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나는 왜 시위대에 참석하고 있는가?

강도헌 | 2016.11.09 08:22

나는 지금 왜 시위대에 참여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모든 권력을 거부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고 복음을 선포하셨기에 그분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하셨다고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분은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행세하며 이 권력을 남용하지는 않으셨다. 오로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당신을 따르도록 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매료되어 따랐지만, 정작 그분은 공동체를 만들어 그 위에 군림하겠다는 욕심이 전혀 없으셨다.

 

예수님은 당시 랍비나 율법사, 혹은 제사장들과 같이 당시 유대교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욕심이 없으셨다. 또한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자 할 때에도 정치권력도 마다하셨다. 열심당원들은 예수님이 정치적으로 입성하시기를 바랐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대하실 때도 권력을 행사하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 하지 않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진실하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제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들어 어쩔 수 없이 당신에게 복종하도록 만드시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옭아매지 않고 자유를 주셨다. 사람들이 예수에게서 등을 돌릴 때에도 그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을 하지 않으셨다. 듣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하나님의 뜻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따랐다. 또한 예수님은 어떤 조직을 만들어 수장이 되실 뜻이 없으셨다. 그분은 복음을 선포하고 인간을 구원하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셨다.

 

요즘에는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팬들을 거느리는 스타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스타들은 자기 팬들에게 발목을 잡힌다. 그래서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고 팬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을 한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 교주가 되어 공동체를 권위적으로 다스리고 신도들에게 맹종을 강요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영적 능력을 악용하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예수님은 이 모든 유혹을 이겨내셨다. 예수께서 권력을 쓰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마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그렇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셨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수님의 내면의 힘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비폭력의 길을 가면서 예수님을 따랐다. 그 또한 예수님처럼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폭력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군대의 통수권자 미국 대통령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졌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맞서 시위를 하면서도 그런 그들을 사랑하라고 설교했다. 예수님처럼 폭력을 철저히 거부한 그는 결국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희생은 죽어서도 영향력을 계속 발휘하고 있다.

 

시위대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진실된 마음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자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거나 새로운 힘이나 권력을 얻기 위해 시위대에 참석하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억울하고 분한 마음으로 시위대에 참석하는 사람들이다. 이 시위대를 통해 뭔가 얻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울분을 분풀이 하는 식으로 만의 시위는 시위대에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시위대에 참여하는 목적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서 함께 공생하기 위함이고, 서로 사랑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이 목적에서 이탈해서는 안 될 것이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021개(7/52페이지)
편집자 칼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901 모바일 [김성욱 칼럼] 섭리의 손길을 바라보는 것. 김성욱 2022.01.05 22:26
900 [신성욱 칼럼] New Year’s Resolution 신성욱 2022.01.05 10:52
899 [나상엽 칼럼] 별을 따라 사는 삶 나상엽 2021.12.31 16:15
898 [송광택 칼럼] 성경, 어떻게 읽어야하나요? 송광택 2021.12.27 12:03
897 [송광택 칼럼] 주님을 닮고 싶어요(그리스도를 본받아, 토마스 아 켐피스) 송광택 2021.12.27 12:00
896 [강도헌 칼럼] 제 3의 공간 강도헌 2021.12.21 06:40
895 [조정의 칼럼] 크리스마스 위드 코로나, 영혼의 치료자를 만나기를 조정의 2021.12.19 00:16
894 모바일 [김성욱 칼럼] < 교리적 기준의 회복 > 김성욱 2021.11.27 13:04
893 [송광택 칼럼] 성경, 어떻게 읽어야하나요? 송광택 2021.11.12 12:42
892 [송광택 칼럼] 구원의 확신을 갖고 싶어요 송광택 2021.11.12 12:40
891 [배영진 칼럼] 한국교회 성도들의 세가지 오해 배영진 2021.10.29 10:20
890 모바일 [김성욱 칼럼] 참된 신학의 중요성 김성욱 2021.10.04 00:20
889 [신성욱 칼럼] 우리가 어디서? 신성욱 2021.09.26 19:13
888 [신성욱 칼럼] ‘보이스 퓌싱’(Voice Phishing)~제대로 한 번 해보자! 신성욱 2021.09.26 19:11
887 [신성욱 칼럼] '자비'(mercy)와 '은혜'(grace) 신성욱 2021.09.26 19:10
886 [신성욱 칼럼] 미개한 원주민들에겐 쉽게 작동되는 용서 신성욱 2021.09.26 19:08
885 [송광택 칼럼] 그리스도인에게 공부란 무엇인가 송광택 2021.09.18 23:04
884 [송광택 칼럼] 자녀의 기질이 서로 다릅니다 송광택 2021.09.18 22:26
883 모바일 [김성욱 칼럼] < 청교도를 만나다 > 김성욱 2021.09.10 19:40
882 [신성욱 칼럼] 나의 몸값은? 신성욱 2021.08.24 22:4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