상화로 보는 견해도 있다. 더 나아가 성경이 대표하는 기독교가 이제는 막을 내리고 바야흐로 계몽의 시대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고흐는 부친으로 대표되는 외식적인 기독교를 떠나 자유로운 계몽주의에 헌신하려는 마음을 이 그림에 담았을까?

 

암스테르담의 고흐 박물관에는 고흐가 성경과 소설을 대조적으로 생각하면서 그렸다는 설명이 있다. 고흐가 기독교를 떠나 계몽주의에 헌신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흔히 오해하듯이 고흐는 소설이 성경을 대체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계몽주의 시대에는 더 이상 성경 같은 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바도 없다.

 

한때 성경 외에 자신의 모든 책을 처분하겠다고 결심했던 고흐는 한 책의 사람에서 여러 책들의 사람으로 바뀌었다. 에밀 졸라의 소설은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고난 받는 종의 현대판 버전이다. 고흐는 성경의 진리와 현대소설의 관계에 관한 나름의 이론을 세웠다. 고흐는 성경의 진리가 시대마다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만일 누가 성경만으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겠는가?

 

고흐는 성경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에게는 성경은 영감된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것보다는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가?’라는 것이 더 중요한 질문이었다.

고흐가 성경무오설을 믿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무오한 성경이 각 시대의 청중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되는가에 더 관심을 기울였단 말이다.

 

과연 성경으로 충분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든 믿지 않든 성경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성경을 인정한다 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가톨릭처럼 교회가 성경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나 교회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고흐가 성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할 때 얼핏 들으면 그의 신앙에 대해서 오해할 소지가 많다.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 성경은 전하는 자가 없이는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성도라면 성경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기록된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성경 자체가 스스로나 저절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을 놓고 하나님의 말씀이니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외치는 것으로서 성도나 설교자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도 없다.

 

현대인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는 성경이 충분하다고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는가? ‘성도들의 삶이야말로 이 시대에 새롭게 번역되는 '걸어 다니는 성경'(walking Bible)이 되어야 한다.

고흐가 에밀 졸라의 소설이 성경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성경의 현대판 번역이라고 생각했다면, 우리의 삶도 성경의 현대판 번역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고흐가 그린 <성경과 소설이 있는 정물>이란 그림이 시사하는 바가 아닐까?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성경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교회에 나오기 전에 성도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본다.

때문에 성경은 성도들의 삶을 통해 계속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

케리 슉(Kerry Shook)이 쓴 Be the Message!란 책이 있다.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만족하지 말고 메시지 자체가 되라!’

물론 부족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성경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종이에 쓰인 성경이 아닌 다른 성경, 즉 그리스도인의 삶 읽기를 좋아한다. 우리들의 삶이 그들에게 성경을 보여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성경이니까 말이다.

지금부터 세상 사람들로부터 참 성경의 내용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성경으로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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