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칼뱅의 두 정부론

강도헌 | 2017.03.16 15:29

두 정부론 : 이중적 통치로서 교회와 세속정부

 

루터는 ‘하나님의 나라’와 ‘악마의 나라’사이의 긴장과 갈등 혹은 투쟁에 근거한 아우구스티누스적 두 왕국론을 받아들이고, 1523년 《세속권세에 대하여》이후, 중세 로마가톨릭 혹은 중세 인문주의자들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두 정부’ 즉 교회와 국가라는 이중적 통치방식으로 다스리신다는 ‘두 정부론’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칼뱅도 이미 세네카의 주석에서 이 이중적 통치방식을 언급하며, 《기독교 강요》제3권과 제4권에서 교회와 국가를 모두 하나님이 제정하신 통치제도로 파악하는 ‘두 정부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칼뱅은 인간에게 영혼과 육체가 있는 것처럼, 통치에 있어서도 영적통치와 국가적 통치를 구분하였습니다.

 

칼뱅은 이 ‘두 정부’ 가운데 하나인 교회 곧 ‘영적 정부’ 혹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기독교 강요》제3권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화해의 실현, 즉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 이신칭의, 칭의와 화해, 이중적인 말씀과 성화의 과정 속에 있는 인간, 예정론과 교회론을 논함으로 ‘영적정부’혹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구체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칼뱅의 《기독교 강요》제4권에서 “영적 정부는 경건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양심이 훈련을 받는 곳이요, 영적 통치는 지상에 있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시작하게 하며, 죽을 수밖에 없고 허무한 이 생명 속에서 영원히 썩지 않을 축복을 예지하도록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칼뱅은 교회, 곧 ‘영적 정부’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인도하시며 우리를 그 안에 있게 하시고 지탱시키려 하시는 은총의 내적 수단으로 정의합니다.

 

반면 칼뱅은 하나님의 또 다른 통치방식인 ‘세속 정부’에 관하여 《기독교 강요》제4권 20장에서 하나님께서는 현세의 삶에서 주로 우리 육체를 대상으로 일하시는데, 그 방법은 교회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들의 성화를 위해 세우신 세속정부를 통하여 일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칼뱅에 의하면 세속정부는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확보하는 정치적 임무를 부여 받았을 뿐만 아니라 건전한 종교의 발전을 도모하는 종교적 임무를 함께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속 통치자들은 시민들의 세속생활 뿐만 아니라 영적 생활도 돌볼 신성한 의무를 부여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오늘날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아닌 자본주의적 가치관(공리철학, 경영학적 효율 중심)에 물들어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교 공직자들의 모습들은 다시 한 번 신학(목회, 실천)과 교회교육과 목회의 방향과 방식들에 대해 다시 숙고해 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볼 때 칼뱅은 국가의 존재이유는 일차적으로 ‘영적 정부’ 내지는 ‘그리스도 왕국’을 위해서 존재하는데 있으며, 그러한 이유에서 국가는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이며 하나님의 통치 질서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칼뱅은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는 영적정부인 교회의 말씀을 통하여 다스리시고, 왼손으로는 세속정부의 검을 통하여 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루터의 두 정부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칼뱅의 이러한 ‘이중 정부론’은 로마 가톨릭과 급진주의적 재세례파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한 것이었습니다. 칼뱅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교회와 국가를 혼합하여 국가를 단지 교회에 종속되는 기구로만 취급하는데 반대 하였습니다. 칼뱅은 교회와 국가는 서로 구별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교회는 ‘영적이며 내적인 인간에 속하며 영원한 삶과 관계되는 것’이고, 국가는 ‘시민적 정의와 외적 도덕의 확립과 관련된 것’으로서 서로 독립되어 있으면서 서로 연합과 조화를 이루어가야 한다는 관점이었습니다.

 

또한 칼뱅은 로마 가톨릭보다 국가 자체를 거부하고 무정부적인 성향을 지닌 급진주의자들을 더 경계하고 반대하였습니다. 칼뱅이 볼 때 급진주의적 재세례파는 그리스도만을 바라본다는 명분으로 왕이나 통치자를 인정하지 않으며,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은 방종상태를 즐기려는 자들로 여겨진 것입니다(최근에는 많은 수정이 일어 났습니다). 그래서 칼뱅은 로마 가톨릭과 재세례파라는 양 극단을 피하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중도의 길을 가고자 한 것입니다. 칼뱅의 중요한 관점으로 두 왕국은 한 왕국으로 혼합되거나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으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하나님의 이중적 통치방식을 루터의 견해와 유사하게 주장 하였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020개(7/51페이지)
편집자 칼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900 [신성욱 칼럼] New Year’s Resolution 신성욱 2022.01.05 10:52
899 [나상엽 칼럼] 별을 따라 사는 삶 나상엽 2021.12.31 16:15
898 [송광택 칼럼] 성경, 어떻게 읽어야하나요? 송광택 2021.12.27 12:03
897 [송광택 칼럼] 주님을 닮고 싶어요(그리스도를 본받아, 토마스 아 켐피스) 송광택 2021.12.27 12:00
896 [강도헌 칼럼] 제 3의 공간 강도헌 2021.12.21 06:40
895 [조정의 칼럼] 크리스마스 위드 코로나, 영혼의 치료자를 만나기를 조정의 2021.12.19 00:16
894 모바일 [김성욱 칼럼] < 교리적 기준의 회복 > 김성욱 2021.11.27 13:04
893 [송광택 칼럼] 성경, 어떻게 읽어야하나요? 송광택 2021.11.12 12:42
892 [송광택 칼럼] 구원의 확신을 갖고 싶어요 송광택 2021.11.12 12:40
891 [배영진 칼럼] 한국교회 성도들의 세가지 오해 배영진 2021.10.29 10:20
890 모바일 [김성욱 칼럼] 참된 신학의 중요성 김성욱 2021.10.04 00:20
889 [신성욱 칼럼] 우리가 어디서? 신성욱 2021.09.26 19:13
888 [신성욱 칼럼] ‘보이스 퓌싱’(Voice Phishing)~제대로 한 번 해보자! 신성욱 2021.09.26 19:11
887 [신성욱 칼럼] '자비'(mercy)와 '은혜'(grace) 신성욱 2021.09.26 19:10
886 [신성욱 칼럼] 미개한 원주민들에겐 쉽게 작동되는 용서 신성욱 2021.09.26 19:08
885 [송광택 칼럼] 그리스도인에게 공부란 무엇인가 송광택 2021.09.18 23:04
884 [송광택 칼럼] 자녀의 기질이 서로 다릅니다 송광택 2021.09.18 22:26
883 모바일 [김성욱 칼럼] < 청교도를 만나다 > 김성욱 2021.09.10 19:40
882 [신성욱 칼럼] 나의 몸값은? 신성욱 2021.08.24 22:49
881 모바일 [김성욱 칼럼] 모든 성도는 신학자(성경의 전문가)여야 한다. 김성욱 2021.08.21 18:2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