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오체불만족- 장애를 바라보는 특별한 시각

송광택 | 2003.06.29 00:39
오체불만족

뺨과 10여㎝밖에 없는 팔 사이에 연필을 끼고 글을 쓴다. 가위의 한쪽 끝을 입에 물고 또 한쪽 끝은 팔로 누른채 얼굴을 돌려가며 종이를 자른다. 엉덩이와 발목을 교대로 움직여 이동하면서 양쪽 팔로 농구공을 빠르게 드리블한다.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정경학부 정치학과 4년생인 오토타케 히로타다(乙武洋匡.23)는 사지가 없다. 있긴해도 각각 10여㎝에 불과하다. 선천성 사지절단의 장애인이다. 그가 불구의 몸으로 살아온 자신의 과거를 담은 책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이 무려 3백만부의 판매기록을 돌파한채 여전히 기세가 꺾일줄 모르고 있다. 그는 경제불황으로 우울한 일본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오체’는 머리와 사지, 즉 온몸을 뜻한다)

불구라해서 그의 인생이 어둡고 슬픈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글은 밝고 위트에 넘친다.자신의 몸을 ‘초(超)개성적’이라고 표현한데서도 알수 있듯이 그는 인간은 누구나 개성이 다르며 자신 역시 대단히 개성적인 신체구조를 갖고 있을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오체불만족"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는가?

첫째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통의 어린이’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사실을 볼 수 있다. 그는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께서 스스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와줘 주눅 들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고 했다.그런 면에서 그는 행운아였다.
산모가 아기를 낳았다. 낳고 보니 팔과 다리가 없는 기형아였다. 왜 이런 아이가 생겼는지는 23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모른다. 아기를 보는 순간 산모는 어땠을까. 당연히 대성통곡하다 정신을 잃고 까무라쳤을 것같다. 그러나 그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보는 첫 반응은 상상 밖이었다.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머리말" 중에서)

오토다케의 승리는 먼저 어머니의 승리였다. 하늘이 준 생명을 탄생 순간부터 감사하고 기뻐했다. 그리고 보통의 아이와 똑같이 키우려 했다. 오토타케의 부모는 그가 어렸을때부터 집 안에 숨기려하지 않고 일부러 동네사람들에게 그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길거리를 함께 산책하고는 했다. 뺨과 어깨 사이에 연필을 끼워 글을 쓰게 하고,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포크로 식사하게 하면서도 특별히 보호하진 않았다. 물론 주위에도 장애아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또한 그의 어머니는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틈만 나면 그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17쪽). 그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은 두 가지 교육방침을 정했다. 하나는 "강한 아이로 키우자"이고, 다른 하나는 "장애를 방패로 도망치는 아이는 절대로 만들지 말자"이다.
우여곡절이 다소 있었지만 그는 일반초등학교에 비교적 무난히 입학할 수 있었다. 1학년 담임선생이 4학년 때까지 줄곧 담임을 맡으며 보살펴준 덕도 컸다. 그 역시 장애인이라고 오토다케를 특별 배려하진 않았다. 청소도 같이 시켰고, 체육시간에도 함께 운동하게 했다. 헬렌 켈러 뒤에 설리반 선생이 있었듯, 오토다케 뒤에는 다카기 선생님이 있었다(29-33쪽). 다카기 교사는 휠체어를 못타게 했고, 반 아이들에게도 특별 대우를 하지않도록 지도했다.

또한 다카기 교사는 4년간 10권의 일기를 쓰면서 매일 지도내용을 꼼꼼이 기록했다. 스승 덕분에 오토다케는 남의 도움없이 밥을먹고, 학교에 다니는 법을 배웠다. 술에 취한 친구를 전동 휠체어에 태워 지하철까지 바래다줄 정도다. 오토다케는 지금도 매년 한두차례 다카기 교사를찾는다고 한다. "선생님은 결코 나를 도와주지않고 스스로 모든 일을 해나가도록 끊임없이 인내해주었다”고 오토타케는 회술하고 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도 그를 차별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를 "특별한 눈으로" 대하지 않았다(99쪽). 화가 나면 최대 무기인 물어뜯기로 나온 오토다케였지만 아이들은 그를 스스름없이 대했고, 학부모들은 그와 같은 반이 돼 불이익당한다고 꺼리지 않았다.

둘째로, 오토다케 자신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특수고안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정상인과 거의 같은 생활을 한다. 그동안 자란 팔다리는 고작 10cm.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세상을 무척 밝게 바라본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국어나 수학이 아닌 체육이다. 겨드랑이로 철봉을 하고, 상반신을 이용해 줄넘기도 서른네번(최고기록)이나 뛴다(49쪽). 100m 달리기에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늦지만 망설임없이 나서 -중간의 출발선에서부터- 50미터를 완주한다(83-84쪽).

오토다케는 성장과정에서 그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도 신기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유치원 학예회에서 니레이터를 했고(21쪽),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선생님의 "특별한" 비서 역할도 했다(71-75쪽).

중고교 시절에는 농구부 선수와 미식 축구부 매니저 역으로 시합에 참가했고, 명문 와세다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생명의 거리 만들기" 운동을 펼쳤다. 그는 현재 <마음의 장벽 없애기(Barrier Free)>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장애와 행복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그는 오늘도 캠퍼스와 거리를 해맑게 웃으며 누비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특징(特徵)"과 "특장(特長)"에 대해 배웠을 때,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특징"이란 다른 것과 비교해 특히 두드러지는 점을 말한다. 그에 비해 "특장"은 그 무엇을 특징지을 수 있는 장점을 가리킨다. 그날 이후, 자기 소개서에 "특징-손과 발이 없는 것"이라고 쓰던 것을 "특장"이라고 고쳐 썼다(89쪽). 그는 자신에게 지체가 없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특장"이 있다고 보는 인식의 전환을 경험한 것이다.

대학생이 된 후, 그는 자신의 "인생 목표"에 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문제로 고민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장애인"이라는 세 글자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217쪽). 왜냐하면 그동안 그는 "장애"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이 세상에는 반드시 존재한다"(218쪽). 그는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셋째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지체부자유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냉대를 마주 대하게 된다.
서울의 거리를 보고 외국인들은 한국에는 신체가 정상인 사람만 사는 줄 안다고 한다. 그만큼 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서지 못한채 집안에 "갇혀" 사는 것이다. 오토다케 이야기는 장애인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을 다시 생각케 한다. 본인도 본인이지만 가족과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가를 반성케 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사회구성원으로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최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기획예산위원회·국무총리비서실·대검찰청 등 6개 정부기관의 기관장을 대검에 고발하기로 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들 기관은 장애인 고용촉진법에 따라 직원의 2% 이상을 장애인으로 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명도 채용한 적이 없다.

정부기관과 기업체 등이 장애인 채용을 기피하는 데는 `일을 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무서운 선입견이다. 선입견은 자칫 편견으로 굳어지고, 편견이 사회적으로 확대되면 차별을 낳는다.
누군가 "이미 장애인은 IMF의 화두인 `변화와 개혁"을 매일 실천하고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은 선천성사지기형 장애인인 이희아(14)양이 아니면 생각하기 힘들다.

최근 미국의 일부 장애인단체는 장애인이란 말 대신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절름발이, 벙어리" 등의 표현을 쓰자고 주장한다. 장애인이란 말이 개개인의 특성을 지워버려 장애인과 일반인 사이의, 또 장애인 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형성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줄어들어 이제는 다양한 관계를 놓고 고민하는 단계에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4월 내한했던 오토타케군이 한국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안되어 있어 자신이 타고다니는 휠체어를 가지고 오지 못했다고 한 얘기는 한마디로 한국장애인 복지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장애인의 복지는 정부의 지원만으로 해결될수 없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장애인을 먼저 생각하는등 마음으로 보살펴야 진정한 복지국가가 실현될수 있다. 장애인들을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내버려두고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선진국이 될수 없다.

끝으로, 오토타케는 장애인을 괴롭히는 물리적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먼저 "마음의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장애인을 보고 돕고자하는 작은 "습관"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외친다(277쪽).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남을 인정하는 마음"이라고 한다(280쪽). 장애를 그 사람의 "특징"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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